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혈통도 발 뻗고 잠 못 잔다
  • 이영종│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
  • 승인 2015.06.0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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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숙청 작업 속 김정남·김정철 등 로열패밀리 현주소

요즘 평양에서 가장 팔자 좋은 사람을 꼽는다면 김정철(34)과 김여정(26) 남매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친형과 여동생인 이들 두 사람은 절대 권력자의 후광을 바탕으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정철은 4년여의 공백을 깨고 지난 5월 말 런던 나들이를 했다. 김여정의 경우 간부와 주민들 사이에 “모든 일은 여정 동지를 통하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첩보다. 정철과 여정의 이런 순항은 이른바 ‘백두혈통’이라 불리는 김일성 가계 덕분이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을 목도하며 언제 숙청의 피바람을 맞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어야 하는 노동당과 군부 고위 간부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런던의 김정철, ‘권력과 거리’ 메시지일 수도

지금 이들 남매의 자유분방한 행보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김정철의 영국 방문을 꼼꼼히 짚어보면 이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런던 로열 앨버트홀에 선글라스 차림의 김정철이 나타난 건 지난 5월20일. 영국 출신 뮤지션인 에릭 클랩튼의 70세 기념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은 여느 신세대 젊은이와 다를 바 없었다. 북한 대사관원들의 경호만 아니었다면 눈치 챌 수 없을 정도였다. 김일성·김정일 배지까지 떼버린 채 서방 음악을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모습은 ‘공포 정치’로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는 동생 김정은의 이미지와 교차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3월12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동해안 전방초소를 지키는 신도방어중대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여동생 김여정(왼쪽 두 번째)은 이후 한동안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5월 출산설’이 나돌았다가 47일 만인 5월29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연합뉴스
집권 4년 차를 맞은 김정은 체제에서 ‘비운의 왕세자’ 김정철은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채 은둔하는 모습을 보였다. 에릭 클랩튼의 열광적 팬으로 알려진 김정철의 콘서트장 출현은 2011년 2월 싱가포르 공연 관람 이후 처음이다. 당시 방송사 카메라에 포착돼 곤욕을 치렀는데도 또다시 런던 공연장을 찾은 것을 두고 “김정철이 클랩튼의 광팬임을 입증하는 대목”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동생에게 후계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정철이 권력과 거리를 두겠다는 메시지란 분석도 내놓는다. 북한 권력 내에 존재감이 없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려는 행동이란 의미다. 해외를 쏘다니며 서방 언론에까지 동정이나 모습이 노출된다는 것 자체가 북한이 지칭하는 ‘최고 존엄’이란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기를 꿈꾸거나 야심을 갖고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얘기다.

김정철의 이런 모습과 대조적으로 김여정은 공개 활동의 보폭을 넓혀왔다. 오빠 김정은을 제일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 역할을 하며 권력의 핵심으로 진입했다는 게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주로 밝게 웃는 모습이 많이 드러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 장례식장에서 눈물짓던 이미지에서 탈피했다는 얘기다. 정부 대북 부처 관계자는 “예상보다 빨리 김여정이 노동당 내에서 비교적 확고한 지위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김여정은 북한 정권 사상 최연소 노동당 부부장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28세인 1970년에 선동부 부부장이 됐고, 고모 김경희는 30세에 국제부 부부장을 맡았다는 점과 비교해도 김여정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물론 김여정을 다루는 북한 매체들은 주민 여론 등을 고려한 듯 신중한 모습이다. 로동신문도 오빠를 수행한 김여정의 모습을 먼발치나 사진 구석에 편집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북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서 여정은 ‘모퉁이 공주’로 불리기도 했다. 김여정은 김정은 체제 출범 후 ‘김예정’이란 가명을 쓰며 노동당 선전선동부 과장으로 활동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제왕학을 미처 다 배우지 못한 채 권력을 넘겨받은 오빠 김정은의 이미지 메이킹을 책임졌다. 김여정의 전면 등장을 장성택 처형사태와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2013년 12월 장성택이 숙청된 후 공개 활동을 접은 고모 김경희를 대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여정은 5월부터 활동이 거의 없어졌다. 정보 당국은 김여정의 권력 내 지위나 역할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로동신문 등 공개 정보와 첩보 등을 종합해볼 때 임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김여정이 김일성대 동창과 결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산을 마친 후 머지않아 김정은의 바로 옆자리로 복귀할 것이란 얘기다.

