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킬러’ 다 빠져나간다
  • 김지영(女)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5.05.1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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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비행 조종사 한 해 평균 25명 떠나…최근 P-3C 조종사 4명 전역 신청

해군의 ‘잠수함 킬러’들이 대거 군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잠수함 킬러는 해군이 갖고 있는 유일한 전투기 P-3C를 운항하는 조종사의 별칭이다. P-3C는 바다 위를 날며 음파탐지기(소나) 등을 통해 바닷속 적군의 잠수함을 탐지해 격파하는 우리 해군의 핵심전력이다.

그런데 최근 베테랑 P-3C 조종사 4명이 전역 신청서를 낸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들은 민간 항공사 파일럿에 비해 저임금·고강도의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전역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에서 전역을 허가하지 않자 국방부에 이의소청을 제기한 상태다. 이들은 5월에 열리는 소청 심의에서도 전역 결정이 나오지 않을 경우 행정소송 제기를 고려할 정도로 전역 의지가 강하다. 이들 베테랑 전투기 조종사가 빠져나갈 경우 우리 군의 해상 작전 전력에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조종사 한 명당 40억 투자, 한 해 7명 이직

이번에 국방부에 전역을 허가해달라며 소청을 제기한 P-3C 조종사 4명은 15년 의무 복무 기간을 채운 베테랑 조종사들이다. 군 인사법에 따르면 해군사관학교(해사)를 졸업해 비행훈련 과정을 거쳐 장교가 된 사람은 15년 동안 의무적으로 군에 복무해야 한다.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면 언제든 자유롭게 전역을 신청해 군을 떠날 수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전력 공백과 전투기 조종사 인력 운용의 차질을 우려해 이들의 전역을 6~10개월간 유예했다. 국방부는 “2014년 국내외에서 대형 재난사고가 있었고, 공군기지 활주로 재포장 공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어 전력과 인력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역을 안 해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안보상의 공백이 우려돼 전역 날짜를 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대법원은 전시·천재지변 등 국가 비상시가 아닌 이상 전역권자는 원칙적으로 전역을 허가해야 하지만, 전역 희망 의사 확인 또는 업무 공백 방지 등 공익적 목적을 위해 필요한 한도 내에서 전역 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번 해군의 전역 유예 결정이 개인의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할 소지는 있지만 위법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해군을 빠져나가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수치는 위험 수준이다. 시사저널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안규백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해군 조종사 전역 현황’에 따르면, 한 해 평균 25명의 해군 조종사가 군을 떠난다. 이 중 4분의 1 이상이 P-3C 조종사로, 지난해에만 6명의 P-3C 조종사가 전역했다. 2013년(3명)과 비교해 군을 떠나는 전투기 조종사가 꼭 두 배로 늘었다. 해마다 평균 7명이 의무 복무 기간만 채우고 해군을 떠나는 것이다.

해사 졸업 기수별로 보면 전투기 전력 공백은 더욱 두드러진다. 해사는 매년 10명 안팎의 전투기(고정익) 조종사를 배출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해사를 졸업한 비행 경력 10년 이상 숙련 조종사 중 현재 군에 남아 있는 사람은 졸업 기수당 1~2명에 불과하다. 군에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은 해사 기수가 4기수나 된다. 해사 43기(1989년 임관), 45기(1991년 임관), 48기(1994년 임관), 51기(1997년 임관) 조종사들은 모두 군을 떠났다. 해군은 현재 운용 중인 20대의 P-3C 외에도 2020년까지 S-3급 해상초계기 20대를 도입할 계획이어서 조종 전력 공백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수당 현실화하고 진급 보장해야

군을 떠난 전투기 조종사 10명 가운데 8명은 민간 항공사 파일럿으로 이직한다. 안규백 의원실의 ‘해군 조종사 취업 현황’을 보면, 지난해 전역한 전투기 조종사 9명 모두 대한항공·아시아나와 같은 민간 항공사 파일럿으로 이직했다.

비행 경력 10년 이상의 숙련된 해군 전투기 조종사 한 명을 배출하기 위해 최소 40억원의 세금이 들어간다. 정부가 거액을 투자해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고 있지만, 이 돈은 결국 국가가 아닌 민간 항공기를 조종하는 데 쓰이는 셈이다.

그렇다고 군을 떠나는 전투기 조종사들을 마냥 비판할 수도 없다. 전투기 조종사들의 업무 강도는 가혹하기로 소문나 있다. 2010년 공군 조종사 대량 유출에 관한 한국국방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전투기 조종사는 3H(High Gravity, High Speed, High Altitude: 고중력, 고속도, 고고도)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하면서 항시 중력 가속도에 의한 의식 상실 위험에 노출돼 있고, 수송기나 헬기 조종사의 경우에도 정신적 착각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지적돼 있다.

더욱이 일반 전투기와 달리 P-3C는 우리나라 동·서·남해를 24시간 수호한다. 전투기가 24시간 풀가동된다는 뜻이다. 수상한 선박이 보이면 비행 고도를 최저 60m까지 낮춰 선회 비행하면서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등 내내 낮은 비행을 함으로써 난기류를 만난 것처럼 기체가 끊임없이 흔들리게 된다. 때문에 P-3C 전투기 승무원들은 구토, 만성적 위장장애, 척추 질환 등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높은 노동 강도에 비해 보상은 열악하다. 먼저 조종사의 임금이 낮다. 현재 소령급 조종사의 경우 각종 항공수당을 포함해 연 6000만~7000만원을 받지만, 군 조종사들이 민간 항공사로 옮길 경우 최소 1억원의 연봉을 보장받을 수 있다. 기장급 조종사의 경우 연봉은 그 배로 뛴다.

명예로운 승진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전투기 조종사 중에서 대령 진급자는 매년 1명이 전부다. 이마저도 2013년 이후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해군 6전단장(준장) 및 6전단의 주요 보직을 헬기 조종사가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군의 법적 정년은 중령은 53세, 대령은 56세로 민간 항공사의 60~65세에 비해 매우 이르다. 대다수 민간 항공사가 조종사 채용 연령 상한을 평균 40~42세로 정해놓고 있다. 적은 연봉에, 가뜩이나 좁은 승진 길까지 막히다 보니 민간 항공사 스카우트 제안이 쏟아지는 유능한 소령급 조종사의 이직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조종사들의 급여를 현실화하고, 복리후생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규백 의원은 “비행 경력 11년 이상 조종사의 항공수당을 지금보다 10%가량 인상하는 등 급여를 현실화하고, 조종사도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균형 있는 군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P-3C와 같은 해상초계기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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