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미국 본토 테러는 시간문제”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5.05.2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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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공포 망령에 시달리는 미국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이른바 ‘9·11 테러’가 올해로 꼭 15년째를 맞는다. 미국 국민들은 당시 테러리스트가 납치한 민간 여객기에 의해 국방부 건물이 공격당하고 미국 경제의 상징이었던 뉴욕 맨해튼의 쌍둥이 빌딩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처참하게 붕괴되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이후 부시 행정부가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개시하는 등 엄청난 전쟁비용을 감당하면서 미국 경제는 한동안 나락으로 떨어졌다.

‘9·11 테러’로 인한 미국의 실질적인 피해는 계산할 수 있는 물질적인 피해가 전부가 아니었다. ‘미국 본토도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테러에 대한 심리적 공포였고, 이는 모든 미국민들에게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PTSD)’로 남았다. 그만큼 ‘테러(terror)’로 호칭되는 사건이나, 심지어 그러한 용어를 언론이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미국민들에게는 심각한 공포가 되는 셈이다. 그 끔찍한 ‘9·11 테러’ 공포의 망령이 지금 다시 미국민들에게 몰려들고 있다. 지난 5월4일 미국 텍사스 주 갈랜드 시에서 진행된 무함마드 만평 전시회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당시 이 사건은 총격을 가한 2명의 용의자가 현장에서 사살되고, 보안요원 1명이 다리에 총상을 입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5월3일 미국 텍사스 주 갈랜드에서 열린 이슬람교 선지자 무함마드 만화 그리기 대회에서 총격이 발생해 당국이 현장을 폐쇄했다. 사진은 경찰에 의해 격리 조치된 대회 참가자들. ⓒ AP연합
IS “갈랜드 전시회 총격 사건은 우리 소행”

미국이 타도해야 할 1순위 테러 집단으로 규정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이번 총격 사건을 자신들의 소행으로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IS는 이번 사건 배후를 자처함과 동시에 “미국인들은 우리 전사들이 더 끔찍한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미국 15개 주에 71명의 훈련된 게릴라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혀 공포감을 가중시켰다. 한마디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미국 본토에서 테러를 일으킬 수 있다는 협박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이 공갈이 아니라는 사실이 전직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발언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이클 모렐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5월10일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IS가 미국 본토에서 대량 살상을 초래할 9·11 테러 방식의 직접 공격을 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했다. 모렐 전 국장은 5월 말 출간에 앞서 최근 내용을 공개한 자신의 저서 <우리 시대의 위대한 전쟁: IS에서 알카에다까지 테러에 맞선 CIA의 투쟁>에서도 알카에다의 부활에 대한 예측 실패와 IS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이번 무함마드 만평 전시회 총격 사건으로 그의 발언은 집중 조명을 받으며 미국민을 테러의 공포에 휩싸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전문가들은 IS·알카에다 등이 지금 당장 9·11 테러에 버금가는 미국 본토 테러 공격을 단행할 능력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미국 텍사스 주 메리 대학의 테러리즘법센터 소장인 제프 애디콧도 5월7일 ‘워싱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IS가 지금 당장은 미국에서 9·11 테러 같은 대규모 테러를 감행할 수 없으며 당분간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을 선동하는 작전을 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는 “IS가 점점 세력과 능력을 키워가고 있고 수십억 달러의 자금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테러를 기획한다면 성공 가능성은 75% 이상이며, 그 규모는 9·11 테러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는 IS의 주장이 허풍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수년 안에 미국 본토에서 대규모 테러를 저지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IS 테러리스트가 미국 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대테러 전략과 정책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IS나 알카에다 같은 조직적인 테러리스트들은 대테러 전략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대처가 가능할지 모르나, 이른바 자생적 테러리스트인 ‘외로운 늑대’에 의한 공격은 실질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이는 이미 2013년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대회 폭발’ 사건에서 잘 드러났으며, 이번 무함마드 만평 전시회 총격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총격 사건이 발생하기 몇 시간 전에 테러 대비 지시를 현지 경찰에 내렸지만, 이는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FBI 수사 결과 이번 총격 사건의 범인은 아랍계 미국인 엘튼 심프슨(30)과 나디르 하미드 수피(34)로 밝혀졌지만,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이 5월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그들이 이번 총격 사건을 저지를지 예상하지 못했다”고 실토한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특히 심프슨의 경우 이미 이슬람 관련 테러 혐의로 기소된 전력이 있음에도 경찰이 이런 자들을 일일이 관리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군사력으로는 IS를 이겨도, 소셜 네트워크(SNS)로는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등장하는 이유다.

2001년 9월11일 테러를 당한 미국 월드트레이드센터. ⓒUkrinform
자생적 테러리스트 ‘외로운 늑대’에 속수무책

자생적 테러리스트인 외로운 늑대가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해가는 상황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는 탓에 미국민들의 공포감은 더해만 간다. 일부에서는 미국 정계의 극우 보수 세력들이 중동 지역에서 IS와의 전쟁을 부추기기 위해 이런 공포감과 위기의식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공화당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에 반하는 반(反)이민자 정책 수립이나 보수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공포를 과장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IS의 격퇴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상군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화당으로서는 테러 공포가 확대되는 상황을 정략적으로 십분 활용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정략적으로만 보기엔 미국민들이 갖는 공포감이 너무 심하다. 미국 언론들은 지난 1월 초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과 비교하면서 이번에 발생한 무함마드 만평 전시회 총격 사건을 이른바 ‘미국판 샤를리 에브도’로 부르고 있다. 5월12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승객과 승무원 등 240여 명을 태운 워싱턴발 뉴욕행 열차가 탈선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최소 6명이 사망하고 150여 명이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미국 언론이 사건 발생 10여 분 만에 속보로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처음으로 말한 내용은 사상자 숫자가 아니라 “FBI는 이 사건에 테러와의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테러 공포에 휩싸인 미국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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