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이 채소 공장으로 바뀌다
  • 김중태│IT문화원 원장 ()
  • 승인 2015.05.07 17: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후지쓰·도시바 등 IT 농업 진출…일본에 식물 공장 304곳

도시바·후지쓰·파나소닉이란 기업 이름을 들었을 때 우리가 떠올리는 제품은 무엇일까. 아마도 도시바 노트북, 후지쓰 노트북 등을 생각할 것이다. 이들 기업은 일본 기업으로 반도체·IT·전자 제품 등 첨단 기술을 주도했으나 2000년 이후 경쟁력 부족으로 밀리면서 기업이 위기에 빠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들 세 기업이 미래를 위해 준비한 신규 사업이 농업이라는 사실이다.

후지쓰는 일본의 금융기업인 오릭스와 함께 2015년에 도쿄돔 두 개 크기에 해당하는 1만3000㎡ 크기의 채소 공장을 시즈오카 현에 지을 예정이다. 식물 공장의 한 분야인 채소 공장은 전통적인 농업이 아니라 최첨단 IT를 활용한 IT 농업이다. 흙을 묻히는 과거 농사꾼과 달리 후지쓰 채소 공장의 농사꾼은 반도체 공장처럼 마스크와 방진복을 입고 일한다. 공장 안을 무균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도시바 등 일본의 전자업체들이 반도체 사업장을 채소 공장으로 개조하고 있다. 사진은 LED 조명을 이용해 양상추를 재배하는 모습. ⓒ AP 연합
도심에 등장한 채소 공장

후지쓰는 반도체 경쟁에서 밀리자 반도체 공장을 이용한 신농업으로 눈을 돌려 반도체 공장에 사용한 클린룸에서 무균 상태로 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태양 빛은 LED로 대신했으며, 흙 대신 배양액을 이용해 채소를 키운다. 무균 재배라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씻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다. 공장은 태양광 전력을 이용하고 후지쓰가 2012년에 개발한 클라우드 기반 재배 시스템인 ‘아키사이’가 자동으로 관리한다. 상추를 재배하겠다고 하면 상추에 맞는 온도·습도·일조량이 맞춰진다. 온실별로 각기 다른 채소를 재배할 수 있으며 수확 시기 조절도 가능해 시장 상황에 맞게 공급을 맞출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든지 확인과 제어가 가능하다. 수확량도 우수하다. 토마토나 양상추는 24모작이 가능하고, 쌀도 8모작이 가능할 정도다. 식물 공장의 경우 재배 면적은 좁지만 다수확이 가능해 도시형 농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채소 공장의 경쟁력은 도심 안에서 깨끗한 신선 채소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전으로 인해 땅이 오염된 일본에서는 가장 필요한 사업인 셈이다. 첨단 공장형이라 초기 자본이 많이 들지만 일단 공장이 완성된 후에는 한두 명만으로도 공장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미래 가치가 높다.

도시바도 2014년에 가나가와 현 요코스카 시의 비어 있던 반도체 공장을 채소 공장으로 바꾸고 현재 다양한 채소를 식당에 납품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일본을 벗어나 싱가포르에 진출했다. 작은 섬 국가인 싱가포르의 경우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국민에게 필요한 채소의 8%만 현지 공급이 가능한 상태였다. 파나소닉 팩토리 솔루션스 아시아(PFSAP)는 2014년 8월부터 싱가포르의 채소 공장에서 키운 채소를 출하하기 시작했다.

중공업 회사로 알려진 미쓰비시도 미쓰비시플라스틱을 통해 호주 빅토리아 주에 식물 공장을 짓고 현지에서 채소를 생산·판매하는 법인을 설립했다. 미쓰비시플라스틱은 앞으로 식물 공장에서 생산한 채소를 멜버른·시드니 등에서 판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로 진출해 싱가포르·태국 등에서도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른 계열사인 미쓰비시화학은 패키지 형태인 컨테이너 채소 공장을 개발해 중동의 카타르에 납품할 예정이다. 샤프도 중동 두바이에 식물 공장을 건설한 상태다.

일본의 첨단 기술 대기업들이 앞 다퉈 농업에 진출하고 있다. 미쓰이화학 역시 2009년에 ‘미쓰이화학 애그로’를 설립했고, 스미토모화학도 농장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해외 기업 인수 및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심지어 도요타·덴소 같은 자동차업체, 고베제강소 같은 중공업 업체들도 식물 공장 사업에 진출하고 있을 정도로 농업은 차세대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기존 농업과 달리 첨단 기술의 집약 산업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식물 공장의 경우 반도체 클린룸을 비롯해 태양전지와 리튬 이온 배터리 시스템,  태양광 기술, LED, 특수 필름, 클라우드 시스템, 원격 제어, 빅데이터 분석 등 첨단 IT 기술이 집약된 사업이다. 일본의 경우 2013년 농림수산성 발표 기준으로 채소 공장을 포함한 식물 공장 수가 304개나 된다. 미국에서도 뉴욕 맨해튼에 농경 빌딩인 수직농장(vertical farm) 건설이 진행 중이다. 시내 중심에 빌딩형 농장이 들어서는 신농업이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농업을 주력 사업으로 삼은 듀폰

일본 대기업의 사례는 미래 농업이 과거와 다른 모습임을 보여준다. 땅에 씨앗을 심고 하늘만 바라보던 과거와 달리 땅이 아닌 곳에서 1년 내내 농사를 짓는 IT 농업이 미래 농업의 한 분야로 급성장할 것이다. 식물 공장 외에도 태양광 농업을 비롯한 다양한 신농업 기술이 떠오르고 있다. MIT테크놀로지는 태양광 농업이 수십억 명의 식량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업이 인류의 미래이자 핵심 산업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업은 듀폰이다. 1802년에 설립된 듀폰은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업으로 미국 최대 부자 가문이다. 나일론·테프론·라이크라 등을 비롯해 20세기 전 세계 화학산업을 이끈 기업이 듀폰이다. 그러나 듀폰은 1999년에 석유회사 매각에 이어 2004년에는 섬유 사업까지 매각함으로써 기존 화학 관련 산업에서 손을 떼고 농업 분야로 전환했다. 2013년 듀폰의 매출 357억 달러 중에서 농업이 117억 달러, 영양·건강이 34억 달러를 차지할 정도로 농업은 듀폰의 주력 사업이 되었다. 이를 위해 듀폰은 세계 150곳의 연구·개발(R&D) 센터에 1만명의 과학자를 두고 매년 22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2만4000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2013년 듀폰 매출 중에서 100억 달러가 최근 3년간 R&D 센터에서 개발된 신제품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듀폰의 변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 결과 듀폰은 화학회사가 아닌 ‘종합과학회사(Integrated Science company)’로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고 변신을 시도했다. 듀폰의 계속된 변화 시도가 기업에 주는 교훈은 장수 기업의 특징은 전통 있는 기업이 아니라 ‘늙지 않는 청년 기업’이라는 점이다.

듀폰의 변화에서 알 수 있듯이 IT 농업은 미래의 첨단 산업이자 고부가가치 산업이고 종합과학 산업이다. IT 기술 발전에 힘입어 생산비용 면에서 IT 농업이 기존 농업을 추월하게 되는 시점이 되면 기존 농업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는 신농업으로 미래 농업이 전개될 것이고, 식량산업도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더 늦기 전에 한국의 기업도 IT 농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