독도 인근 자위대 훈련 길 뚫렸다
  •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
  • 승인 2015.05.0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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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우리 사전 동의 없이 파병 가능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방문을 마쳤다. 아마도 한국인들이 일본 총리의 방미에 이토록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 아베 정권 등장 이후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현재의 관계를 정립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토대가 되는 과거사 청산에 대해 아베가 역주행한 탓이 크다.

아베는 과거사 문제를 퉁치고 넘어가려 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할 의사가 있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인신매매에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 때우려 했다. 인신매매를 누가 자행했는지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고, 이에 따라 ‘사죄’나 ‘사과’라는 표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아베는 반격을 가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 성장은 일본 덕분이라고 강변했다. 과거사의 잣대로 일본 제국주의만 볼 것이 아니라 전후 시대, 특히 한국엔 한일협정 이후를 봐달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한일협정 이후 50년간 일본의 대한국 무역흑자는 5000억 달러에 달한다. 굳이 득실관계를 따진다면 일본이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 삼아 더 큰돈을 벌어간 것이다.

4월2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남쪽 잔디광장에서 열린 국빈 환영 행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돌아보고 있다. ⓒ AP연합
실망과 분노는 일본을 향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베의 ‘과거를 덮고 미래로 가자’는 식의 화법은 미국 행정부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번 아베의 방미에서 그를 극진히 환대했다. 특히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은 대규모 충돌 뒤에는 화해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믿었다”고 말했다. 에번 메데이로스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아베의 발언이 “매우 중요하고 건설적”이라고 평가했다.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에서 일본의 손을 번쩍 들어준 셈이다.

일본 지렛대 삼으려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

미국이 이처럼 일본을 배려(?)하고 있는 데는 일본을 대리인으로 삼아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전략적 욕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 당면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물론이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봉쇄하기 위해서는 지역 강대국인 일본의 역할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건 미국만의 짝사랑은 아니다. 미·소 냉전 종식 이후, 특히 아베 정권 등장 이후 일본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앞세워 군사대국화를 모색해왔다. 이러한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나온 결과가 바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이다.

방위협력지침은 미·일 안보조약에 근거한 양국 사이의 구체적인 군사 협력 매뉴얼이다. 최초로 제정된 시점은 1978년으로, 소련의 침공에 대비한다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일본 자위대의 핵심 전력이 북부에 배치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한반도 핵 위기와 타이완 해협 위기가 연이어 불거지면서 미·일 양국은 1997년에 방위협력지침을 1차 개정했다. 일본의 미군 후방 지원을 좀 더 구체화하고 미·일 동맹의 발동 범위에 ‘일본 주변 사태’를 포함시킨 게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불허를 포함해 평화헌법을 견지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개정된 방위협력지침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우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식화하고, 그 적용 범위를 전 세계로 확대하면서 전시와 평시의 구분도 사실상 없앴다. 이로써 일본이 오로지 방어에만 전념한다는 전수방위 원칙과 해외 파병을 금지한 평화헌법은 무력화될 위기에 처했다. 일본 국내적으로 평화헌법 개정이 힘들어지자,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 우회하고 ‘해석 헌법’이라는 희한한 논리로 평화헌법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또한 한미연합사와 유사한 ‘미·일 공동조정소’를 설치해 미군과 자위대의 일체화도 강화키로 했다. 아울러 미국이 주일미군의 해·공군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한 것도 눈에 띈다.

이러한 미·일 동맹의 재편은 본질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오바마-아베가 공동성명에서 “힘 또는 강압에 의지해 일방적으로 기존 질서를 바꾸려 시도함으로써 주권과 영토의 일체성을 훼손하는 국가의 행동이 국제 질서에 도전이 되고 있다”고 명시한 것도 중국을 의식한 행위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중국이 일본 및 동남아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미·일 양국은 중국의 반(反)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무력화하는 데 상당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의 반발을 초래해 아시아 군비 경쟁 격화와 긴장 고조가 우려되는 이유다. 

한국, 동아시아 무력 갈등 휘말릴 위험

이번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짚어볼 수 있다. 하나는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문제다. 이와 관련해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주변 지역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경우 제3국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지만, 한국 정부가 요구한 사전 동의는 명시되지 않았다. 한·미 연합군의 전시 작전권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미군 지원과 자국민 구출을 명분으로 자위대를 파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 또한 독도 인근에서 해상자위대가 훈련을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 미군이 대북 방어 훈련을 실시하고 일본 자위대가 후방 지원을 명분으로 가세하는 시나리오다.

또 하나는 한국이 미·일 동맹 대(對) 중국 사이의 무력 갈등에 휘말릴 위험성이다. 미·일 동맹은 티이완과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를 동맹의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한국을 미·일 동맹에 끌어들이려고 한다. 4월 중순 워싱턴에서 잇따라 열린 한·미·일 외교 차관 회의와 국방회의에서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 문제가 논의된 것도 심상치 않다.

결국 이번 미·일 동맹 재편으로 인해 한국의 입장과 처지는 난처해질 공산이 커졌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한국이 자초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흡수통일을 노골적으로 추구했고, 미·일 동맹은 이를 한·일 군사 협력과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연결시키려 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약정을 체결하는 등 3자 미사일 방어 체제(MD)가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이 와중에 ‘사드 논란’까지 터졌다.

대안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정세를 안정화시킴으로써 자위대가 얼씬도 못할 환경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6자회담 재개를 통해 북핵 문제를 관리하고 미·일 동맹과 중국 사이의 대결 구도를 완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 외교가 긴 방황을 끝내고 이제 기본으로 돌아와야 할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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