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5·18 유족과의 화해 반대했다”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5.1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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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출신 김충립 전 특수전사령부 보안반장 증언…<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도 요청했으나 무산

예년과 같았다. 국가보훈처는 3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하지 않겠다고 5월14일 발표했다.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은 따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이 노래를 제창할 경우 국민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래가 1991년 제작된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점, 4·3 희생자 추념식의 <빛이 되소서>, 6·10 민주항쟁 기념식의 <광야에서>도 합창 방식으로 부른다는 점을 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것은 정부 기념식 관례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2007년까지는 노래가 제창됐다. 5·18 민주화운동 단체와 광주시가 다시 이 노래를 공식 식순에 제창으로 포함시켜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결국 올해도 무산됐다.

지난 2월, 5·18 관련 단체 등 6곳에서 청와대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요청하는 건의서를 보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5·18기념재단, 영호남성시화운동본부, 한반도프로세스포럼 등이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단체 대표들과 면담해줄 것, 3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줄 것, <임을 위한 행진곡>의 진정성이 왜곡되거나 폄하되지 않게 도와주고 기념식 때 제창될 수 있도록 해줄 것 등을 요청했다. 보훈처 주장과 달리 이들은 국민 통합과 동서 화합을 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필요하다고 했다. ‘임’이 김일성이 아닌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사람을 의미한다는 점, 이미 이 노래가 5·18을 상징하는 노래가 된 만큼 광주에서 거행되는 국가 행사에서만은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원본 악보와 국립 5·18 민주묘지의 추모탑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회신은 보훈처에서 왔다. 보훈처는 2월23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거행할 계획이고, 많은 국민의 의견을 참고해 5·18 기념식이 잘 거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4월14일, 다시 보낸 건의서에도 같은 답변이 왔다.

김충립 “5·18도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

특수전사령부 보안반장과 정호용 특전사령관 보좌직을 거쳤다. 1980년 5월 당시 특전사에 근무했다. 청와대에 건의서를 발송한 단체 중 하나인 한반도프로세스포럼 김충립 회장(68)은 5공화국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1980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했다.

김충립 회장은 5공 쿠데타 세력과 광주 사이에 ‘화해의 장’을 만들려 했다. 2013년 9월 광주에 찾아간 김 회장은 5·18 단체 측에 “내가 5공화국 출신이다. 5공화국을 대표해서 사과하겠다. 묘지 참배를 하게 해달라”고 했으나 거부당했다. 5공화국 출신 사람들의 사과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김충립 전 특수전사령부 보안반장 ⓒ 시사저널 이종현
김 회장과 5·18기념재단, 5·18 관련 단체들이 모여 6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눴다. ‘국민 통합을 위한 동서 화합 전진대회’를 열어 5공화국 군부 핵심 인사들이 5·18에 대해 사과하고 5·18 인사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5·18 관련 단체들은 행사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5공화국 군부 핵심 인사들의 ‘자발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김 회장은 정호용 전 국방부장관의 참석을 자신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설득하겠다고 했다. 김 회장은 “내가 소위 때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당시 중령)을 봐와서 친분이 있었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는 것에 대해 보안부대 내에서 여론조사가 있었다. 다들 대통령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군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며 “모든 것이 각본을 짜서 이뤄진 ‘대통령이 되는 과정’이었다. 5·18도 의도적으로 일으켜 광주 시민들을 때려잡은 것”이라 주장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과하는 자리’에 참석하는지가  관건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1996년 5월 열린 5·18 관련 공판에서 “광주 사태 진압은 정당했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한 번도 광주에 대해 화해나 사과를 시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전 전 대통령이 행사에 참석하게 하기 위해 이학봉 전 의원 등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설득하려 노력했다”며 “그럼에도 전 전 대통령은 ‘단지 광주에서 일어난 폭도들을 진압한 것이지 내가 사과할 것이 뭐가 있느냐’는 입장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 “전 전 대통령은 ‘광주 사태는 폭동이고, 내가 정당했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를 기다려야지, 먼저 백기를 들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참석을 약속했던 정호용 전 장군도 전 전 대통령의 완강한 태도를 꺾을 수 없었다.

