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래터 왕국’ 무너졌지만 ‘부패 시스템’은 그대로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6.0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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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찌든 FIFA와 각 회원국, 수조 원 어디에 쓰이는지 ‘깜깜’

흔히 축구를 종교와 비교한다. 오히려 종교보다 상위라는 주장도 있다. 종교는 갈라져서 다투지만, 축구는 그 자체로 다툼이 없는 유일신 종교이기 때문이다. 축구가 글로벌한 신앙이라면 축구를 관리하는 FIFA(국제축구연맹)는 종교의 본당쯤 될 듯하다. 그러면 FIFA 회장은? 독일의 저명한 스포츠 저널리스트이자 FIFA의 부패를 추적해온 토마스 키스트너는 그의 책 <피파 마피아>에서 이렇게 정의한다. “제프 블래터(전 FIFA 회장)를 두고 스포츠단체의 회장이라고 부르는 일은 이제 모욕이다. 그 이상이다. 글로벌한 차원을 자랑하는 신앙공동체의 수호성인이다.”

그런 수호성인이 6월3일 전격 사임 의사를 밝혔다. 5선에 성공한 지 불과 나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안에서는 5선의 노욕을 비판하는 유럽의 반발이 있었고, 밖에서는 미국과 스위스 사법당국이 비리 수사로 압박하는 과정에서 물러났으니 불명예 퇴진이다. 스위스 태생인 블래터 전 회장은 스위스 아마추어 리그에서 축구선수로 뛰었다. 로잔 대학을 졸업한 후 시계 제조업체에 들어갔지만, 이내 스포츠 행정으로 방향을 틀어 스위스 아이스하키연맹 사무총장을 거친 다음 1975년 FIFA에 입성했다.

17년간 국제축구연맹(FIFA)의 수장으로 군림하던 제프 블래터가 물러났다. 블래터 재임 시절 줄기차게 제기됐던 비리 관련 풍문들은 하나 둘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 AP 연합
5개 국어에 능통한 그를 아벨란제 전 FIFA 회장은 1981년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아벨란제의 최측근으로 활동하다가 1998년 FIFA 회장 자리까지 물려받았다. 월드컵 중계권료를 크게 인상시키고 스폰서 수익을 늘리는 등 재무적 안정에 기여했지만 거액의 돈이 얽힌 의혹이 자꾸 터져 나오면서 FIFA를 부패의 온상으로 만든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그리고 최근 미국과 스위스 검찰의 수사는 그 꼬리표를 현실로 증명했다.

“소수 집행위원회가 월드컵 개최지 결정”

17년간 회장으로 군림하면서 블래터 전 회장은 FIFA의 수뇌부라고 불리는 집행위원회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서 홀로 권력을 독식해왔다. 집행위원회는 2년마다 열리는 회원국 총회 다음으로 높은 FIFA의 의사결정 기관이다. 집행위원회가 가지는 가장 큰 힘은 월드컵 개최지 선정 권한이다. 집행위원회는 25명으로 구성되는데 투표권이 없는 사무총장을 제외한다면 총 24명이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유럽 8명, 아시아·아프리카 각 4명, 남미·북중미에 각 3명이 배정된다. 오세아니아 몫은 1명이다.

블래터의 FIFA에서 집행위원회에 소속된다면, 당장 풍족한 주머니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이들은 다른 위원회에서도 활동하는데 FIFA는 이들에게 매년 20만 달러의 활동비를 지급한다. 집행위원들이 쓰는 비용 역시 FIFA가 처리한다. 퍼스트클래스 항공권과 호텔, 레스토랑 등 수많은 이벤트를 위해 세계를 오가는 비용도 FIFA가 계산한다. 여기에 하루 일당으로 500달러가 주어진다. 연금에 월드컵 티켓은 보너스다. 

