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괴한이 휘두른 칼에 부상당했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입니다. 흉기에 찔린 사람이 미국 대사인지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온 나라가 들끓었습니다. 주요 언론은 ‘한·미 동맹이 테러당했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리퍼트 대사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도중 기이한 장면들이 연출됐습니다. 한 종교단체 신도들은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는 집단 부채춤을 추었습니다. ‘난타’와 발레 공연도 있었습니다. 어느 정당 총재는 ‘석고대죄’ 단식에 들어가고 어떤 이는 쾌유 기원 삼보일배에 나섰습니다. 난리법석이 과하다고 느끼면서도 눈감아줄 만했습니다. ‘손님’이 타국에서 변을 당해 무척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리퍼트 대사가 쾌유하고, 한·미 동맹이 더욱 굳건해진다면 굿판인들 못 벌이겠습니까. 그는 오바마 대통령과 절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습격당한 후 대범하게 ‘같이 가자’고 했을 때 감동을 먹었습니다. 우리의 이런 심정을 오바마는 헤아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돌아가는 판세를 보면 수상합니다.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미국이 우리에게 얄미운 짓만 골라 하는 일본과 바짝 달라붙었습니다. 오바마와 아베 두 정상이 우정을 과시하고 서로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걸 보면서 배신감도 들었습니다. 우리와 더 친한 줄 알았던 미국이 그럴 줄 몰랐던 겁니다. 위안부 문제는 이들의 파티 메뉴에 오르지도 못했습니다. 아베 총리가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할 때 기립박수를 열 차례나 받았습니다. 워싱턴에 뿌린 돈다발의 위력(미국 ‘포브스’ 보도)이 세긴 센 모양입니다. 아베는 연설에서 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신매매’라고 했습니다. 국가가 저지른 전쟁 범죄를 상업적 행위로 변질시켜 ‘총리’인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빠져나간 겁니다. 우리에겐 교활한 아베지만 일본 사람들은 영리한 총리라고 여길 겁니다.
문제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려고 합니다. 여러 차례 전쟁으로 잔고가 바닥난 미국은 일본의 돈 보따리에 군침을 흘립니다. 그럭저럭 중국과 맞짱 뜰 만한 힘도 갖고 있으니 부려먹기 딱 좋은 겁니다. 반면 한국은 당근과 채찍으로 적당히 관리하며 북핵 억지력 확보에 활용하는 정도입니다. 윽박질러 무기를 팔아먹는 재미도 쏠쏠할 겁니다.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습니다. 국익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시진핑, 오바마, 아베는 국익을 위해 배신도 하고 손도 잡습니다. 그들이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는 동안 우리는 외톨이가 되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약삭빠른 실리 외교를 해야 합니다. 미국이 언제까지 지켜줄 것이란 망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시진핑의 너그러운 웃음은 ‘가면’이란 걸 간파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외교적으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덩치 큰 이웃들은 서로 자기 줄에 서라고 겁박하고 있습니다. 줄을 잘못 섰다간 대한민국이 위태로워집니다.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순간 누구의 펀치를 맞고 쓰러질지 모릅니다. 어느 때보다 정부의 유연하고도 민첩한 외교력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