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오는 순간 갈 곳이 없다
  • 김지영(女)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5.05.0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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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청소년 45만명 가출…1000명당 쉼터 이용자 1.8명 불과

주거는 거리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안정적인 잠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기적인 일자리를 갖기란 불가능하다. 건강한 삶 또한 확보할 수 없다. 하루 종일 거리를 떠돌면서 질병이 없길 바라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주거는 거리 청소년이 사회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자,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디딤돌이다.

한국에서 거리 청소년이 갈 수 있는 ‘집’으로는 정부가 운영하는 청소년쉼터가 유일하다. 우리나라 가출 청소년 지원 정책도 ‘청소년쉼터 운영’에 집중돼 있다. 이름은 ‘쉼터’지만, 그 역할은 ‘쉬는 것’ 그 이상이다. 쉼터는 거리로 나온 청소년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고, 학업과 직업훈련을 하도록 해 사회로 복귀하는 길을 열어준다.

연 평균 약 45만명, 청소년 10명 중 1명이 가출하는 나라 한국. 하지만 이 땅에서 가출 청소년이 갈 수 있는 쉼터는 109곳이 전부다. 더욱이 일시 쉼터 21개소를 제외하고 3개월 이상 머무를 수 있는 단·중·장기 쉼터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정원은 900여 명에 불과하다. 가출 청소년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쉼터 109곳, 3개월 이상 수용 최대 정원 900명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가출 청소년 1000명당 청소년쉼터의 보호를 받는 경우는 1.83명에 그친다. 특히 서울 지역은 0.17명으로 매우 적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신림청소년쉼터의 경우, 정원은 20명이다. 하지만 연 평균 이곳을 거쳐가는 거리 청소년은 300명에 육박한다. 신림청소년쉼터는 몰려드는 청소년 때문에 정원 외 최대 10%를 초과할 수 있다는 내부 규정도 세웠다. 그런데도 22명이 쉼터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의 최대치다. 연 평균 11만여 명으로, 전국에서 가출 청소년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경기 지역도 쉼터는 21곳뿐이다. 가출 청소년 1000명당 쉼터가 보호할 수 있는 수도 0.28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쉼터 퇴소자의 4분의 1은 가정 복귀 및 자립 여부와 관계없이 입소 기간이 종료돼 불가피하게 쉼터를 퇴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쉼터를 입소 기간에 따라 일시 쉼터(최대 7일), 단기 쉼터(최대 9개월), 중·장기 쉼터(최대 2년)로 구분하고 있는데,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아이가 갈 곳이 없어도 쉼터에서 다시 거리로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입소 기간이 종료되면 쉼터를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는 ‘쉼터돌이’ ‘쉼터순이’가 발생한다. 이른바 ‘회전문 현상’이다.

박진규 신림청소년쉼터 실장은 “현재 남녀 중·장기 쉼터가 1곳 이상 설치돼 있지 않은 시·도가 5곳에 달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청소년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쉼터를 전전하는 청소년이 발생하는 이유를 청소년 개인의 자립 의지 부족으로만 몰아가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쉼터 증설과 효과적인 자립 프로그램 필요

쉼터 퇴소 후 6개월이 지나면 쉼터에서 청소년에게 지원한 효과가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12년). 쉼터에 입소해 6주 동안 보호·지원하면 가출 청소년의 약물 사용, 가족관계, 자존감 등 행동과 태도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지만 퇴소 이후 6개월 이내에 그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쉼터 퇴소 후 지속적인 사후 관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은 쉼터에 배정된 예산 총액 자체가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쉼터 퇴소 청소년에 대한 DB(데이터베이스) 구축, 사후 관리에 대한  별도 예산 투입은 아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청소년쉼터 운영 지원 예산은 약 87억원이었다. 가출 청소년 쉼터 운영 지원 예산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경상보조로 지원되고 있으니, 지방비를 제외하면 쉼터 한 곳당 연간 8000만원도 안 되는 국비가 지원되는 것이다.

청소년쉼터의 빈약한 재정은 쉼터에서 또 다른 폭력을 낳기도 한다. 부족한 예산은 일차적으로 쉼터 종사자들의 열악한 처우로 이어져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종사자들이 ‘학대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청소년쉼터 종사자 1명이 맡고 있는 업무 강도는 혹독하다. 이를 사례 부담률이라 하는데, 신림청소년쉼터의 경우 현장 직원 한 사람이 연 평균 맡는 청소년 수는 40~50명이다. 쉼터 퇴소 후 관리하는 아이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처음엔 사명감으로 일하던 쉼터 종사자들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심지어 때리는 경우도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돈이다. 박진규 신림청소년쉼터 실장은 “미국에선 거리 청소년 한 명당 18개월 동안 1억8000만원 정도를 들여 주거는 물론 자립할 수 있도록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TLP)까지 제공한다”며 “하지만 한국엔 아직까지 한 명의 청소년에게 얼마의 돈을 지원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예산을 늘려 가출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고 자료: ‘가출청소년 보호 지원 실태 및 정책 과제 연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김지연 외,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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