5월20일 북한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왼쪽)이 에릭 클랩튼의 공연을 보기 위해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 연합뉴스
해외 은둔 김정남, 여유 있는 생활 하는 듯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는 남편 장성택 처형으로 한때 사망설이 나왔다. 5월에는 미국 CNN이 독살설까지 제기해 신병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문이 확산됐다. 하지만 국정원은 “장성택 처형으로 인한 충격으로 공개 활동을 자제하고 있으나 신상에는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김경희는 신병 치료차 한동안 중국에 체류하다 지난해 10월께 다시 평양으로 돌아온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성혜림(2002년 사망) 사이에 태어난 김정남은 최근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지난해 9월엔 프랑스 대학에 재학 중인 아들 한솔군을 만나러 프랑스에 갔다가 언론에 노출된 이후 종적을 감췄다. 오랫동안 체류해온 마카오를 떠나 동남아 국가를 전전하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정확한 거처 등은 알 수 없는 상태다. 과거 인터뷰 등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이나 김정은 후계 체제 등장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혀온 것과 달라졌다. 과거 김정은으로의 후계 반대 발언 등으로 각을 세우자 평양에서 암살단이 파견된 일까지 있었던 만큼 신변 보호를 위해 은둔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생모 성혜림으로부터 적지 않은 유산을 받았고, 김정일 위원장도 생전에 챙겨준 자금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게 정보 당국의 전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이복누이 김설송이 김정은 보좌 그룹을 이끌며 권력 내부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정혼한 것으로 알려진 김영숙과의 사이에 태어난 설송이 맏언니로서 일정한 지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보 당국은 유일 영도 체계라는 북한의 특성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김정일 위원장이 유서에서 ‘김설송을 중심으로 김정은을 도우라’는 취지의 뜻을 밝혔다는 일부 탈북자들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국내 언론에 김정일과 함께 사진이 촬영된 김설송으로 소개된 여성은 평양백화점 점원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짜깁기를 해 그럴듯한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두혈통은 아니지만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도 평양 로열패밀리에서 주목받는 인물이다. 리설주는 김정은 집권 후 첫 여름이었던 2012년 7월 관영 매체에 ‘부인 리설주 동지’로 보도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은하수관현악단 가수 출신인 그녀는 김정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평양판 신데렐라’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동갑내기 시누이인 김여정이 노동당 내 지위를 굳히면서 다소 밀리는 모양새였다. 두 사람 중 주석궁에서의 내조는 리설주가, 외부 공개 활동 때 수행 보좌는 김여정이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여정이 출산 후 복귀하면 이런 구도는 더 확연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남·정철, 절치부심하고 있을 수도

한·미 정보 당국은 현재까지 김정은의 권력 장악은 특별한 문제 없이 비교적 원만히 진행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장성택에 이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숙청하는 등 칼날을 휘두르는 것도 권력 불안보다는 믿을 만한 지지 기반이 있기 때문이라는 쪽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이미 ‘수령 유일 지배’라는 틀을 갖춰가고 있는 만큼 이복형 김정남은 물론 친형인 김정철도 도전 세력이 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후계 순위에서 밀려나 막내 동생에게 권좌를 내준 두 사람의 동향은 여전히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고 있다. 김정은의 권력 안착에 문제가 생기거나 건강 이상 등 유고 사태가 닥칠 경우 대안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에서다. 백두혈통에 의한 권력 승계를 체제의 골간으로 삼았고, 주민들에게도 이런 논리를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최종 낙점되기 직전엔 정남·정철 두 사람이 차례로 1순위에 꼽히며 경합하는 양상을 보였다. 2000년대 들어 김정일 후계에 관심이 쏠리면서 장남인 김정남의 존재가 세인들의 입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렸다. 하지만 2001년 5월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돼 국제적 망신을 당하면서 낙마했다. 곧바로 후계자로 부상한 건 김정일 위원장이 고영희와의 사이에 낳은 두 아들 중 나이가 많은 김정철이었다. 하지만 호르몬계 이상 등 질병이 그를 좌절시켰다. 일각에선 건강만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이나 성격 탓이란 주장도 내놓는다. 김정일 위원장이 세 아들 중 가장 자신을 빼어 닮은 막내를 차기 권력자로 내정했다는 것이다. 정철의 경우 아버지로부터 “계집애 같다”는 소리를 듣는 등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으로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전한다.

김정은과 김정철 형제의 관계가 어떤 상태인지는 파악하기 쉽지 않다. 핵심층 자제들의 모임인 평양 봉화조의 리더 역할을 했다는 정철이 동생의 안착을 위해 모종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때 김정철도 후계 1순위에 거론되는 등 절대 권력자를 꿈꿨다. 지금도 마음을 숨기며 절치부심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에릭 클랩튼의 음악에 푹 빠진 김정철은 2008년 평양 공연을 추진했다. 하지만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동생 김정은이 조기 유학 시절 좋아한 전미농구협회(NBA) 출신 데니스 로드먼을 집권 후 평양에 초청해 경기를 관람한 것과 비교된다. 클랩튼 공연을 보고 평양으로 돌아간 김정철이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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