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담보로 돈벌이만 골몰하고 있다”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5.05.2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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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언론 ‘먹잇감’ 된 한국 성형외과…혐한 감정 크게 높아져

3월11일 올해 25세인 중국인 여성 허(賀) 아무개씨는 서울시 청담동의 A성형외과병원에서 유방 확대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누웠다. 그런데 전신마취 후 갑자기 심장이 멈춰버렸다. 놀란 의료진은 급히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겨우 목숨을 살렸다. 그러나 허씨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고 자가 호흡도 불가능해져버렸다. 같은 달 21일 오전 허씨의 부모는 베이징에서 소형 여객기 한 대를 전세 내 의료진을 태우고 서울로 날아왔다.

전세기는 김포공항에 도착해 의식불명 상태인 허씨를 태우고 후베이성 우한(武漢) 시로 돌아왔다. 비행 중 의료진은 스스로 숨을 못 쉬는 허씨를 계속 돌봐야 했다. 우한 공항에서 대기 중이던 출입국관리소·세관·검역기관 등 관계자들로부터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친 후 허씨 부모는 예약한 셰허(協和)병원으로 딸을 이송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허씨는 현재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허씨가 수술 중 의식불명에 빠졌을 때만 해도 몇몇 중국 언론만이 단신으로 사건을 보도했다. 하지만 허씨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송되는 전 과정이 사진과 함께 모든 중화권 매체에 뿌려지면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부모가 여객기 한 대를 통째로 빌리는 행보와 맞물리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혼탁한 외국인 환자 유치 시장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부터 한국 의료관광 정보를 일본어·중국어·영어 등으로 제공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허씨 사건이 터지자 중국에서는 한국 성형외과병원의 문제점을 다루는 언론 기사나 뉴스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5월 초에는 그동안 중립 성향을 보였던 홍콩의 영자 신문들까지 대열에 참여해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이제 중국에서 한국 성형수술은 TV가 시청률을 올리거나 인쇄 매체가 판매부수를 늘리기에 딱 좋은 먹잇감으로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수술실에서 음식 먹는 한국 병원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한국 성형수술이 핫이슈지만, 흥미롭게도 얼마나 많은 중국인이 시술을 받기 위해 한국으로 가는지 중국에서는 정확히 조사된 통계가 없다. 모든 중국 언론은 한국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를 근거로 “한국으로 성형수술을 받으러 가는 중국인이 2013년에 5만6000명을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이렇듯 많은 중국인이 한국에 가서 성형수술을 받지만, 자신이 직접 병원에 찾아가 진찰을 받고 수술대에 오르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절대 다수는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브로커를 통해 한국행을 택한다. 이들 브로커는 4~5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일했거나 유학했던 중국인, 중국에서 유학한 한국인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중국에 다양한 관시(關係)를 지녔고 한국 사정에 밝으면서 한국어가 유창한 중국인이 많다. 이들은 본인과 가족·친척, 친구·동창 등을 통한 거미줄 같은 인적 네트워크로 성형수술 의향자를 알음알음 포섭한다.

3년 전 충칭(重慶) 시에 있는 한 한국어학원을 다녔던 장이(30·여)도 이런 브로커를 만난 적이 있다. 장은 “같은 반 학우 소개로 한국 유학을 다녀왔던 브로커를 만났다”며 “같은 고향 출신인 데다 서울의 성형외과병원 정보를 줄줄 꿰고 있어 신뢰감이 갔다”고 말했다. 장은 “지금의 남편이 반대하지 않았다면 그 브로커를 통해 코 수술을 받으러 서울로 갔을 것”이라고 밝혔다.

쓰촨성 청두(成都) 시에서 밤무대 가수로 일하는 왕천(29·여)은 4년 전 미용실에서 만난 한국인 브로커를 통해 서울을 찾았다. 왕은 “상하이에서 대학을 마친 한국 여성이었는데 중국어가 능통하고 매너가 세련됐다”며 “그의 권유로 한국에 가서 턱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인은 중국 내 관시가 한정되어 있어 활동하는 브로커가 극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사업 목적을 위해 거주지를 수시로 바꾼다. 필자가 왕에게 받은 휴대전화 번호로 한국인 브로커에게 연락했지만 이미 정지된 상태였다.

한국으로 향하는 중국인이 지금처럼 수만 명에 이르면서 브로커도 기업화됐다. 현재는 중국 각지에서 난립한 중개회사들이 성형수술 의향자를 모집하고 있다. 4월9일 ‘신문신보’(新門晨報)는 그 실상을 폭로했다. 신문신보는 “과거에는 여행사가 관련 상품을 내놓았지만 지금은 미용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알선비로 수술비용의 50~60%를 챙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적지 않은 미용실이 한국의 성형외과병원과 연계해 미용은 뒷전인 채 성형수술 중개를 주업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성형수술 부작용은 과거 중국에서도 빈발했다. 한국에서 받는 성형수술은 의료분쟁 시 제대로 구제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중국인의 반발을 사고 있다. 물론 일부 중국인 환자는 자신의 알레르기로 인해, 혹은 사후 관리를 제대로 못해 부작용이 일어난다. 하지만 사무장 병원, 유령 의사 등 불법 의료 행위가 판치는 한국의 현실에서 과실 책임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또한 중간에 브로커가 끼어 있어 책임 소재를 나누는 일도 험난하다. 실제로 허 아무개씨를 시술했던 A성형외과병원은 사고 발생 후 한 달여 만에 폐업해 보상받을 길이 가로막힌 상태다.

중국 각 분야에서도 브로커가 활개 치고 불법 행위가 횡행한다. 중국인들이 놀라는 것은 선진국인 한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한국에서 성형외과 전문의는 2000여 명에 불과하지만, 현재 1만여 명의 비전문의가 성형수술을 진행한다”며 “이런 비전문의들이 중국에서 광고를 해 중국인 환자를 불러들여도 한국 법에 따르면 불법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언어 통하는 타이완·싱가포르로 가자”

한국 의료계의 어두운 현실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지면서 중국인들 사이에 혐한(嫌韓) 감정이 차츰 고조되고 있다. 과거 혐한 감정이 일부 국수주의적 중국인에 한정됐다면, 일반인들 사이에서 “생명을 담보로 돈벌이에만 골몰하는 한국인들” “이를 수수방관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성토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런 배경에는 중국 언론 매체가 중국인 브로커 문제를 눈감거나 축소한 채 한국 성형외과병원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 점이 크게 작용했다.

또한 3월19일 베이징에서 중국성형미용협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성형수술 실패 사례를 소개하는 등 관련 업계의 견제 움직임도 한몫했다. 그러나 커뮤니티 사이트 내 ‘성형수술 포럼’에서조차 “한국에 가서 받는 성형수술은 너무 위험하다. 의료 기술이 한국과 대등하면서 언어 소통이 자유로운 타이완이나 싱가포르로 가자”는 논의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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