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무혐의' 공정위 회의록 들여다보니...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6.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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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봐주기’ 논란 일었던 공정위 회의록·의견서 단독 입수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의 과정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특히 기업의 불공정 혐의 행위에 대해 무혐의 및 심사 불개시 결정을 내릴 때는 일반인은 물론, 국회에도 심의보고서 및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는다. 법원이 판결문을 공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공정위의 이런 방침에 대해 국회는 그동안 여야를 불문하고 “공정위가 사실상 ‘기업 봐주기’ 행태를 숨기려 하는 것 아니냐”며 끊임없이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컴퓨터 중고 부품을 새 부품으로 둔갑시켜 공급한 삼성전자에 면죄부를 줬다”는 논란을 일으켰던 ‘삼성전자의 부당한 표시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결정과 관련한 회의록 및 심사 요청 설명서를 단독 입수했다. 이 자료를 통해 당시 공정위 위원들이 민간심사위원회 및 공정위 실무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사실상 삼성전자 변호인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3년 10월 삼성전자는 컴퓨터 수리 과정에서 새 부품 대신 중고 부품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져 홍역을 치렀다. 컴퓨터 메인보드를 삼성전자서비스에 공급하는 과정에서 중고 부품에 새 제품이라고 표기(A)된 라벨을 달았고 삼성전자서비스는 이 제품을 그대로 고객에게 공급한 것이다. 중고 부품과 새 부품을 혼동해서 수리 받은 고객이 1만명이 넘었다. 이후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등 사태가 커지자 삼성전자는 자사 블로그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피해를 본 고객들에게 환불까지 했다.

세종시에 있는 공정거래위원회 건물(왼쪽 사진)과 삼성전자 관련 공정위 회의록. ⓒ 시사저널 박은숙
공정위, 삼성전자 변호인 주장 그대로 수용

공정위는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 심의는 민간위원들로 구성된 민간심사위의 심사와 국·과장급 실무자들로 구성된 심사관들의 심사를 거친 후 심의위원들의 최종 심의 및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그런데 지난해 9월19일 열린 제13회 ‘삼성전자의 부당한 표시행위에 대한 건’에 대한 최종 심의를 거친 후 공정위는 삼성전자에 대해 ‘심사 절차를 개시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사과까지 한 사안에 대해 본격 심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본지가 확보한 당시 최종 심의 회의록과 결과보고서를 보면, 공정위 위원들이 삼성전자 측 변호인이 주장했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해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공정거래위 회의록에 따르면, 이때 참석했던 삼성전자의 변호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본건(라벨 A 표기) 표시로 인해 고객들에게 손해가 발생한 것이라기보다는 삼성전자 내부적인 자재 관리의 시스템 미비로 이루어진 것인 점에 비춰볼 때 ‘표시광고법’(공정위가 상품 또는 용역에 관한 표시·광고를 할 때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하는 부당한 표시·광고를 방지하고 소비자에게 바르고 유용한 정보의 제공을 촉진함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법)이 과연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인지에 대해 신중한 검토 부탁드립니다.(중략) 고객들이 (제품 안의) 자재 코드 라벨을 접할 기회가 없습니다.”

이 사건의 중요 쟁점은 삼성전자가 중고 메인보드에 표기한 라벨이 소비자들에 대한 ‘표시’에 해당하느냐의 문제였다. 삼성전자는 당시 라벨이 고객들이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납품받는 삼성전자서비스가 보는 것이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잘못 붙인 라벨은 소비자를 위한 ‘표시’라고 할 수 없고, 따라서 표시광고법과 관계없다는 주장을 폈다. 회의록에 따르면 삼성 측은 줄곧 이 부분을 강조했다. 당시 대외적으로는 사과문을 통해 “수리 과정에서 명백한 잘못이 있었다”고 입장을 밝혔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공식 블로그에는 “이번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문을 발표했던 삼성전자였지만, 공정위 회의에 참석해서는 “소비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소비자 선택에 영향을 미친 바가 없다. 이런 점을 종합해 무혐의 처분을 내려주길 간곡히 요청한다”고 발언했다.

민간심사위와 실무진 ‘과징금’ 의견 무시

이후 심의위원들은 해당 건에 대해 사실상 무혐의에 해당하는 ‘심사 불개시’ 처분을 내렸다. 심사 불개시란 본격적인 심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아무런 조치 없이 심의 절차를 종료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지가 입수한 심사위원들의 ‘심사 요청 사건 설명서’를 보면 결정 이유가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자재 코드 라벨은 표시광고법상 표시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 사건은 표시광고법 적용 대상이 아님.(중략) A/S 요청 고객에게는 노출되는 것이 아니고 노출된다고 해도 그 내용을 고객이 식별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표시광고법상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한 표시로 보기 어렵다.” 삼성전자 변호인이 회의에 참석해 주장한 것과 똑같은 논리다.

이 논리대로라면, A/S를 받은 고객은 설령 삼성전자서비스가 헌 부품을 새 부품인 것처럼 속여 사용하더라도 공정위 결정으로는 구제받을 방법이 없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부품을 넘긴 대상이 고객이 아니라 관계사인 삼성전자서비스라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전자가 99% 지분을 갖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고객은 사실상 삼성전자와 거래를 하고도 삼성전자의 소비자가 아닌 존재가 돼버리는 격이다.

실제로 최종 심의가 있기 전, 공정위의 민간심사위는 이 부분에 대해 삼성전자의 책임을 주장했다. 본지가 입수한 당시 공정위 민간심사위 심사설명서에는 ‘모든 경우에 자재 코드 라벨은 표시법상 표시에 해당한다’고 적혀 있다. 민간심사위원들은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본건의 제품 라벨링은 계약 당사자인 구매자에 대한 정보 제공이 1차 목적인데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으므로 표시광고법 적용 대상이 된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삼성전자의 A/S 업무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계약은 A/S요청 고객을 삼성전자 제품의 최종 소비자라고 봐야 한다. 잘못된 표시는 A/S 신청인에게 그대로 전달되므로, 소비자도 피해자에 포함된다.”

공정위 실무자들 역시 삼성전자의 책임을 지적한 사실도 확인됐다. 심의위원들이 최종 심의를 하기 전 공정위 국장 및 과장급 심사관들이 심사를 하는데 이때도 실무자들은 “해당 라벨은 삼성전자가 삼성전자서비스에 공급한 메인보드 포장 박스에 부착된 것으로 이는 ‘표시’에 해당한다”며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위원들은 공정위 민간심사위원이나 실무자급 심사관들의 심사 의견을 배제한 채 삼성전자 변호인의 의견을 100% 받아들인 것이다. 한편 삼성전자 관계자는 “해당 건으로 피해를 본 대부분의 고객들에게 피해보상 조치를 완료했고, 연락이 닿지 않는 고객들에게 보상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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