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이 시청자에게 말을 걸다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5.05.1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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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예능 쌍방향 ‘소통’ 시대…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 인기

기존 프레임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프로그램이 떴다. 바로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이다. 김구라, 초아(걸그룹 AOA 멤버), 홍진영, 강균성, 백종원, 김영철 등이 출연했다. 출연진만 보면 메인 MC와 개그맨, 아이돌, 핫한 방송인, 유명 일반인 등을 조합한 여느 프로그램처럼 느껴진다. 요즘 스튜디오 집단 토크쇼는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들을 조합하는 것이 대세다.

<마리텔>은 놀랍게도, 이 출연자들을 따로 떼어놓았다. 그 전까지 예능은 출연자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그들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로 재미 요소를 만들어냈다. 출연자들이 서로 돌직구를 날리면서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우애를 나누기도 하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관전하는 구도였던 것이다. 출연자를 한 명씩 따로 떼어놓고 혼자서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은 기존 예능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금기였다. 혼자 이야기하는 방송은 뉴스나 EBS 강의 정도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마리텔>에선 출연자들이 각각의 공간에 격리돼 카메라를 바라보고 혼자 이야기한다. 이 프로그램이 처음 파일럿 방송으로 방영됐을 때, 지나치게 모험적인 형태라며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시청자는 이 파격적인 시도를 받아들였다. 시청률 4%만 넘어도 성공이라는 요즘에 6.7% 고지까지 올랐을 뿐 아니라, 인터넷에선 시청률 수치 이상의 뜨거운 반응이 나타나 <복면가왕>과 더불어 모처럼 만에 MBC 신규 예능 히트작으로 떠올랐다.

연예인끼리 대화에서 시청자와의 대화로

<마리텔> 출연자들은 혼자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야말로 고독한 독백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시청자에게 직접 말을 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과거 예능이 연예인들끼리 대화하는 것을 시청자가 구경하는 구도였다면, <마리텔>에선 연예인끼리의 대화가 대폭 줄어든 대신에 (연예인 초대 손님이 등장하긴 하지만 제한적이다) 방송 출연자가 시청자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 뉴스나 EBS 강의와 다른 것은 시청자가 이 대화에 실시간으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 혁신의 핵심이 있다.

이미 시청자와의 실시간 대화를 통해 인기를 끄는 방송 형태가 있었다. BJ라고 불리는 개인 진행자들의 인터넷 방송이다. 이들은 시청자와 실시간 채팅을 통해 상호 작용하며 방송을 이끌어갔는데 여기에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일반인인데도 연수입이 억대에 이르는 개인 방송 진행자가 속출할 정도였다. <마리텔>은 바로 이런 흐름을 지상파 방송에 접목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인터넷의 도전에 대한 방송사의 응전인 셈이다.

<마리텔>은 일단 출연자들이 각각 인터넷 방송을 하며 시청자와 대화하고, 그 모습을 녹화한 다음 편집 과정을 거쳐 지상파 방송으로 내보내는 구조다. 즉 방송이 인터넷과 전파를 통해 두 번 이루어지는 형태다. 그렇게 방송이 이루어진 후엔 시청자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장면이 다시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고, 네티즌은 방송 소스를 활용해 패러디 등 다양한 놀이를 즐기며, <마리텔> 제작진은 그러한 네티즌의 놀이를 다시금 본방송에 반영한다. 인터넷 소통 구조 속으로 지상파 프로그램이 뛰어든 셈이다.

인터넷 시대 맞아 채널 분산이 대세

네티즌 놀이의 대표적인 사례가 ‘기미 작가’ 놀이다. ‘기미상궁’을 패러디한 것이다. 요리사이자 사업가인 백종원이 자신의 요리를 작가에게 맛보라고 했는데, 그때 나타난 작가의 표정을 프로그램은 디시인사이드 패러디 감성으로 CG(컴퓨터그래픽) 처리를 했다. 그 작가의 이미지가 ‘기미 작가’라며 네티즌 사이에서 놀이의 소재가 됐는데, 프로그램이 다시 CG를 통해 네티즌 놀이를 언급하며 시청자와의 호흡을 이어나갔다. 네티즌은 ‘CG가 약 빤 듯하다’(대단히 훌륭하다), ‘아스트랄하다’(환상적이다)라고 호응한다.

프로그램이 이렇게 네티즌 감성과 맞아떨어지는 것은 1982년생인 PD 자신부터가 ‘뼈티즌’(뼛속까지 네티즌)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소통과 놀이문화에 익숙하고 기존 지상파 방송의 딱딱한 분위기엔 답답함을 느끼는 정서를, 젊은 제작자와 시청자가 공유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마리텔>의 최대 스타로 떠오른 백종원이 소통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그는 아무리 정신없이 요리를 만들고 있을 때라도 채팅창을 보며 시청자의 말에 하나하나 반응한다. 그러다 보니 초장에게 사과하고, 믹서기 제조사에 사과하고, 고추 언급에 사과하는 등 시청자 요구에 따른 사과 퍼레이드가 이어졌는데, 이렇게 시청자의 장난 섞인 요구에도 바로바로 반응하는 쌍방향 방송에 사람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내는 것이다.

시청자와의 소통은 이제 새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꼭 <마리텔>처럼 채팅창을 통한 실시간 소통이 아니라도, 예능 프로그램이 연예인들만의 세계에서 바깥으로 나오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최근 새롭게 시작돼 비교적 호평을 받은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에서도 유재석이나 김구라 같은 연예인 출연자의 역할이 제한적인 반면, 일반인 출연자의 비중이 크게 나타난다. 얼마 전엔 욕을 입에 달고 사는 10대와 그 어머니의 대화를 통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요즘 젊은 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무한도전>이 ‘약을 빤 듯한’ 네티즌 정서 CG의 원조였다. 그 외에도 시청자 투표라든가 각종 이벤트를 통해 시청자와 소통의 접점을 이어갔고, 그 결과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으며, 그런 소통의 흐름이 이젠 <마리텔>의 인터넷 방송으로까지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리텔>에선 다양한 인터넷 방송 채널이 한 프로그램 속에서 병렬적으로 나열된다. 과거처럼 하나의 스토리에 집중하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정신 집중에서 정신 분산으로 나아가는 것이 기계 복제 시대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채널의 분산이 대세가 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시청자와의 소통을 통해 출연자의 운명이 결정되며, 그 모습은 TV 방송과 음원 시장, 인터넷 동영상 클립이라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비되고, 각 도전자별 인터넷 클릭 수가 다시 TV 본방송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언필칭 ‘융복합’ 방송의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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