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뚝심, 세계의 여인들 사로잡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5.12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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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화장품 한류 이끄는 서경배 리더십

현재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주식 부자’는 단연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다. 서 회장은 올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제치고 처음으로 ‘국내 상장 주식 부호’ 2위에 올랐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은 5월8일 액면 분할 후 첫 거래에서 종가 기준으로 37만6500원을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시가총액 또한 22조96억원을 기록했다. 서 회장이 이처럼 국내 재계 주식 부자 순위를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화장품 한류, 이른바 ‘K-뷰티’ 열풍을 이끌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주가가 고공비행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높은 실적이 주가 상승에 날개를 달아줬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2014년 매출액은 2013년에 비해 21% 증가한 4조7119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 또한 6590억원대에 달했다. 이 가운데 해외 매출이 8325억원에 이르는데, 특히 중국 매출이 2013년(3387억원)에 비해 37.9%나 늘어나 4673억원을 기록했다.

‘은인 경영’ 철학 빛을 발하다 

“직원이 은인이다. 은인과 함께 아시아의 미를 전 세계에 알리는 원대한 기업이 되겠다.” 아모레퍼시픽의 비약적인 성장 배경에는 ‘은인 경영’으로 대변되는 서경배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다. ‘직원이 은인’ 또 ‘고객이 은인’이라는 서 회장의 경영철학은 2년 전 조계종 원로인 고우 스님과의 만남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1월12일 서울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CICI KOREA 2015 한국 이미지상 시상식’에서 서경배 회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등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서 회장의 ‘은인 경영’ 철학은 아모레퍼시픽의 조직문화에서도 드러난다. 서 회장은 직원이 행복한 직장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지난 2002년부터 사장·팀장·부장 등 직위 호칭을 없애고, 모든 직원이 서로를 ‘~님’으로 부르도록 했다. 신입사원들도 서 회장을 부를 때 ‘회장’이란 호칭 없이 ‘서경배님’이라고 부른다. 이런 방침은 직장 내 소통이 원활해지는 데 기여했다.

‘모든 문제의 답은 고객에게 있다.’ 서 회장이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다. 서 회장은 기업이란 ‘축구공 위에 서 있는 선수’와 같다고 보고 있다. 선수가 공의 움직임에 적응하지 못하면 넘어지듯, 기업 또한 고객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시장에서 외면당한다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이 같은 고객 중심적 사고를 통해 1945년 창립 이래 70년 동안 줄곧 국내 1위 화장품회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실제 아모레퍼시픽은 고객의 니즈(욕구)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1954년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개설한 이후, 끊임없이 R&D(연구·개발)에 투자해왔다. 아모레퍼시픽의 R&D 투자 비중은 글로벌 화장품 기업들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올해 역시 매출의 3% 선에서 R&D에 투자할 계획이다.

서 회장의 ‘한 우물 파기’ 전략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당시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은 주력 사업인 화장품 외 건설·증권·패션·야구단·농구단 등 여러 사업을 벌이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서 회장은 1994년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그룹의 다른 사업 부문을 과감히 정리하고 화장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2014년 말 기준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전체 매출액(4조7119억원) 가운데 화장품 계열사(4조4678억원)가 차지하는 비중이 94%를 넘는다.

위기를 넘기자 서 회장은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다. 아모레퍼시픽은 20년 전인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자 1993년 곧바로 중국 선양에 지사를 설립해 대륙에 깃발을 꽂았다. 중국 시장에서 처음 흑자가 난 것은 지난 2007년이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중국 매출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4673억원에 달하는데 이는 해외 사업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의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매장. ⓒ 시사저널 박은숙
1988년 프랑스 진출했다가 쓴맛 보기도

해외 사업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1988년 ‘순’이라는 브랜드로 프랑스에 처음 상륙했을 땐 현지 시장에 대한 조사가 부족해 실패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1990년 프랑스 현지 공장을 인수해 ‘리리코스’ 브랜드로 재도전에 나섰지만 이 역시 벽에 막혔다.

프랑스는 전 세계 화장품 다국적 기업들이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적 시장인 데다, 스킨케어 제품이 주류인 국내와 달리 향수가 전체 화장품의 30~50%를 차지한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아모레퍼시픽은 1997년 ‘롤리타 렘피카’ 향수를 들고 프랑스 시장 재도전에 나섰다. 이와 함께 현지에 나가 있던 본사 직원을 전원 철수시키고 대부분 프랑스인으로 대체했다. 2011년엔 프랑스 향수 제조업체인 ‘아닉구탈’을 인수하며 화장품 종주국 공략에 나섰다. 이러한 현지화 전략으로 현재 롤리타 렘피카는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나라를 비롯해 세계 110여 개국에서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서 회장의 ‘뚝심 리더십’이 진가를 나타낸 대목이다.

서 회장은 올해도 글로벌 사업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및 아시아 지역 고객 조사와 연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설화수·라네즈·마몽드·에뛰드·이니스프리 등 5대 글로벌 브랜드를 앞세워 세계 화장품 시장을 휘젓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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