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의 전쟁 시작됐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6.0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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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친박’ 유승민, ‘탈박’ ‘비박’ 거치며 박 대통령과 맞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2004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초선 의원(17대 국회·비례대표)으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제3정책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던 유승민 의원은 새벽까지 이어진 긴 마라톤 회의를 끝마치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측근들에게 “당분간 당직을 맡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시 유 의원은 제3정조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이한구 정책위 의장과 함께 노무현 정부의 이른바 ‘4대 입법’ 철회를 두고 힘겨루기를 벌여온 터였다.

당시 ‘당직을 더 이상 맡지 않겠다’는 그를 만류한 것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였다. 박 대표는 유 의원에게 당 대표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박 대표와 정치적 유대가 깊지 않았던 유 의원은 이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박 대표와는 같은 TK(대구·경북) 출신이라는 점 말고는 정치적 뿌리가 달랐다. 박 대표의 삼고초려가 있은 후에야 유 의원은 비서실장직을 맡았다. 지금은 청와대 권력 실세로 부상한 ‘보좌진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도 당시 유승민 비서실장이 모두 데리고 있었다. 유승민 의원은 박 대통령의 최측근 그룹으로 분류돼 ‘원박(원조 친박)’으로 불렸다.

ⓒ 시사저널 이종현
지금 정치 구도로 보면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이야기다. 한때 정치적 동반자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지금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와 연계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원내대표는 갈등의 정점에 서 있다. 한때 ‘친박’의 이름 아래 박 대통령의 대권 도전을 도왔던 그의 옛 전우들은 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원조 친박’으로 분류되던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과 관계가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 이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유 원내대표가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로 치러진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개정을 강하게 반대했고, 복지와 분배 강화를 요구하는 개혁 성향 목소리를 선명하게 내면서 두 사람 간에 균열이 생겼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정도다. 유 원내대표는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유 원내대표의 비판은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기보다는 ‘인의 장막’을 치고 있는 일부 측근 그룹을 향했다.

박 대통령 관련 “나중에 속 시원히 얘기할 것”

박 대통령과 친박 핵심 그룹에서 자신을 더 이상 동지로 보지 않고 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유 원내대표가 실감한 것은 19대 국회가 막 들어선 2012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 원내대표는 19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장을 맡을 생각이었다. 경선 없이 무난히 위원장직을 맡을 것이라는 유 원내대표 측의 예측은 빗나갔다. 돌발 변수가 생긴 것이다. 3성 장군 출신인 황진하 의원이 갑작스럽게 국방위원장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당시 황 의원은 외통위원장으로 내정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원내대표의 최측근 인사는 기자에게 “당시 황 의원이 외통위원장을 더 선호하고 있었고 내정까지 돼 있던 상황이었는데 황 의원이 돌연 국방위원장으로 급선회해 출마했다”며 “결국 유 원내대표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지만, 황 의원의 위원장 출마는 사실상 당시 친박 지도부의 ‘유승민 견제용’이었다는 점이 자명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민의 긴 잠행이 시작된 것은 이 무렵부터다. 국방위원장으로 일할 당시 그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당 지도부와 청와대, 특히 박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인 발언은 금기시했다. 2014년 초 국회 국방위원장실에서 기자와 만나 1시간가량 독대한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과 관련한 이야기를 기자가 꺼낼 때마다 “내 처지를 더 잘 알지 않느냐”고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속 시원히 이야기할 날이 있지 않겠느냐”며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2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지도부 접견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승민에 대한 VIP의 반감 생각보다 심각”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난 2월 박근혜 정부가 집권 3년 차를 맞는 순간, 긴 침묵을 깨고 원내 사령탑을 맡으면서 여당 핵심부에 진입했다. ‘원박’ 출신으로 ‘탈박(脫朴)’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투톱 체제가 형성되면서 그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운 듯 보였다. 유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는 증세와 ‘중(中)부담-중(中)복지’ 문제 등에서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3월6일 ‘비박(非朴)’ 중진인 이재오 의원이 주최한 ‘은평포럼’ 강연에서 “경제 성장에 관해 우리 사회가 진짜 반성하고 고민하는, 그리고 전략을 찾아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비판했다.

