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나리,너나 잘하세요!”
  • 이준한 |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5.05.2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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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특수활동비는 눈먼 돈…영수증 없이 못 쓰도록 해야

정말 가관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 이야기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서 한동안 특유의 독설을 퍼붓더니, 검찰에 출두해 ‘모래시계 검사’로서 체면을 제대로 구긴 다음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 때문이다. 홍 지사가 검찰에 출두하면서는 “1억에 양심을 팔 만큼 타락하지 않았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달랑 이틀 만에 “경선 자금 1억2000만원은 집사람의 개인 금고에서 나온 것”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 돈은 자신이 10여 년 동안 변호사를 할 때랑 2008년 원내대표를 할 때 집에 갖다준 것이었단다. 치사하게 천하의 홍준표 지사가 성완종의 1억을 안 받았다는 알리바이로 다름 아닌 자신의 부인을 내세웠고, 공금인 국회대책비의 일부를 생활비로 전용했다고 자인해버렸다. 홍 지사가 스스로 공금을 유용해서 양심을 팔아먹었다고 인정할 만큼 옹색한 처지에 내몰렸다는 것인가.

이 판박이가 불과 일주일 만에 또 터져 나왔다. 뇌물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아들의 캐나다 유학 자금과 부인에게 준 생활비의 출처로 상임위원장 직책비 통장을 내세웠다. 신 의원은 2012년부터 2년 동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그때 상임위원장 직책비 통장에서 현금을 마련해 사적으로 써버렸다고 진술했던 것이다. 신 의원도 홍 지사와 똑같이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로,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국회대책비를 제시했다. 두 사람은 똑같이 국회대책비가 직책수당이기 때문에 부인에게 주었고 개인적인 용도로 써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은 초록이 동색이라고 어찌 여야를 넘나들면서까지 똑같은 모습을 보여줄까.

국회의원은 원래 연봉을 많이 받는다. 그것도 아주 많다. 올해 기준으로 국회의원은 1년에 약 1억4000만원을 받는다. 지난해에 3.8%나 인상시켰던 결과다. 우리 국회의원의 연봉은 미국(약 1억9000만원)에 비하면 낮지만 영국(약 1억2000만원)이나 프랑스(약 1억3000만원)에 비해서는 높다. 이러한 단순 액수 대신 각국의 1인당 GNP(국민총생산) 대비 의원 연봉의 수준을 비교할 때 한국은 5.2배로서 미국의 3.3배, 영국과 프랑스의 2.6배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약 국회의원의 생산성이나 청렴성 등을 기준으로 비교한다면, 한국의 연봉 수준이 미국·영국·프랑스 등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것이라는 평가를 얻지는 않을까.

이외에도 한국의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은 최소 200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국회의원의 각종 차량 유지비와 기름 값에 대한 지원이 있고 항공기 1등석과 KTX·선박 등의 이용이 무료이며, 월 90만원 이상의 전화비와 우편료 지원도 포함된다. 19대 국회에서 개정되기는 했지만 국회의원연금 혜택도 무시할 수 없다. 18대 국회의원까지는 1년 이상 의정 활동을 했다면 65세 이후에 월 120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대한민국헌정회 육성법에 따른 국회의원연금제를 피해가고 있다. 그 사이에 국회의원연금으로 2014년 한 해에만 약 118억원이 쓰였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5월8일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검찰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피의자 신분으로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출석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이번 홍준표 지사와 신계륜 의원 발언으로 인해 국민의 레이더망에서 지금껏 벗어나 있던 것이 새롭게 포착됐다. 그래서 이른바 ‘홍준표 효과’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국회에는 지출 후 영수증도 필요 없고 내외부의 감사는커녕 사용 내역에 대해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특수활동비가 엄청나게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특수활동비는 아예 수표로 지급되었거나, 특히 계좌에서 현금화가 가능했으니 의원 개인의 호주머니 돈처럼 사적으로 마구 쓰였다. 과거 홍 지사가 원내대표 국회대책비로 웬만한 근로자의 연봉인 4000만~5000만원을 달마다 받아 썼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쓰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다만 올해도 국회 지도부, 상임위원회, 특별위원회 등에 대한 지원으로 연간 80억원 이상이 책정되었다는 것이 확인될 뿐이다.

국회도 내외부 감사받는 제도 마련해야

국회대책비를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관행이었고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많기 때문에 실제로는 부족한 실정이라는 말까지 한다. 아무 성과도 없는 각종 특별위원회를 만들고 그 활동 기간을 연장시켜가며 국회대책비를 챙기는 위원장도 있다고 한다. 국정감사가 국회의원 본연의 역할 가운데 하나일진대 특별한 성과를 남기지 못하면서 왜 수백만 원씩 더 주는지 회의를 느끼게 한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 대법원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했다는 특정업무경비를 유용한 것 아니냐며 낙마시켜놓고서는 정작 국회의원 자신들은 국회대책비를 사적으로 마구 써댔다. 그러니 국민들이 하고 싶은 말은 “너나 잘하세요!”일 수밖에 없다.

일이 일파만파 커지자 여야 지도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대책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중이다. 국회대책비 유용과 관련해 국회 차원의 체계적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에게 된통 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참에 국회의 특수활동비 전체에 대한 점검과 근본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아예 특수활동비라는 말 자체를 없애고 다른 업무추진비와 함께 모두 카드로 사용하고 증빙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업무추진비와 같이 투명하게 사용한 후 내외부의 감사를 받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회는 해마다 국정감사를 실시하면서 피감 기관 기관장이나 임원의 업무추진비에 대한 검증부터 한다. 국정감사에 앞서 의원실에서 기관에 업무추진비 증빙 자료부터 제출할 것을 요구하면서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다. 이제는 국회도 영수증 없이 써온 것이 밝혀진 이상 영이 안 설 것이다. 그러니 당장 국회부터 자신의 업무추진비와 활동비에 대해 투명하고 검증 가능한 체계로 고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아가 행정부의 특수활동비도 손질해야 한다. 현재 접근 가능한 국가결산보고서인 2013년 치에는 약 342조원의 예산 가운데 8728억원 정도가 특수활동비로 책정됐는데 8295억원 정도가 집행되었다고 한다. 영수증도 없는 돈이 1조원가량 줄줄이 새는 것을 방치하는 국회가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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