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지 못한 기업은 ‘폭탄’ 맞는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5.1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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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주최 ‘굿 컴퍼니 컨퍼런스’ 첫 번째 화두는 ‘compliance’

옆 나라 일본의 미즈호은행은 일본 금융에서 ‘3대 은행’으로 불리는 거인이다. 그런데 불과 1년 6개월 전 미즈호은행은 ‘반사회적’이라는 수식어를 달며 곤욕을 치렀다. 야쿠자와 금융 거래를 해왔다는 의혹이 드러나면서부터다.

2013년 9월27일 우리의 금융감독원에 해당하는 일본 금융청은 “미즈호은행이 반사회적 세력과 금융 거래를 해온 사실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폭력단 배제 조례’까지 만들며 야쿠자 차단에 나선 상황이었다. 야쿠자가 발붙일 만한 사회적 환경을 차단하겠다는 의도였는데 뜻하지 않게 금융권에서 야쿠자들과의 유착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조례까지 제정하며 단속에 나선 후 야쿠자와의 유착이 발각돼 흑자 도산한 기업도 적지 않았다.

ⓒ 시사저널 이종현
“국내 기업, 여전히 시스템으로 자리 못 잡아”

이런 사회적 상황에서 미즈호은행은 폭력단 조직원에게 230건에 걸쳐 2억 엔 이상을 대출해준 사실이 적발됐다. 사기업이지만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은행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거짓말’과 ‘모른 척’이었다. 미즈호은행은 발표가 나기 불과 6개월 전인 2013년 3월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고 밝혔지만, 이미 1년 6개월 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즈호은행과 모기업인 미즈호금융그룹 이사회에 이 사실이 그대로 보고됐던 것이다.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고 금융 당국의 제재가 가해지자 미즈호은행은 폭력단과의 결탁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담당 임원을 경질했다. “이번 사건과 나는 무관하며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항변하던 사토 야스히로 행장과 쓰카모토 다카시 회장에게는 감봉 조치를 내렸다. 그럼에도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사건이 터진 후 주가는 10%나 곤두박질쳤다.

사태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일본 금융청은 경영상의 책임을 물어 2014년 1월20일부터 2월19일까지 대출 업무를 일시 정지시켰다. 감봉 조치를 당했던 쓰카모토 회장과 사토 행장은 사임해야 했다. 이 스캔들로 처분을 당한 전·현직 임원만 54명에 달했다. 뒤늦게나마 자성론이 일고 준법경영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미즈호은행에 대한 신뢰는 뚝 떨어진 뒤였다.

일반적으로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는 법과 규범을 지키는 기업 경영 활동을 뜻한다. 보통 준법경영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단순히 윤리나 도덕적인 면을 준수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할 때가 있다. 앞선 미즈호은행의 사례처럼 때로는 기업을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5월27일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사사저널 주최 제3회 굿 컴퍼니 컨퍼런스에는 세 가지 키워드가 등장한다. 그중 첫 번째 화두가 바로 ‘컴플라이언스’다. 컴플라이언스의 핵심은 법과 규정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경우 조기에 발견해내고 문제를 재빨리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의 경우 경영 프로세스 전반에 걸쳐 법과 규정을 준수했는지 정도를 체크하는 단계에 멈춰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 시작이지 갈 길이 멀다.” 한 대기업 준법경영실 소속 변호사는 미흡함을 강조한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컴플라이언스가 강조되고 있지만, 여전히 시스템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운영되려면 CEO의 의지와 자원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단순히 법과 규정을 알리고 개인에게 알아서 지키라는 정도다. 개인의 문제로 넘길 경우 일탈하는 직원의 수만큼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용상 미국 변호사는 우리 기업의 준법경영 시스템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각 기업에는 컴플라이언스 담당 부서가 있어야 하고 회사의 최고위층은 그 부서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법 행위가 발견되고 척결될 수 있다.”

컴플라이언스가 미흡할 경우 기업이 받는 리스크는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글로벌 기업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최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세계 각국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활동을 감시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적 관행에 익숙한 채로 해외에서 활동할 경우 자칫하면 기업이 휘청거릴 정도로 센 과징금을 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종의 컴플라이언스 리스크다.

최근 9년간 해외 부과 과징금 3조2000억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2005~13년 9년간 해외에서 부과받은 과징금이 총 3조2000억원을 넘는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4년간 고작 438억원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셈이다. 과징금의 97% 이상은 미국과 EU(유럽연합)가 부과했다. 미흡한 컴플라이언스의 대가치고는 그 손실이 어마어마했던 셈이다.

