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만 잡고…그러니 백기사 의심 받지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5.0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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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산업 인수전 밀약설…호반건설은 실리 챙겨

호남 출신 기업인 간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은 금호산업 인수전이 허무하게 막을 내릴 전망이다. 금호산업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에 따르면 채권단 운영위원회는 지난 4월28일 본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한 호반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호반건설은 이날 접수가 마감된 본 입찰에 6007억원을 써낸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단 운영위원회는 호반건설의 응찰액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꽃놀이패 쥐었던 호반건설

금호산업 인수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엇보다 호반건설 김상열 회장이 호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의 호남 기업인 간 대결로 관심을 끌었다. 특히 김 회장이 강력한 인수 의지를 내비치면서 동향 기업인 간 신경전도 예상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의외의 방향으로 흘렀다. 박 회장에게 칼끝을 겨눴던 호반건설이 오히려 박 회장의 백기사가 됐고, 반대로 높은 가격에 매각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던 채권단은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또한 양측을 들었다 놨던 호반건설은 인수에 실패했음에도 ‘실리’는 다 챙겼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 한편에서는 두 회사 간 밀약이 있었다는 음모론도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 연합뉴스·시사저널 포토
금호산업 인수전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이후부터 채권단과의 협상 결렬까지의 과정을 더듬어보면 호반건설은 ‘꽃놀이패를 쥐고 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판을 쥐락펴락했다.

김상열 회장은 3월25일 서울 남대문로 서울상의회관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22대 임시의원총회에서 금호산업 인수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금호산업 채권단이 정한 인수 자금 가이드라인은 1조원이 조금 안 되는 9000억원대 수준”이라며 “호반건설의 자기자본은 2조원대로 자금 여력은 충분하다”고 밝혔다. 김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이 허투루 들리지 않은 것은 호반건설이 지난해부터 몇 차례에 걸쳐 금호산업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전포석’에 이은 김 회장의 ‘호언장담’은 입찰 과정에서 다른 사모펀드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결국 호반건설의 단독 입찰로 이어졌다. 채권단에서는 금호산업의 현 주가로는 5000억원을 밑돌지만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프리미엄이 붙을 경우 8000억?1조원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호반건설은 채권단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6007억원을 적어냈다. 호반건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채권단을 당황하게 한 요구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호반건설은 입찰에서 10%의 가격 조정 폭을 제시했다. 사실상 인수가격을 10% 더 깎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기업 인수·합병 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격 조정 폭은 5%다. 호반건설이 단독 입찰한 상황에서 채권단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았다. 결국 호반건설의 적극적 입찰 참여가 채권단 입장에서는 ‘악재’로 작용한 것.

호반건설의 ‘플레이’는 박삼구 회장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채권단은 5월5일 이후 채권단 전체 회의를 열고 재매각 절차를 진행할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새로운 기업이 인수전에 뛰어들면 매각 작업이 장기화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채권단이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박삼구 회장과 수의 계약에 나설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 재계 일각에서는 호반건설이 6007억원을 써냈던 만큼 박 회장이 인수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높은 가격을 써내야 하는 탓에 부담이 더 커졌다는 말도 있지만, 유찰 이유가 단순히 가격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채권단의 입장이어서 박 회장으로서도 나쁠 것이 없는 상황이다.

호반건설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모두 실리를 챙겼다는 모양새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두 동향 기업 간 사전 밀약설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 회장이 1조원 넘는 돈도 동원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나, 하나은행으로부터 4000억원의 투자확약서를 받아놓았음에도 불구하고 6007억원을 써낸 것은 실탄이 부족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며 “박 회장 측에 부담이 된다고도 할 수 없고, 안 된다고도 할 수 없는 절묘한 액수를 써냈다”고 말했다.

양측 모두 실리 챙겨

이에 대해 양측은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호반건설이 백기사였다면 들어오지 말고, 조용히 뒤에서 도와줬어야 했다”고 반박했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6007억원은 꼼꼼한 실사를 통해 제시한 인수 금액”이라고 선을 그었다.

호반건설은 비록 금호산업 인수에 실패했지만 얻은 것이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단 과거 지역 대표 기업이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인수할 정도로 성장한 호남 대표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또 금호산업 지분 매입 과정에서 300억원의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오너인 김상열 회장이 재계 중견 기업인으로 떠오른 것도 수확이다. 특히 이번 기회를 통해 호남 지역 민심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광주 지역 일간지 기자는 “호반건설과 금호산업 모두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한 호남에 기반을 둔 기업이기 때문에 호반건설이 금호그룹을 이을 차세대 지역 경제계 주자라는 점을 이번에 확고히 한 셈”이라며 “김상열 회장이 지난 3월20일 만장일치 추대 형식으로 제22대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선출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이번 입찰전을 통해 김상열 회장이 재계 거물인 박삼구 회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컸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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