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만원짜리 수술 500만원 바가지… 산부인과 의사가 성형수술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5.2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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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브로커·짝퉁 성형외과 판치는 한국 의료관광 실상

외국인이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다가 사망하거나 혼수상태에 빠지는 의료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앞에서 중국인 여성이 수술 부작용을 보상하라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의료관광의 그늘이 짙어지는 데는 불법 브로커와 비양심적인 의사가 자리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한류를 타고 한국 여성의 미모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성형수술이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특히 중국인은 한국을 찾는 전체 의료관광객의 20%를 차지하며 주요 의료 고객이 됐다. 그런데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싶어도 병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브로커가 중국 환자와 국내 병원을 연결하고 있다. 브로커가 불법은 아니다. 정부는 2009년 의료법을 개정해 외국인 환자 유치를 허용하고 유치업을 등록제로 바꾸었다. 지난해까지 외국인 환자를 유치·진료하겠다고 등록한 업체는 병원 2400곳, 유치업체 1400곳 등 모두 3800곳이다. 이들 외의 병원이나 유치업체가 외국인을 유치·진료하면 불법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등록하지 않은 곳이 등록한 곳보다 10배나 많다. 등록하지 않아도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거나 진료하는 데 문제가 없다. 정부는 관리와 홍보에 소홀했고 불법 행위를 단속하지 않는다. 작은 병원은 대부분 등록하지 않고 환자를 진료한다. 등록하면 유치 실적을 보고해야 하고 세금 문제 등으로 성가시기만 할 뿐이다.

불법 브로커, 환자와 병원 모두에 ‘슈퍼 갑’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에 등록한 기관의 상당수가 불법 브로커라는 점이다. 유치업체 젬투와이즈 하양호 대표는 “유치업체협회를 창립하기 위해 1400여 곳에 참가 의향을 묻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200여 곳만 참가 의사를 보내왔다. 이들은 정부에 환자 유치 실적을 보고하는 우량 업체”라며 “나머지는 이메일을 읽지 않았고, 회신도 하지 않았다. 영업 활동이나 실적 자체가 없는 곳”이라고 밝혔다.

정부에 등록하지 않은 불법 브로커는 그 수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업계는 성형 관련 브로커만 2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인이나 일본인은 개별적으로 국내 병원을 찾아온다. 그러나 중국에는 소개 문화가 있어서 브로커를 통해 국내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중국 의료 관광객의 절반 이상은 불법 브로커의 손에 이끌려 한국 병원을 찾는다.

불법 브로커는 대부분 한국과 중국 사정을 잘 알고 한국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한국에서 거주했던 중국인이나 조선족이 많다. 브로커 한 명은 중국 현지에서 중국인·조선족·한국인 유학생 등 100여 명을 고용해 환자를 모집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택시기사·통역사·관광가이드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이 중국인 환자 유치에 나선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성형외과 의사는 “예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원장 부인이 중국 현지를 돌며 환자를 유치하고 광고도 했다”고 밝혔다.

불법 브로커의 가장 큰 문제는 돈에만 관심이 있어서 환자 안전은 뒷전으로 민다는 점이다. 의료계와 유치업계의 말을 종합해 불법 의료관광 유치 행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재구성했다. 불법 브로커 A씨는 중국에서 눈 쌍꺼풀 수술을 받으려는 환자를 모집했다. 서울 강남의 몇몇 성형외과에 전화를 걸어 가격을 흥정했다. 수술비 흥정이 아니라 수수료를 얼마나 줄 수 있느냐를 물었다. 병원들은 수술비(환자에게 받는 돈)의 30~50%까지 수수료를 제시했다. A씨는 가장 높은 50%의 수수료를 주는 병원을 낙점했다. 그는 환자에게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고 수술을 잘하는 병원과 계약을 맺었고 비용은 300만원이라고 했다. 환자는 소개받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300만원을 냈다. 병원은 수술비를 뺀 150만원을 브로커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줬다.