전두환 “광주 사태는 폭동, 사과할 이유 없어”

결국 화해는 무산됐다. 5·18 관련 단체와 한반도프로세스포럼이 참가한 2014년 11월 간담회에서 “5공화국과의 화해는 포기하자”는 말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5·18기념재단 이기봉 사무처장은 5월15일 “화해가 무산된 이유는 진실한 고백과 사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5공화국과 광주 사이의 화해는 절대 성립될 수 없다고 본다”고 못 박았다.

김 회장은 “사과를 하지 않는 것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하지 않는 것도 화합을 할 수 있는 길을 막는 일”이라고 밝혔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조용하다. 이 상황에서 제3자는 북한 특수부대에 의해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몰아가면서 피해자들의 분노와 한을 자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지난해에 이어 올해 기념식도 ‘반쪽짜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5·18민주유공자 정춘식 유족회장은 “‘화해 시도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기념식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무산됐다. 5·18 관련 단체는 (기념식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복면을 했던 시민들. ⓒ 광주시 제공
5·18 당시 복면한 시민들이 현장에 있었다. 극우 논객 지만원씨는 2014년 하반기부터 책자나 강연회, 인터넷 게시글 등을 통해 이들이 ‘북한 특수군’이라고 주장했다. 지씨가 2014년 10월 발간한 <5·18 분석 최종보고서>에는 ‘북에서 온 환상의 능력자들은 복면을 하고, 무기를 들고, 차를 몰며 날랜 모습들을 시민들에 보여주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2014년 12월에는 ‘뉴스타운’에 ‘5월18일부터 5월21일 계엄군을 시 외곽으로 추방할 때까지의 무서운 조직력과 전투력, 이는 광주 시민들이 아니라 외지인 600명이 발휘한 것’이라며 ‘이 역시 북한 특수군 손에 쥐어진 smoking gun(결정적 증거)이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1987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발간한 ‘광주민중항쟁 기록 사진집’도 북한과 공모해 발간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에 대해 5·18역사왜곡대책위는 명예훼손과 모욕죄 등으로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지씨가 북한 특수군이라고 주장하는 사진에 나온 ‘복면 시민들’을 찾았고 이들이 고소에 동참하기로 했다. 

왜 시민들은 복면을 했던 것일까. 1980년 5월21일 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가 있기 전까지는 얼굴을 가리는 사람이 없었다. 집단 발포 이후 시민들이 무장을 하면서 얼굴을 가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광주시 상임 인권옴브즈맨 안종철 박사는 무등일보에 6차례 기고한 글을 통해 “시민들이 이후에 피해를 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피해의식에서 일시적으로 취한 행동이다. 목포경찰서에도 복면을 하다 체포된 시민이 있다는 수사 기록이 있다. 일부 시민들이 복면을 하고 민중항쟁에 참여했다는 기록”이라며 지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안 박사는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에 대한 국가적 조사가 1980년 사건 직후 계엄사 발표부터 2012년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 조사까지 총 여섯 차례나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북한군이 대규모로 남한에 들어왔다는 증거나 정황은 발표된 적이 없다”며 “국방부도 2013년 5월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부인했다”고 밝혔다.

2008년에도 5·18 단체는 지만원씨를 고소했다. ‘5·18이 폭동이고 북한이 개입한 내란 음모였다’는 내용을 인터넷에 게시해 5·18 민주유공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2012년 무죄를 선고했다. 5·18 민주유공자만 4000명 이상이기 때문에 비난 정도가 옅어져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광주시 5·18역사왜곡법률자문관 임태호 변호사는 “올해 5·18 이전에 (이번 사건을) 광주지검에 고소하려고 했는데 정밀한 분석을 하느라 늦어졌다. 5월 중에 고소할 예정”이라며 “복면 시민들을 다 확인했다. 그분들이 명예훼손 피해자로 나서면 특정인이 된다. 북한 특수원이라는 왜곡된 주장에 대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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