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가모·불가리· 스와치코리아 기부금 0원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5.2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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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명품업체, 한국에서 높은 배당금 챙기면서 기부엔 인색

메르세데스 벤츠 그룹을 이끌고 있는 디터 제체(Dieter Zetsche) 회장은 2013년 11월 한국을 방문해 ‘Korea 2020’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벤츠 차량의 판매를 두 배 이상 늘리고 투자도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제체 회장은 이날 한국 사회에 대한 기여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업을 펼치는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모든 계열사와 딜러들이 공조해 1000억원 규모의 사회공헌 기금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체 회장의 공언대로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벤츠코리아)는 지난해 한국에서 사상 최대 수익을 올렸다. 매출은 처음으로 2조원대를 돌파했다. 전년 대비 62%나 성장했다. 영업이익도 수입차업계 최초로 10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벤츠코리아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88.3%, 180.6% 오른 1222억원, 969억원을 기록했다. 

벤츠코리아 1000억원 사회공헌 기금 ‘공수표’

하지만 한국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벤츠코리아가 공개한 지난해 기부금은 11억2000만원 수준이다. 영업이익의 0.9%에 불과하다. 액수로 치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났지만, 그 이상을 최대주주(51%)인 다임러 AG가 배당으로 가져갔다. 벤츠코리아가 지난해 현금 배당한 액수는 173억원으로 영업이익의 14.1%에 해당한다. 한국에서 번 돈을 재투자하기보다 가져가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나머지 수입차업체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BMW·아우디·폭스바겐 등 주요 수입차 브랜드들은 늘어난 매출만큼 사회공헌 활동도 강화하겠다고 경쟁적으로 밝혔다. 시사저널이 국내에서 영업 중인 수입차업체 13곳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 이들 업체의 지난해 매출 합계는 9조7034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시장 점유율 2위 업체인 기아차의 매출을 처음으로 앞섰다.

업체별로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매출 2조6619억원과 영업이익 547억원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BMW코리아와 벤츠코리아는 처음으로 ‘매출 2조 클럽’에 가입하며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이들 3개 회사의 매출만 7조원을 상회한다. 사회공헌 결과는 반대다. 3사의 기부금 합계는 30억2000만원이 전부다. 영업이익의 1.29% 수준이다. 그나마 BMW코리아가 영업이익의 3%인 17억300만원 상당을 기부금으로 냈기 때문에 평균이 상승했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와 벤츠코리아의 기부금은 각각 영업이익의 0.4%, 0.9% 수준이었다.

4위인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도 지난해 매출이 40.7%나 증가했다. 4년 전인 2011년과 비교하면 매출 상승률은 173.7%로 수입차업체 중 가장 높았다. 당기순이익 증가율은 233.8%를 기록했다. 회사는 지난해 영업이익의 14.8%인 61억원을 주주에게 배당했지만, 기부금은 2억8600만원(0.7%)만 내놨다.

카이엔·마칸 등으로 유명한 포르쉐코리아는 당기순이익의 90%를 지난해 배당했다. 포르쉐코리아는 2013년 9월 설립됐다. 영업 첫해인 지난해 120억30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내 109억원을 주주에게 배당했다. 주당 배당률은 2902%에 달한다. 기부금은 덕수궁 보호 및 복원을 위해 전달한 1억원이 전부다. 국내 자동차 메이커인 현대차와 기아차가 지난해 499억900만원과 245억5200만원의 기부금을 낸 것과 대조되고 있다.