또 얼굴 주름살 등을 없애 젊어 보이는 수술을 받고 싶어 하는 환자를 모집한 A씨는 환자에게 1500만원을 요구했다. 환자가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자 브로커는 한국에서 수술을 가장 잘하는 병원이고 자신들과 계약을 맺어 10% 할인된 금액이라고 설득했다. 한국 의료 사정을 잘 모르는 환자는 브로커가 요구한 돈을 건넸다. A씨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로 환자를 보냈고, 수술 후 500만원을 병원에 송금했다. 1000만원을 수수료로 챙긴 것이다. 병원은 브로커가 얼마나 많은 수수료를 챙기는지 알 수 없고 관심도 없다. 환자만 많이 보내주면 된다. 과거 중국 환자를 국내 병원에 소개해준 적이 있다는 김  아무개씨는 “우연히 중국에서 일하다가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고 싶다는 사람을 내가 아는 병원에 소개해주고 수고비로 300만원을 받은 적이 있다. 환자 12명만 보내면 월급쟁이 연봉을 한 번에 벌 수 있는 구조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불법 브로커가 챙기는 수수료는 환자로부터 받은 돈의 30~50%가량이다. 정부에 등록한 우량 브로커의 수수료는 병원 규모에 따라 10~30%다. 차상면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회장(성형외과 전문의)은 “최대 1억원을 받아 병원에 수술비 1000만원을 주고 수수료로 9000만원을 챙긴 브로커도 있었다. 전신을 수술해도 1억원 견적은 나오지 않는다”며 “보통 병원비의 50% 이상은 브로커 수수료라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성형수술 집도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의 모델로 의료관광을 선정하면서 ‘메디컬 코리아’를 표방했다. 그 결과 2009년 6만명이었던 환자가 3배 넘게 늘어났고 특히 성형 환자 중 중국 관광객이 큰 몫을 차지했다. 2009년 791명이던 중국인 성형 환자는 2013년 1만6282명으로 20배 늘어났다. 중국 측은 지난해만 5만6000여 명이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은 것으로 집계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환자 1명의 평균 진료비는 374만원, 국내 환자 1명의 평균 진료비(99만원)의 4배 가까이 된다. 외국인 환자는 가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국내 환자보다 더 많은 돈을 쓴다.

‘외국인 환자=돈’이라는 인식이 퍼지자 외국인 환자가 몰리는 서울 강남으로 성형외과가 집중됐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예전에 있었던 병원에는 환자 10명 중 9명이 외국인이었다”며 “중국인보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동남아 환자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들 병원은 대부분 불법 브로커를 통해 환자를 받고 있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서울 강남에 병원을 내고 월 임대료 1500만원 이상에 직원 월급 등을 주려면 하루에 환자 120명 이상 봐야 한다”며 “브로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환자를 보내달라고 애원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환자도 한국 병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데다 언어 소통 문제가 있어 브로커를 통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불법 브로커가 환자와 병원 양쪽에 이른바 ‘슈퍼 갑’으로 통하는 이유다.

