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 불똥 뉴욕까지 튀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5.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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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총장 조카, 경남기업 소유 베트남 빌딩 매각 사기 의혹 파문

‘성완종 리스트’ 불똥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까지 튀고 있다. 경남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베트남 하노이의 초고층 빌딩 ‘랜드마크72’ 매각 추진과 관련해 반기문 총장의 동생과 조카가 사기 의혹에 휘말리면서다. 반 총장의 조카인 반주현씨는 8000억원 대에 이르는 랜드마크72의 매각 주관 업무를 독점적으로 진행해왔고, 반씨의 아버지이자 반 총장의 동생인 반기상 전 경남기업 고문이 이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 부자가 이 과정에서 반 총장을 거론하며 매각 업무를 진행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반 총장을 둘러싼 의혹도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반 총장이 직접적으로 이번 사건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나오고 있지 않지만,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주목받아오던 반 총장으로서는 난감한 처지가 됐다.

“반 총장 배경 가진 반씨 부자에 큰 기대”

의혹의 핵심은 매각 사기의 진위 여부와 반기문 총장의 관련성 등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우선 반 총장의 조카인 반주현씨와 부친 반기상 전 고문 등이 랜드마크72 매각 과정에서 계획적인 사기 행각을 벌였느냐 여부다. 지난 3월 말 경남기업은 채권단에 카타르투자청(QIA)이 랜드마크72 매입 의향을 표시했다는 내용의 서한을 공식 제출했다. 이 문서는 랜드마크 매각 주관사인 미국 부동산업체 콜리어스인터내셔널 뉴욕지점 임원인 반씨가 QIA 측으로부터 건네받아 경남기업에 전달한 서류다. 하지만 이 투자의향서에 대해 QIA가 공식 부인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JTBC 보도에 따르면, QIA 관계자는 “문서는 완전히 가짜다. 내 서명도 위조됐다”며 “반주현씨가 랜드마크72에 대해 매수 의사를 물어본 적은 있지만 QIA는 매수 의향이 없음을 이미 밝혔다”고 말했다. QIA는 최근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이를 재확인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5월19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랜드마크72 매각 사기’ 의혹과 관련해 해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에 대해 반주현씨는 “나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일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카타르 왕족과 네트워킹이 되는 미국인 H씨를 통해 QIA로부터 공식 서신을 받아줄 것을 요청했다”며 “만에 하나 정말 공식 서한이 조작된 것이라면 H씨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각 추진 과정에서 협력해온 중간 매개자가 위조 서류를 전달했고, 자신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얘기다.

또 하나의 핵심 쟁점은 반 총장이 자신의 동생과 조카가 추진해온 랜드마크72의 매각 과정에 관여했는지 여부다. 반 총장은 5월19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근 일부 언론에서 조카와 관련한 보도를 봤다. 경위 여하를 불문하고 물의를 일으켜 민망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조카의 사업 활동 등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관여한 일도 없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고 해명했다.

반면 고 성완종 전 회장의 장남인 성승훈 전 경남기업 경영기획실장 등 경남기업 측은 반주현씨가 매각 주관사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배경이 작용했다는 입장을 보인다. 반 총장은 성 전 회장이 주도한 충청포럼의 창립 멤버이고, 생전 여러 차례 만나는 등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승훈 전 실장의 한 측근 인사는 5월20일 기자와 만나 “반주현씨가 매각 주관 업무를 맡게 된 것은 반기상 전 고문의 추천이 있었던 데다, 반씨가 반 총장과의 관계를 강조했기 때문”이라며 “랜드마크72의 매각을 통해 현금 유동성 확보에 전력을 다해온 경남기업도 반 총장이라는 배경을 가진 반씨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반씨가 경남기업 측에 보낸 이메일에는 “카타르 국왕과 유엔 사무총장께서 유엔에서 오피셜 미팅(official meeting)이 있었고 제가 알고 있기로는 경남기업 랜드마크72에 대해 언급을 하셨고…”라고 돼 있다. 이에 대해 반씨는 성 전 회장과 경남기업 관계자들에게 반 총장의 영향력을 활용해 카타르 국왕에게 부탁해 건물 매각이 성사되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남기업이 어려움에 처한 상태에서 성 전 회장이 랜드마크72 매각을 서두를 당시 아버지 입장에서는 반 총장에게 부탁해보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반씨의 주장을 요약하면, 반 총장을 언급한 것은 매각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경남기업 측에 대한 일종의 ‘립서비스’였다는 것이다.

경남기업이 매각을 추진해온 베트남 하노이의 초고층 빌딩 ‘랜드마크72’. ⓒ 연합뉴스
“반기문 총장 거론은 ‘립서비스’였다”

그러나 반주현씨가 경남기업에 보낸 이메일을 보면 립서비스 수준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반씨가 극비 사항인 유엔 사무총장의 일정을 구체적으로 인지한 가운데, 반 총장에게 매각과 관련한 내용을 전달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경남기업 측에 언급해왔기 때문이다.

2013년 9월24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68차 총회에서 반기문 총장은 10여 개국 정상과 미팅을 했다. 이 가운데는 랜드마크72 매각 대상이었던 QIA의 수장인 카타르 국왕도 참석했다. JTBC가 보도한 반씨의 이메일에 따르면, 총회 다음 날인 25일 카타르 국왕 초청으로 열리는 칵테일 파티에 반주현씨가 참석할 예정이라고 돼 있다. 이 자리에 아버지인 반기상 전 고문이 요청해 반기문 총장도 참석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반씨는 ‘카타르 국왕 건 리포트’라는 제목의 문서를 경남기업 측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반주현씨는 별다른 성과 없이 매각 주관 업무를 2년이나 맡고, 선급금 59만 달러까지 받는 등 특혜성 지원을 받았다. 성승훈 전 실장 측근은 “반씨가 매각 업무를 독점적으로 맡은 2년여 동안 단 한 차례도 매수 희망자와 미팅을 주선하지 않고 경남기업이 관여할 수 없도록 차단해왔다”며 “성 전 실장도 이러한 점을 우려했고 반씨와의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그대로 있었던 것은 성 전 회장과 경남기업이 비싼 가격으로 매각을 자신했던 반씨를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경남기업의 랜드마크72를 둘러싼 매각 사기 의혹은 결국 법적 문제로 비화할 전망이다. 경남기업의 법정관리를 지휘하는 법원 파산부는 QIA의 관련 서류가 위조됐는지 여부를 가리는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해당 문서 위조가 사실로 드러나면 관련자에 대한 형사 고소와 손해배상 청구 등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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