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비 7만원, 오늘 태풍 불었으니 두 배로 내라”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5.2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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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관광객 등쳐먹는 어글리 코리안 실태

2000년대 중·후반, 서울 남대문시장은 호황이었다.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김이나 차 종류를 팔았다. 도시락용 김 12개가 3만원, 유자차가 한 병에 3만원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용 메뉴판을 따로 만든 식당도 있었다. 열 장 남짓한 김구이가 1만4000원, 굴비구이는 13만원이었다. 거기에 10% 봉사료와 10% 부가세가 더해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 네티즌들마저 “이 정도면 바가지가 아니라 사기 수준”이라고 비난하며 한국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을 우려했다.

외국인 관광객 1300만명이 한국을 찾는 시대. 지금은 어떨까. 지난 5월19일 남대문시장의 한 노점상을 찾았다. 이곳은 본래 일본 관광객들의 쇼핑 필수 코스 중 하나였지만 최근에는 타이완과 중국인 관광객이 훨씬 많아졌다. 판매하는 포장 김 가격을 중국어로 묻자 상인은 1만5000원을 불렀다. 상인은 이곳이 ‘대한민국 최저가’라고 했지만, 한국인임을 밝히고 방문한 다른 가게들은 같은 제품을 8000~1만원에 팔고 있었다. 구매를 망설이자 10% 할인까지 해주겠다고 했다.

5월19일 서울 명동에서 쇼핑하는 중국인 관광객들. ⓒ 시사저널 최준필
남대문 근방에 있는 포장마차에서도 ‘바가지 요금’을 받는다고 한다. 근처에서 분식을 먹고 있던 일본인 관광객은 “전에 (한국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분식을 먹었는데 4만원이 나왔다고 했다. 가격이 적혀 있지 않으면 확실히 물어봐야 한다”며 “지금 먹고 있는 것은 총 8000원이다. 미리 계산했다”고 말했다.  

동대문 역시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 코스다. 업무 때문에 한국을 자주 찾는다는 타이완인 쉬지에(26)는 동대문 옷가게에서 황당한 일을 당했다. 옷 가격을 물어보면서 중국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자 옷가게 사장이 그에게 “한국인 아니냐”고 물었다. 관광객임을 밝혔더니 사장은 “한국어를 할 줄 아니까 한국 사람 가격으로 특별히 주겠다. 원래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한테 판매하는 가격이 다르다”고 했다는 것이다.

“택시비 2만원, 두 명이니 4만원 내라”

외국인 관광객을 대하는 일부 어글리 코리안의 태도는 1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변한 게 있다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이 사실을 알고 대비한다는 것 정도다. 한국을 다녀온 외국인 관광객들은 자신의 블로그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한국 여행 노하우를 공유한다. 말이 노하우지, 바가지 요금을 조심하라고 예비 한국 관광객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모르면 당한다. 알고 떠나라.”

타이완에 살고 있는 K씨는 한국 여행 직후 자신의 블로그에 ‘Korean taxi nightmare’(한국 택시 악몽)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지난해 여름, 친구와 함께 한국으로 떠났다.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였다. 택시를 타러 공항 정문으로 나갔다. 호텔 사이트에는 공항에서 호텔까지 택시 요금이 7만원이라고 돼 있다. 그러나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기사는 “심야 시간이고, 오늘은 태풍이 불었으니 팁을 줘야 한다”며 13만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한국 돈이 부족하다고 하니 미국 달러라도 달라고 했다. 언쟁을 벌이다 결국 달러와 한국 돈을 합쳐 택시비를 냈다.

중국 커뮤니티 ‘마펑워’(蜂)에 올라온 사례도 마찬가지다. 동대문에서 명동까지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던 중국인 샤오투에게 택시 기사는 “무조건 현금으로 4만원을 내라”고 했다. 보통 5000~6000원의 택시 요금이 나오는 거리다. 한국 돈이 3만원밖에 없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택시에서 내려 인민폐 300원을 환전했고 그 택시가 더 멀리 가는 손님을 골라 태우는 바람에 다른 택시를 잡아타야 했다.

계산서 위조해 식대 더 받기도

타이완인 관광객 쉬지에는 “실제로 (한국 택시를 타면) 그런 일이 많다. 홍대에서 한양대까지 2만원이라고 했던 택시 기사가 내릴 때가 되자 ‘두 명이 탔으니 4만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며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불안감이 들어 따지지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홍콩에서 온 웡지아펑(30)은 “한국에서 택시를 탈 때는 미리 구글에서 검색해 얼마 정도가 나오는지 파악한다. 택시를 탄 다음에 ‘??으로 가주세요’라고만 하면 된다”며 한국 택시를 타는 노하우를 설명했다.

한국에서 ‘맛집’으로 이름난 식당을 찾았다가 낭패를 본 일도 있었다. 홍콩에서 온 A씨는 일행과 함께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식당에서 2만5000원, 2만7000원짜리 음식을 주문했다. 그러나 계산서에는 메뉴 하나당 3만5000원이 적혀 있었고, 심지어 그 가격에 5000원이 더해졌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항의했더니 직원은 “사이즈 업을 제안했더니 손님이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5000원이 더 나온 것을 따지자 처음엔 “5000원은 거스름돈으로 돌려줬다”고 하다가 “공깃밥이 추가돼서 그렇다”고 말을 바꿨다. 다행히 영수증이 남아 있었고, 주문한 음식 사진과 메뉴판 사진을 찍어놓은 증거를 한국관광공사 측에 제출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제 한국은 ‘조심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2015년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관광 범죄 집중 단속에 적발된 건수는 91건에 이른다. 한국관광공사가 발간한 ‘2014년 관광 불편 신고 종합분석서’에 따르면 ‘불친절’ ‘가격 시비’ 등 쇼핑 관련 불편 사항이 25.7%로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부당 요금 징수 및 미터기 사용 거부’ 등 택시 관련 불편 사항이 이었다.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의 피해를 구제해줄 방안은 미비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찰청이 관광경찰 제도를 만들어 외국인 관광객과 관련된 각종 불법 행위를 수사하고 있지만 서울·부산·인천에서 활동하는 전체 관광경찰은 모두 160명에 불과하다.

택시와 관련된 불편 사항이 늘어나자 서울시는 2013년부터 ‘외국인 관광객 바가지 택시 신고 포상제’를 운영했다. 그러나 2년 동안 신고 실적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온 적은 있지만 조사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접수는 한 건도 없었다”며 “안내 책자를 4개 국어로 제작하고 공항과 호텔 등에 비치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신고 제도를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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