건강보험 의료수가가 원가에도 미치지 않아 적자에 허덕이던 내과·외과·이비인후과·산부인과 등 본래의 전공을 포기하고 성형외과 간판을 내걸고 성형수술을 하는 의사도 늘어났다. 척추병원 간판을 달고 성형수술을 하기도 한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성형외과 의사인 내가 내시경 수술이나 백내장 수술을 해도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성형수술을 전공한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 사이에는 의료의 질 차이가 크다”며 “서울 강남 성형외과 가운데 절반 이상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의사 면허증만 있으면 모든 의료 행위가 가능한 이유는 의사가 절대 부족했던 100년 전 만들어진 느슨한 규제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돈을 쫓아 성형의 기본도 모르는 의사가 수술하기 때문에 사고 가능성이 크다”며 “성형수술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해야 의료사고도 줄어들고 한국 의료의 이미지도 좋아진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돈 냄새만 쫓는 사무장 병원도 난립하고 있다. 사무장 병원이란 비의료인이 병원을 개설한 후 의사를 고용해 진료하는 불법 병원을 말한다. 국내 병원의 20~3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사무장 병원에 면허를 대여해주고 일하는 의사는 월급으로 평균 5000만원과 인센티브를 별도로 받는다. 월급이 많아 무리하게 수술을 하고 이에 따라 의료사고가 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무장 병원으로 적발되더라도 의사는 3개월 면허정지만 받은 후 다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다. 한 대학병원 마취과 교수는 “호텔·오피스텔 등에 의료 기기를 리스로 들여놓고 몇 달 동안 의사를 고용해 외국인 환자를 진료하면서 한탕 벌고 잠적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무장 병원은 사기의 온상이 되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의료 소모품을 유통하는 사업을 하던 중국인 장 아무개씨는 올해 초 국내 거래처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국내 한 성형외과 지분의 50%에 해당하는 10억원을 투자하면 병원이 자신의 소유로 넘어온다는 것이다. 장씨는 그 병원 원장과 계약을 맺었으나 그다음 날부터 거래처 직원과 연락이 끊어졌다. 부랴부랴 한국을 방문해 병원을 찾아갔지만 자신이 계약을 맺은 의사는 월급쟁이 의사였고 이미 그 병원을 그만둔 상태였다. 의료법상 외국인의 한국 병·의원 투자는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을 제외하고 금지된다.

많은 병원비를 쓴 환자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수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불만을 터뜨린다. 의료사고라도 나면 대책이 없다. 이상일 서울아산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내 의료사고 통계조차 집계하지 못한 상황에서 외국인 의료사고가 얼마나 많은지 파악할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양호 젬투와이즈 대표는 “의료사고가 나면 병원은 문제가 없다고 하고 불법 브로커는 잠적해버린다”며 “정부가 나서 우량 유치업체를 통해야 적절한 가격에 사후 관리까지 받을 수 있다고 알려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국제 의료박람회 등에 의료기관만 참여시키는 등 유치업체를 홀대하고 있어 불법 브로커가 판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중 의료 관련 기관 만나 대책 논의

개중에는 의료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보상 등을 목적으로 병원을 압박하는 외국인 환자도 있다. 한동우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해외환자유치지원실장은 “성형수술은 의료적으로 문제가 없이 끝났는데도 심리적·주관적으로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며 “이때 대응을 잘못하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더 나아가 환자는 한국 의료를 폄하한다”고 말했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어떤 중국인 여성이 중국판 <렛미인>에 출연해 무료로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턱이 비대칭이라며 병원 앞에서 시위했다”며 “내가 그 엑스선 사진을 보니 문제가 없었고 환자는 요구한 돈을 받지 못하자 인터넷에 자신의 사연을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법 브로커, 비전문가의 성형수술이 의료사고 등의 문제로 번지자 보건복지부와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등은 조만간 중국미용성형협회 등 중국 측과 한자리에 모여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우리 측은 불법 브로커를 처벌하는 조항을 만들었고, 의료사고에 대한 대책도 마련했다. 차상면 회장은 “의료 서비스에 불만인 환자가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 가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것이 더 문제를 키운다”며 “그 환자가 중국 영사관에 신고하면 영사관이 의사회로 연락을 주고, 의사회는 2주 이내에 시비를 가려 처리하는 시스템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개설한 한국 의료관광 플랫폼(www.visitmedicalkorea.com)으로 의료관광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김수진 한국관광공사 의료관광센터 대리는 “쌍꺼풀 150만원 등 부위별 평균 의료비를 외국인 환자에게 공개하고, 병원에서 진료비에 대한 영수증을 받으라는 등의 6가지 유의사항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중국인들은 일본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얼마 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조사에서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재방문율이 25.7%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 한국의 설과 같음) 기간에 일본을 찾은 중국인은 45만명으로 한국을 찾은 12만명의 4배에 달했다. 차상면 회장은 “의료 시장이 깨끗해지지 않으면 외국인 환자의 발길은 곧 끊어지고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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