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간섭이 공무원연금 개혁 걸림돌
  • 최진봉 | 성공회대 교수 ()
  • 승인 2015.05.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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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수준 전락한 국민연금 복원 방안 논의해야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 역할을 했던 공무원연금 개혁 실무기구가 진통 끝에 지난 5월1일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합의해 발표했고, 여야 지도부는 이 합의안을 추인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가 날짜까지 못 박으며 그토록 바랐던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이 통과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난 5월6일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 통과의 발목을 잡은 건 그토록 공무원연금 개혁안 통과를 바라고 압박했던 청와대였다. 여야와 공무원단체, 그리고 전문가들이 모여서 어렵사리 진척시켰던 협상을 청와대가 나서 파국으로 몰고 간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청와대가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 처리를 위한 ‘판’을 뒤집은 것이다.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 50% 인상 논란

실무기구에서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보면, 연금 지급률(연금액을 결정하는 수치)을 2021년까지 5년에 걸쳐 1.90%에서 1.79%로 단계적으로 내리고, 다시 2026년까지 1.74%로 점진적으로 인하한 후 2036년까지 1.70%로 낮추는 것으로 돼 있어 20년 후 연금 지급률이 현재보다 10.5% 낮아지도록 설계돼 있다. 연금 기여율(공무원이 내는 보험료율)은 앞으로 5년에 걸쳐 현행 7%에서 9%로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현행 7.0%에서 내년부터 8.0%로 높아지고, 이후 4년에 걸쳐 매년 0.25%포인트씩 높여 5년 후에는 9%로 인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합의로 인해 공무원연금 보험료는 5년 후 현재보다 약 30% 더 내게 되고, 퇴직 후 받는 연금 수령액은 20년 후 현재보다 10% 덜 받게 되는 개혁안이 마련된 것이다. 즉 공무원연금 개혁 실무회의에서 합의한 내용은 공무원들이 지금까지 지불하던 기여금을 더 내고 퇴직 후 수령액은 덜 받도록 하는 것이다.

여야가 동의하면서 국회 통과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됐던 이 합의안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한 것은 실무기구의 합의 내용 중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을 50%’로 인상하기로 명기한 부분 때문이었다. 실무기구는 국민의 노후 빈곤 해소를 위해 현재 40% 수준인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을 50%로 올리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합의 다음 날인 5월3일 청와대 관계자가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 인상 합의는 월권이라고 비판하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께 큰 부담을 지우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국민연금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양당 지도부를 찾아가 국민연금 연계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항의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을 50%로 인상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당장 2배(현행 9%→18.8%)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국민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논리로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의 이 같은 주장은 소득 대체율 50% 인상에 필요한 보험료와 기금 고갈 시점을 현행 2060년에서 2100년 이후로 연기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 그리고 2083년에 17배의 적립배율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 등을 모두 합한 수치를 근거로 작성한 ‘뻥튀기 수치’라는 게 밝혀지면서 보건복지부가 여론몰이를 위해 과장된 수치를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정부가 과장된 수치까지 동원해가면서 오랜 시간 진통을 거듭하며 어렵사리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킨 것이다.

“대통령의 입법부 영향력 바람직하지 않아”

정부는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 50% 인상안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갑자기 추가된 내용이라고 주장하지만, 공무원단체들이 공무원연금 개혁안 협의를 시작하면서부터 정부·여당의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에 ‘공적 연금 강화’로 맞서왔던 점을 감안한다면,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 인상 요구는 갑자기 추가된 내용이 아니라 공무원단체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했던 논리의 귀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이 이처럼 어렵게 진행된 원인에는 분명 청와대가 포함돼 있다.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만들어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음에도 박 대통령은 시한을 못 박으면서까지 공무원연금 개혁을 주문했다. 그에 따라 어렵사리 주문 일정에 맞춰 여야가 합의안을 만들었음에도 청와대는 자신들의 의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내에서는 분란이 생겼고 이로 인해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 처리가 무산되고 말았다. 청와대의 메시지가 여야 합의로 어렵사리 마련된 공무원연금 개혁 법안의 처리를 무산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대통령이 입법 과정에서 의견을 피력할 수는 있지만 입법·사법·행정부가 엄격하게 분리돼 있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통령이 지나치게 입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 과정에서는 자의든 타의든 대통령과 청와대가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한 측면이 없지 않고, 이로 인해 독립 기관인 입법부의 입법 활동이 많은 부분 제약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공무원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면서 시작된 공무원연금 개혁은 여야가 참여한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합의를 이끌어냈고, 이로 인해 생긴 재정 절감분은 공적 연금 강화를 위해 사용하기로 합의하면서 ‘사회적 대타협의 모범적 사례’라는 선례를 남겼다. 그러나 정부와 청와대의 반대에 부닥쳐 합의안은 끝내 처리되지 못했고, 공무원연금 개혁은 또다시 표류하고 있다. 연금은 노후 생활 보장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 연금이 이러한 연금 본래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적 연금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무원연금 재정 절감분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를 포함해 2007년 연금 개혁 과정에서 명목소득 대체율이 60%에서 40%로 깎이면서 용돈 수준으로 전락한 국민연금을 연금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복원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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