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기강·기밀을 잡아라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5.05.2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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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30년도 훌쩍 지난 군 생활을 기억할 때 맨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춥고 거칠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시절의 군은 시설도 열악하고 사람들도 사나웠습니다. 그 시절 군 생활이 남긴 여러 불편했던 기억 중에서 특히 깊이 새겨진 것은 ‘도둑질 망보기’였습니다. 상관이었던 한 하사관이 드럼통에서 기름을 몰래 빼내 영내를 무사히 빠져나가기까지 망을 봐줘야 하는 역할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희미하긴 하지만 그 일은 거의 매주 한 차례씩 반복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료들도 다 알면서 모른 척 넘어가는 분위기였고, 심지어는 “다른 부대에서도 다 그런다던데”라는 말까지 심드렁하게 내뱉었습니다. 그렇게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된 군수용 유류가 눈먼 기름이 되어 누군가의 잇속을 채우려 밖으로 새어나갔습니다.

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은 방위사업과 관련한 비리 의혹이 언론에 오르내릴 때마다 조건반사를 일으키듯 뇌리를 헝클어놓습니다. 내가 낸 세금이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가 엉뚱한 자들의 배를 불려주었다는 생각이 들면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칩니다. 다른 것도 아닌,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무기 도입에 비리가 개입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발등을 찍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군을 보면 이제 분노를 넘어 어이가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국군 기무사 요원이 무기 도매상에게 140여 건의 기밀 자료를 돈을 받고 건넨 일이나, 현역 군 간부까지 합세해 전략물자인 탄창을 해외로 불법 수출한 사건 등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공군의 최고 지휘관인 참모총장은 공금 유용 등의  의혹에 휩싸여 있습니다. 군 안팎에서 기름보다 더 중요한 기강과 기밀이 줄줄이 새고 있는 것입니다.

군에서 일어나는 비리는 곧바로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할 수밖에 없습니다. 뒷돈 챙기느라 국가 수호의 핵심인 무기 도입이 엉터리로 이뤄지고, 군 간부들의 기강마저 해이해지면 군 전력이 와해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자칫하다 싸워보기도 전에 스스로 와르르 무너지는 최악의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북한이 핵·미사일 위협을 계속하고 있고, 최근에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전력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의 측근들을 잔혹하게 공개 처형하는 등 김정은 위원장의 공포 정치도 날로 심해져 향후 북한의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습니다(42쪽 한반도 기사 참조).

잇단 폭행·비리 사건에 최근의 예비군 훈련장 총기 사고에 이르기까지 휘청거리는 군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지켜줘야 할 군이 국민들을 오히려 걱정 속에 빠뜨린다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이제 군은 더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스스로 팔을 걷고 나서서 자정 노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내부 고발을 장려하는 제도 강화 등 돈과 기밀, 기강이 새나가는 것을 감시하고 막을 총력적 ‘망보기 작전’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이 군을 걱정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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