위르겐 미탁 독일체육대학 교수는 네덜란드 매체인 ‘한델스블라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FIFA 시스템이 결정권자를 부패에 취약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권력 수단을 손에 쥔 FIFA의 정책을 통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탁 교수는 집행위원회가 쥐고 있는 월드컵 개최지 결정권에 주목한다. “개최지 결정에는 집행위원회 등 소수만 참여한다. FIFA의 부패 위험도를 낮추려면 FIFA 시스템을 분쇄해야 하는데 그런 내부 개혁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다”고 지적했다. 제한된 사람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의사결정 시스템은 부정의 온상이 되기 쉽다. 그런 점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FIFA는 비교된다. IOC에서는 올림픽 개최지를 100명 이상의 IOC 위원들이 투표로 결정한다.

FIFA의 힘은 결국 축구와, 축구로 생기는 돈이다. 월드컵은 FIFA의 화수분이나 다름없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만으로 FIFA가 거둔 순이익은 약 16억 유로에 달한다. 우리 돈 2조원쯤이다. 2조원이란 돈은 중계권료와 월드컵을 위해 앞 다투어 경쟁하는 스폰서 기업에 의해 만들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월드컵 기간 중 FIFA가 개최국에서 올린 수익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누구도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단체, 즉 사단법인이라는 FIFA의 성격 때문이다. FIFA는 스위스 민법에 따라 상업등록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돼 있다. 이런 조세 혜택은 월드컵 개최에 도전하는 국가에는 필수 동의 항목이다. 2018년 개최국인 러시아와 2022년 카타르는 이런 세제 혜택에 동의해야 했다. 영국·벨기에·스페인·네덜란드 등 서방의 조세 선진국들도 개최 신청을 할 때만큼은 이런 조건에 동의해야 한다.

조세 혜택까지 받은 수익의 사용처는 어떨까. 2014년 월드컵 수익금 16억 유로는 일단 모두 FIFA 계좌로 들어간다. FIFA는 이 돈을 축구계로 다시 푼다고 말하지만, FIFA를 잘 아는 주변인들은 “난센스에 가깝다”고 말한다. FIFA의 고위직들을 위해 풍족하게 쓰이는 돈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이런 구조 아래서 모든 예산이 축구를 위해 의미 있게 쓰일 것이라고 상상하기란 어렵다는 얘기다. 키스트너 기자는 “FIFA가 손발을 다 동원해 블래터 회장의 총 수입에 관한 이야기는 막는다. 돈은 분명히 불투명하게 다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불투명한 사례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어 영국의 탐사 전문 기자인 앤드루 제닝스는 FIFA 집행위원들이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지출을 영수증으로 입증하지도 않은 채 경비로 처리하는 무수한 사례를 폭로했다. 제닝스 기자는 “블래터의 예산 집행에 관해 조사하고 다니자 본격적으로 숨통을 조여왔다”고 폭로했다.

키스트너 기자는 그의 책에서 2010년 FIFA에 지급된 인센티브에 대해 설명했다. 이해에 단기 성과급으로 지급된 액수는 3260만 달러였다. 사단법인으로 등록돼 있지만 마치 사기업처럼 인센티브가 지급되는 것은 일단 제쳐두자. 그는 “이 인센티브의 수령자는 많이 잡아야 34명”이라고 말한다. 집행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던 모하메드 빈 함만 전 아시아축구연맹회장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한 해에 30만 달러 넘게 받아본 적이 없다”는 함만의 고백에서 흥미로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30만 달러씩을 모두 지급해도 10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머지 돈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각국 축구협회의 부정 눈감아주고 있다”

FIFA를 이해하는 유일한 언어는 축구보다 돈에 가깝다. 이미 공익집단이라는 FIFA의 등록 취지는 무너졌다. 독일의 법률 전문가 마르쿠스 슈나이더는 “FIFA의 공익단체로서의 적합성이 문제가 될 경우 이 지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밝혔다. 만약 FIFA가 공익단체가 아닐 경우 그들에게 생기는 가장 큰 현실적 문제는 특권의 폐지다. FIFA에 허가된 세제상의 특권들은 모두 날아가버린다.