특히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FCPA)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FCPA는 미국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도 처벌할 수 있다. 관할권이 넓다 보니 외국 기업들이 줄줄이 걸려들 소지가 크다. 미국의 통신망이나 은행을 이용했을 경우, 혹은 국내 기업이 고용한 에이전트나 파트너가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FCPA가 적용될 수도 있다. 박상윤(Nathan Park) 코브레&김 법률사무소 워싱턴D.C. 지사 소속 변호사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판례에 따르면 한국 내에서는 정부 기관에서 직접적으로 일하는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 공기업 직원도 ‘해외 관리’의 정의에 포함될 수 있다. ADR(미국 시장에서 발행한 증권)을 통해 미국 주식시장에 주식이 등록돼 있는 한국 기업은 FCPA를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일견 한국 내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일지라도 부적절해 보일 경우 미국의 관계 당국이 FCPA 조사를 개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렇다 보니 국내 기업들의 대응도 진화하고 있다. 컴플라이언스에 대해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자세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활발한 곳은 삼성이다. 2011년 준법경영 선포식을 시작으로 컴플라이언스 조직을 각 부문에 두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는 회사 평가 및 임원 평가에 준법지수를 반영하고 있다. 계열사별 준법경영 운영 수준을 평가하는 회사 평가는 최고경영자(CEO)의 준법경영 의지, 조직 체계, 경영 활동을 지수화해 반영한다. 임원 평가는 해당 임원이나 담당하고 있는 부서원의 준법 프로그램 참여 여부를 평가하고, 자발적 준법경영 활동에 대해서는 가산점을 부과한다. 컴플라이언스 위반 사례를 제보받는 사이트도 만들었는데 삼성전자의 경우 온라인과 우편 등으로 임직원들의 부정 사례를 제보받는다. 2011년 270명이던 컴플라이언스 관련 인력은 2013년 390명까지 늘어났다. 과거의 예방 차원에서 벗어나 기업 경쟁력 강화로 컴플라이언스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도다.

주요 대기업들의 컴플라이언스 강화 흐름은 확연하다. 컴플라이언스 전담 인력을 늘리고 사이버 신문고 체계를 강화하며 직원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준비가 중요한 이유는  각국의 규제를 위반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갖췄는지 여부도 키포인트다. 기업에 벌금을 부과하는 기준이 되는 미국 연방 양형 가이드라인(Federal Sentencing Guideline)을 보면 컴플라이언스 제도를 효과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처벌을 덜어준다는 규정이 있다.

지멘스의 흥망에서 보는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

독일의 다국적 전자업체인 지멘스는 2006년 4억6000만 유로(약 5653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국내외에 뇌물로 뿌려 적발됐다. 이 돈은 나이지리아의 독재자에게, 올림픽 보안 시스템 계약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무원들에게 전달됐다. 관련 벌금과 소송비용, 추징세 등을 합치면 무려 15억 유로(약 2조원)가 회사 부담으로 돌아왔다. 신뢰도가 추락해 각종 제휴와 계약은 연기되거나 파기됐다.

이 스캔들은 거꾸로 지멘스를 컴플라이언스의 모범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계약을 따내던 문화를 불식시켰고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임원 500명을 징계했다. 체질 개선 작업과 더불어 2009년부터 부패 척결을 위한 세계 각지의 비영리 기관에 지원금을 출연하고 있는데 그 액수가 15년간 총 1억 달러(약 1093억원)에 달한다. 전 세계 600명의 사내 준법감시인을 두고 있는데 한국지사도 마찬가지다.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한 지멘스는 어떻게 됐을까. 2006년 668억 유로였던 매출은 불과 2년 후인 2008년 773억 유로로 불어났다. 순이익도 같은 기간에 50억 유로에서 93억 유로로 증가했다. 흥망을 겪은 지멘스는 컴플라이언스가 기업 경쟁력의 강력한 무기임을 증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주최로 5월27일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제3회 굿 컴퍼니 컨퍼런스에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컴플라이언스가 논의된다. 먼저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특별연설자로 나서 ‘갑질 기업과 금융권 거래’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내부 통제와 준법 감시가 중요한 금융권을 다루는 수장으로서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규제 당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컴플라이언스는 어떨까. 공정거래위원장과 국세청장을 지냈던 백용호 이화여대 정책대학원 교수가 ‘기업이 탐욕을 억제하면 매출·이익이 줄어들까’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해외 연사 중 미국 와이오밍 경영대에서 기업 윤리를 가르치는 팀 C. 마주르(Tim C. Mazur)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윤리경영 기구인 ECOA(Ethics &Compliance Officer Association)의 업무최고책임자를 7년 11개월간 역임했다. 그는 컨퍼런스에서 ‘윤리 그리고 규정 준수: 최고를 추구하며’라는 주제로 연단에 선다.

주요 대기업들의 임원진 회의에 참석해 ‘혁신’을 강조하고 있는 김병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오후 세션에서 애사심과 컴플라이언스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국내 공정 거래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정경택 김&장 변호사는 ‘호미로 막지 못한 죄 값’이라는 강연을 통해 법무 현장에서 느끼는 기업의 준법 제도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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