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떳떳하다”
  • 허남웅│영화 평론가 ()
  • 승인 2015.06.0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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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결혼 다룬 다큐멘터리 <마이 페어 웨딩>

아일랜드는 최근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동성 결혼을 다룬 다큐멘터리 <마이 페어 웨딩>이 국내에 개봉한다. 주인공은 영화감독 김조광수와 제작자 김승환이다. 김조광수는 <조선명탐정> 시리즈를 제작한 청년필름의 대표이자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2012년)을 연출한 감독이다. 커밍아웃한 게이로서 성 소수자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9년 지기 연인이 있다. 김승환이다. 김승환 역시 김조광수와 더불어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다. 한국 최초의 퀴어영화 전문 수입사 ‘레인보우 팩토리’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김조광수와는 나이 차이가 열아홉 살이나 나지만, 프러포즈를 받고는 망설임 없이 결혼을 결심했다.

영화 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 소식은 성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9시 뉴스에 등장한다.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이 결혼을 결심해서 2013년 9월7일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공개 결혼식을 치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작품이 바로 <마이 페어 웨딩>이다.

편견 극복하고 결혼까지 우여곡절 많아

<마이 페어 웨딩>을 연출한 이는 장희선 감독이다. 장희선 감독은 <꽃다운>(2009년), <고추말리기>(1999년) 등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지속해서 탐구해왔다. <마이 페어 웨딩>은 여성과 관련한 테마는 아니다. 하지만 결혼식의 주체가 동성애자, 즉 여성과 같은 소수자라는 점에서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에는 의도적이라고 해도 좋을 전략이 있다. 대단한 건 아니다. 다큐멘터리의 분위기가 밝다. 흔히 결혼식을 두고 모두의 축복을 받는 평생에 한 번인 이벤트라고 얘기한다. 안타깝게도 <마이 페어 웨딩>의 주인공 커플은 그렇지가 않다. 이들의 결혼식을 두고 일부 보수단체와 기독교 인사들이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경우는 차치하고 한국 사회에서 많은 성 소수자가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망설인다. 두 커플이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포장하며 자신들의 결혼식을 공개적으로, 그리고 성대하게 치른 이유다. 국가적인 관심사로 결혼식을 올리면 동성 결혼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지고, 결과적으로 성 소수자의 인권과 커밍아웃을 독려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마이 페어 웨딩> 역시 그 일환이다. 주인공 커플이 의도적으로라도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운데 장희선 감독도 결혼식 중 발생한 인분 투척과 같은 불미스러운 해프닝을 부각하기보다 결혼식 자체가 주는 축제의 성격을 강조하는 데 연출의 주안점을 둔다.  

장희선 감독은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결혼식 다큐멘터리 제안을 받고는 일반적인 결혼식 비디오를 찍어달라는 걸로 오해하고 거절했다는 일화를 전한다. 그러다가 제안을 받아들인 그는 사회의 가장 오래된 제도인 결혼을 통해 성 소수자의 인권을 얘기하는 아이러니가 흥미롭게 다가왔다고 한다.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는 김조광수와 김승환 같은 성 소수자들에게 사랑을 제도화하는 결혼은 어떤 의미일까.

김조광수와 김승환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를 이뤘지만, 성격은 판이하다. 김조광수는 성 소수자와 관련한 불합리한 사안은 앞장서서 개선을 요구할 정도로 대중 앞에 서는 데 거리낌이 없다. 반면 김승환은 김조광수를 만나기 전까지 공개적인 자리에 나선 적이 없었기에 대중 앞에 자신을 노출한다는 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공개 결혼식에 찬성했음에도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감출 수는 없다.

영화가 아무리 이들 커플의 밝은 모습과 결혼식의 긍정적인 풍경을 중심에 놓고 있더라도 특정 사안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까지 감추지는 않는다. 김승환은 김조광수가 자신들의 결혼식을 두고 사회운동처럼 프레임을 짜는 것 같아 불만이 가득하다. 이에 대해 김조광수는 부담을 갖지 말라며 즐기라는 말로 다독이지만, 경직된 김승환의 표정은 이들의 결혼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아니나 다를까, 촌철살인처럼 김조광수가 내뱉는 말. “결혼식을 만약에 못한다면 다큐멘터리는 재밌겠지.”

ⓒ 영화사 진진
결혼 후에도 법적인 부부 인정 못 받아

이미 결혼을 했거나 곧 결혼을 앞둔 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결혼 준비 과정에는 워낙 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다. 커플 간의 신경전과 대립이 가장 극에 달하는 시기다. 김조광수와 김승환의 갈등 역시 결혼식을 앞둔 예비부부의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성 소수자의 결혼이라고 해서 이성애자들과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마이 페어 웨딩>이 성대한 결혼식 자체보다 당사자들의 준비 과정에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들이 결혼식을 굳이 사회적인 이벤트로 이슈화해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했던 메시지는 제목의 ‘마이 페어 웨딩(My Fair Wedding)’에 담겨 있다. ‘당연한 결혼식’이라는 것이다.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은 영화 속 인터뷰 영상에 등장할 때면 같은 소파에 앉아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런 작은 행동에서마저도 평등을 지향하는 이들의 인간을 향한 보편적인 가치가 여실히 묻어난다. 그렇지만 성 소수자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배타적인 시선이 이들의 결혼을 의도치 않게 ‘세기의 결혼식’으로 몰고 갔다.

결혼식 이후에도 성 소수자의 평등한 권리를 찾기 위한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사회운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은 공개적인 결혼식을 치렀음에도 법적으로는 부부가 아니다. 혼인 신고를 당국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두 커플이 보수적인 제도인 결혼을 반드시 해야만 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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