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은 연봉 잔치, 직원은 퇴출 칼바람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5.2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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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앞 다퉈 희망퇴직…2년간 3만여 명 구조조정

재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매섭다. 올 들어 최근까지 금융·철강·조선·정유·정보통신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대기업 중심으로 대규모 인원 감축이 이뤄지면서 고용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기업들은 실적 부진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지만 속내는 다르다. 회사 경영이 어렵다며 무더기 감원을 하면서도 등기이사 등 임원들의 연봉은 고공비행을 이어갔다.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야 할 대기업들이 앞장서 인력 줄이기에 나서며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고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금융권에서 구조조정 ‘신호탄’

올해 가장 먼저 희망퇴직 스타트를 끊은 곳은 금융권이다. NH농협은행은 지난 1월 10년 이상 근속직원이나 만 40세 이상 일반직, 4급 이상 과장급에 대해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총 278명을 내보냈다. 신한은행 또한 부지점장 이상 1969년 이전 출생자 가운데 4급 차장·과장, 1975년 이전에 태어난 5급 대리를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신한은행은 지난 2월 310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우리은행은 3월에 임금피크제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해 250명이 퇴직했다. 

4월20일 현대중공업 노조가 울산 본사 정문 앞에서 회사의 구조조정 및 강제 퇴출 교육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KB국민은행은 다른 은행에 비해 규모가 크다. KB국민은행은 5월13일 임금피크제 직원 1000명과 장기근속 일반 직원 4500명을 포함해 총 55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접수를 받기로 했다. 이 은행이 희망퇴직에 나서는 것은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재직했던 2010년 이후 5년 만이다. 당시에는 3200명의 직원이 은행을 떠났다.

KB국민은행은 5년 만에 희망퇴직에 나서며 ‘저성장·저금리로 악화된 영업력을 강화하고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은 이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KB굿잡 우수기업취업박람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희망퇴직 시행과 관련해 “희망퇴직으로 신규 채용 여지가 커지는 데다 직원들의 자발적 선택에 따른 퇴직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밝혔다. 윤 회장은 희망퇴직 규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지만 “좀 더 많은 직원이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며 희망퇴직 인원 규모가 상당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은행은 5월21일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을 상대로 매년 희망퇴직을 받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희망퇴직 바람은 다른 업종에서도 불고 있다. 조선업계 1위 업체인 현대중공업은 올해 초부터 1960년 이전 출생 직원 가운데 과장급 이상 사무직 15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1000여 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3월에는 15년 이상 장기근속 여사원 597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170여 명을 내보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희망퇴직을 가장한 권고사직”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결국 1000명 넘는 직원이 보따리를 싸야 했다.

국내 정유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 또한 최근 특별 희망퇴직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37년 만에 영업적자를 기록한 SK이노베이션은 만 44세가 넘은 5년 이상 근무자와 만 44세 미만 중 10년 이상 근무자를 대상으로 특별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5월13일 밝혔다. 이번 희망퇴직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8년 만이다. 희망퇴직자의 조건이 44세를 전후로 근무 연수 제한은 있으나 실제로는 SK이노베이션과 계열사인 SK에너지, SK종합화학 등에 소속된 6200여 명의 전 직원이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 2312억원, 당기순손실 5317억원으로 37년 만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34년 만에 무배당을 결정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선제적으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특별 퇴직을 시행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직원들은 믿지 않는 분위기다. 

4월6일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가 인력 퇴출 기업 임원의 고액 연봉 잔치를 비판하고 있다. ⓒ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제공
실적 악화 책임 큰 임원들 성과급 수억

최악의 위기라는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발표된 정유사별 연봉 현황에서 임원 연봉 1위, 직원 연봉 꼴찌를 기록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실적 악화를 핑계로 직원 연봉은 동결하면서 실적 악화의 책임이 큰 임원들은 성과급을 수억 원씩 챙긴 것이다.

국내 정유업계에서 SK이노베이션은 등기임원 1인당 평균 보수가 가장 높다. 구자영 대표이사 부회장은 급여 9억3000만원, 상여 5억8000만원 등 총 15억1500만원을 받았다. 반면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6593만원으로 정유업계에서 가장 낮다.

지난해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단행한 대신증권도 마찬가지다. 대신증권은 지난해 6월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을 실시했고 그 결과 300여 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실적 부진 등을 이유로 직원들을 내보내면서도 이어룡 대신금융그룹 회장(어머니)과 이 회장의 아들 양홍석 대신증권 사장은 고액의 연봉을 받아갔다.

이 회장은 지난해 20억1000만원의 연봉을 챙겼다. 이 회장의 2013년 연봉이 6억8400만원인 점을 감안할 때, 1년 동안 2배 넘게 오른 셈이다. 양 사장 또한 지난해 9억7900만원을 받았다. 2013년에는 등기임원 보수 공개 기준인 5억원을 넘지 않아 보수가 공개되지 않았다.

대신증권은 지난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와중에 부동산 투자에 수천억 원을 쏟아부어 비판을 받았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투자 부동산을 보유한 18개 증권사 가운데 대신증권의 투자 부동산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대신증권은 부동산 투자금이 전년 대비 44.7% 증가한 2223억원을 기록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회사가 본업과는 상관없는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면서 직원들은 내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희망퇴직이라는 방식으로 대규모 직원 해고를 남발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지난 4월6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한 기업들의 주요 임원(등기이사) 급여 내역을 조사한 결과 다수의 구조조정 기업들이 경영이 어렵다며 직원을 퇴출시키면서 이면으로는 최고경영자(CEO)나 고위 임원들에게 수억 원대의 연봉과 보너스를 지급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해고 남발에 우려의 목소리

을지로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 2013년과 2014년 2년 동안 인력 구조조정(예정 포함) 규모는 71개사, 3만1140명에 달했다. 이 기간 CEO, 대표이사, 이사회 의장 등 주요 임원들은 평균 14억39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이들 기업의 직원 평균 연봉이 66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22배에 달하는 규모다.

을지로위원회 등은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정부에 (기업의) 도덕적 방만을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주문할 것이며 앞으로 희망퇴직이라는 방식으로 탈법적인 해고가 남용되지 않도록 입법적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대기업은 정규직, 중소기업은 비정규직을 선호한다’는 인식을 깬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이 신규 채용 때 정규직보다 계약직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월13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14 사업체 규모별 구인 형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종업원 수 300인 이상 대기업의 구인 공고 가운데 52.7%가 계약직 채용에 관한 것이었다. 이어 정규직 40.3%, 시간선택제 6.4%, 일용직 0.9% 순이었다.

50~300인 미만 중소기업 채용 공고를 보면 구인 인원의 73%가 정규직이다. 계약직 비중은 20%에 불과했다. 50인 미만 기업 역시 정규직 구인 비중이 73.8%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기업들이 취업 정보 사이트 워크넷(www.work.go.kr)에 등록한 채용 인원 251만명에 대한 구인 통계를 분석한 것이다.

실제로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계약직 비율이 더 높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의 고용 형태 공시제 결과를 분석한 ‘300인 이상 대기업 비정규직 규모’ 보고서에 따르면 종업원 수 1만명 이상인 기업의 노동자 가운데 40.5%가 비정규직이었다. 이들 대기업 노동자 10명 가운데 4명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300~500인 미만 기업에서는 26.8%, 500~1000인 미만 기업은 34.4%, 1000~5000인 미만은 38.4%, 5000~1만인 미만은 37.4%로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기업 규모가 클수록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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