물론 기업에 기부를 강요할 순 없다. 기업의 일차적인 목적은 이익 창출이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수익을 내고, 주주에게 배당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세계적인 트렌드가 됐다. 글로벌 기업들은 현지화와 상생, 마케팅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공헌 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국내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금융 및 공기업 제외)은 2013년 실적 부진 속에서도 기부금을 크게 늘렸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기부금 내역을 공개한 78개 회사의 기부금은 1조4821억원으로 전년 대비 22%나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두 배 이상 오른 4953억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지난해에는 4098억원으로 줄었지만, 영업이익의 2%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는 2013년 2조3119억원의 영업수익(매출)과 524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 중 1161억원을 기부금으로 지출했다. 영업이익의 22% 수준이다. KT도 2013년 영업이익의 15.7%인 1315억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지난해에는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되면서 기부금이 738억원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수입차업체들은 ‘역주행’을 하고 있다. 매년 매출 신기록을 경신했고, 한국이 최고 시장이라고 치켜세우면서도 기부금이나 사회공헌 활동에는 인색한 게 사실이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일종의 마케팅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최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해외 기업들이 한국에서 사랑받는 기업으로 크기 위해서는 기부나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라다·버버리·페라가모 등 수입 명품업체들의 상황은 더하다.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공개한 5개 명품업체(버버리코리아·페라가모코리아·프라다코리아·불가리코리아·스와치그룹코리아)의 매출은 전년 대비 13.3% 증가한 1조1344억원을 기록했다. 국내에 명품 바람이 불면서 매출 증가세도 확대되고 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531억원과 1188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5개 회사의 기부금은 1249만원이 전부다. 4년간 지출한 기부금을 다 합쳐도 1억5866만원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번 돈 대부분을 본사 주주들이 배당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라다코리아 등 5개 회사가 한국에서 번 돈으로 배당한 액수는 1117억원에 이른다. 최근 4년간 배당한 돈은 2558억원으로 이미 출자금의 10배 이상을 회수한 상태다. 

명품업체 5곳 4년간 기부금 1억5866만원

업체별로 보면 프라다코리아의 매출이 3551억원으로 가장 높았다. 프라다코리아는 지난해 당기순이익(567억원)보다 높은 800억원을 배당했다. 이어 스와치그룹코리아(3055억원), 버버리코리아(2394억원), 페라가모코리아(1392억원), 불가리코리아(953억원) 순이었다. 이들 기업들의 배당금도 적게는 42억원에서 많게는 205억원으로 그해 순이익에 육박하는 돈을 배당으로 보냈다. 버버리코리아가 유일하게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 중 그나마 기부금을 낸 곳은 프라다코리아(825만3197원)와 버버리코리아(423만9117원)뿐이다. 영업이익의 0.01%와 0.02% 수준이다. 페라가모코리아는 매년 3000만원의 기부금을 냈지만, 올해는 내지 않았다. 나머지 업체들은 최근 4년간 기부금을 낸 기록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수입차나 명품업계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명현 교수는 “일부 외국 기업들이 투자금을 빼서 본국에 송금하기 바쁘다”며 “결국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내려 장기적인 성장을 막게 된다. 진정한 한국 기업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투자도 하고 기부도 해서 존경받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입차 잘 팔리는데 딜러사는 웬 적자?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차의 연간 판매량은 19만6359대다. 전년 대비 25.5%나 증가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 계열 딜러사들의 표정은 엇갈렸다. 일부는 실적이 크게 호전됐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적지 않았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메르세데스 벤츠를 판매하는 더클래스효성은 지난해 19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전년(66억원) 대비 194%나 증가했다. GS그룹 계열사로 도요타를 판매하는 센트럴모터스도 영업이익이 2013년 2억원에서 지난해 9억원으로 4.5배 증가했다. 벤틀리를 판매하는 참존오토모티브는 2013년 6억원의 적자를 냈는데 지난해 34억원의 흑자를 냈다. LS그룹 계열사인 베스트토요타도 2013년 6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3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효성그룹 딜러사인 효성도요타는 지난해 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아우디를 판매하는 참존모터스의 경우 2013년 5000만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지난해에는 4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BMW의 딜러인 도이치모터스는 지난해 매출이 22%나 올랐지만 영업이익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BMW의 또 다른 딜러사인 코오롱글로벌도 외형은 커졌지만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자동차 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12% 이상 늘어났는데도 영업이익은 6.5%나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딜러사가 늘어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수료 지출이나 행사비 등이 늘어난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수입차 한국 법인이 딜러사에 어떻게 이익 배분을 하느냐에 따라 딜러사의 실적도 달라진다”며 “아우디나 BMW 딜러사들의 실적 악화는 재고 관리 정책 실패나 신차 출시 지연에 따른 할인 경쟁 때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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