FIFA가 민낯을 드러내고 조직의 수장이 불명예 퇴진했다. 이번 비리 수사가 FIFA를 무너뜨릴 수도 있을 정도로 전개될 수 있을까. FIFA에 대항하려는 움직임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UEFA(유럽축구연맹) 내부에서는 수년 전부터 비공식적으로 유럽 20여 개국 외에 남미·아시아·아프리카 4개국이 참가하는 유럽컵을 만드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었다. FIFA의 화수분인 월드컵을 꺾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중론은 ‘too big to fail(대마불사)’다. 축구계가 너무 커지고 중요해졌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FIFA를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결국 붕괴 대신 개혁 요구가 빗발칠 텐데 그것을 FIFA가 담아낼 수 있을지에 초점이 모인다. 슈테판 퀼 독일 빌레펠트 대학 조직사회학 교수는 독일 일간지인 ‘타게스차이퉁’에 조직 연구적 관점에서 FIFA를 분석한 기고문을 실었다. 퀼 교수는 각국 축구연맹의 집합체인 FIFA를 메타 조직(회원이 개인이 아닌 조직)으로 정의했다. 그는 메타 조직의 특성을 ‘부패 취약성’이라고 밝혔다. “왜냐하면 회원(축구연맹)이 온갖 수단을 다해 장부를 메타 조직에 숨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블래터 전 회장이 이 부분에서 특수한 방법을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블래터 전 회장은 매년 특수 지출 명목으로 회원인 각국 축구협회에 돈을 주는 대신 사용처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여러 축구협회 임원들은 마치 장부에 기록되지 않는 뇌물처럼 이 돈을 사용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각국 협회(특히 제3세계)는 블래터라는 개인과 집행위원회라는 조직에 강한 충성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퀼 교수는 “블래터가 만들어낸 시스템의 핵심은 FIFA가 불법 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대신 각국 회원 조직이 벌이는 일을 통 크게 눈감아주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블래터가 물러난다 해도 FIFA의 개혁 가능성은 여전히 작다는 게 퀼 교수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개혁안을 만들고 찬성해야 하는 주체에는 다름 아닌, 뇌물처럼 블래터 전 회장의 돈을 야금야금 사용해왔던 회원(각국 축구협회)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블래터는 사라졌다. 하지만 블래터 시스템이 건재한 FIFA가 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미셸 플라티니(61·프랑스) : 유럽축구연맹(UEFA)의 수장이다. BBC는 플라타니가 UEFA를 떠날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차차기 선거가 있을 2019년에 출마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알리 빈 후세인 왕자(40·요르단) : 현 FIFA 부회장으로 유럽 국가들의 지지세가 두텁다. 개혁 성향이 강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정몽준(61·한국) : FIFA 명예부회장이다. 블래터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 출마를 확정짓지는 않은 단계다. 지지세가 미약한 게 약점이다.

셰이크 살만 빈 아브라힘 알 칼리(49·바레인) :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으로 야망 있는 인물. 아시아 국가들의 지지도는 블래터와 비슷하다.

셰이크 아마드 알 파하드 알 사바(51·쿠웨이트) : 블래터의 지지 기반인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직접 출마하기보다는 킹메이커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마이클 반 프라그(66·네덜란드) : 네덜란드 축구협회장. 블래터가 FIFA를 끌고 가는 것에 대해 “불가능”이라고 말했던 인물이다.

루이스 피구(42·포르투갈) :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로 뛰었던 포르투갈의 레전드.

제롬 상파뉴(56·프랑스) : 축구의 철학가로 불린다. 전 FIFA 사무국장으로 내부 사정에 능통하지만 지지 세력이 미미하다.

지코(62·브라질) : ‘하얀 펠레’라는 별명을 가진 브라질 축구 레전드. 그러나 축구 정치판에 동지가 없다.

데이비드 길(57·영국) :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단장. FIFA의 미래를 위해 맡은 바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출마 가능성은 작다.

다비드 지놀라(48·프랑스) : FIFA의 신뢰 복원을 강하게 주장하는 프리미어리그 선수 출신. 온라인에서 지지를 구하고 있지만 오프라인 지지 세력이 미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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