유 원내대표의 언행에 대한 불쾌감도 친박 내부에서 감지된다. 그는 5월21일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신임 국무총리 지명 직후 “(앞서) 청와대의 전화를 받았는데 제가 잘못 들었는지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조금 이상한 일이 있었다”라고 말해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일종의 해프닝일 수 있는 사안이지만, ‘청와대의 국무총리 인선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부추길 만한 발언이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로서는 당혹스러울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TK 출신의 친박계 한 인사는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로 취임할 때만 해도 친박 일각에서는 그가 부담스러운 존재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때는 친박이었는데…’라는 온정적인 정서가 남아 있었다”며 “그런데 애당초 VIP(박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유 원내대표에 대한 VIP의 반감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국회법 개정안 파문을 보듯이 유 원내대표를 향한 비판이 감정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유 원내대표에 대한 공격은 더 노골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승민 원내대표 측근 그룹도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해 취임 100일밖에 안 된 원내대표의 거취까지 거론하며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는 청와대와 친박 측에 대해 격한 감정을 보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여야 협상을 통해 통과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국회법 개정안을 협상 카드로 받은 것인데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노골적인 ‘유승민 흔들기’라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유 원내대표의 측근 인사는 “국회법 개정안은 표면적인 반발 이유일 뿐 결국은 유 원내대표가 싫으니 물러나라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며 “박 대통령의 심기를 잘 알고 있는 친박 그룹이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도 개혁적인 새로운 보수, 즉 ‘신보수’를 표방하고 있는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과 함께 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 원내대표는 2011년 6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선거 출마선언문을 통해 중부담-중복지론, 공정한 고통 분담과 공정한 시장경제 등 보수주의의 새로운 가치를 모토로 내건 이른바 ‘용감한 개혁론’을 주장했다. 그는 4월8일 교섭단체 연설에서도 보수 진영의 변화를 촉구하는 ‘용감한 개혁론’을 거듭 주창했다.

“‘신보수’ 표방 유승민, 박 대통령과 길 달라”

유 원내대표와 오랜 시간 교감해온 한 경제계 인사는 “유 원내대표는 정치에 입문한 순간부터 과연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 고민해왔다”며 “유 원내대표가 정치에 입문한 것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 등 우리나라의 공동체가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보수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TK 출신의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유 원내대표와 박 대통령은 부친이 정치를 한 2세 정치인이라는 점과 국방·안보에 대한 보수적인 노선이 비슷하다는 점 외에는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분명하다”며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공약했지만 실천된 것은 거의 없지 않은가.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유 원내대표와 박 대통령은 걸어가야 할 길이 다른 정치인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공격이 그의 높아지는 정치적 위상을 차단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 원내대표는 집권 여당의 텃밭인 TK 출신으로 경북고 57회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낸 경제통이기도 하다. 그는 집권 여당의 사령탑으로 복귀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당내 지지세를 규합할 경우 기근 현상을 빚고 있는 여권의 차기 대권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 책임론을 거론하며 진퇴를 결정하라고 압박하는 세력에 일부 비박 진영이 가세하는 모양새는 여권 내 차기 구도를 고려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6월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의 당·정·청) 보이콧의 뜻은 무엇이냐. ‘유승민 체제를 신뢰하지 못한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해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연일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가 사퇴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오히려 유 원내대표가 적극적인 대응으로 사태를 정면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 및 친박과의 갈등이 정점에 이른 상황에서 수세적인 입장을 취할 경우,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청와대와 친박 주류가 유 원내대표의 낙마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경우, 소신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킬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김무성 대표와 전략적인 연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대표가 최악의 사태를 관망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비박 진영의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와 친박이 공격하는 최종 타깃이 비단 유 원내대표는 아닐 것”이라며 “유 원내대표를 향한 공격의 배경에는 향후 공천권·당권 등 헤게모니 싸움이 있다. 유 원내대표를 향한 화살의 최종 과녁이 김무성 대표라는 걸 김 대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 때 법복 벗은 유승민의 부친  

한때 동지적 관계를 이어온 유승민 원내대표와 박근혜 대통령. 두 사람의 갈등이 최근 첨예화되면서 아버지들의 인연도 주목받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2세 정치인이다. 유 원내대표의 부친인 유수호 전 국회의원(13·14대)은 대구 중구에서 재선 의원을 지냈다. 유 전 의원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인 1970년대 초반까지 판사로 재직했다.

하지만 그는 1973년 지방법원 부장판사직을 끝으로 법복을 벗어야 했다. 일명 ‘사법파동’으로 인해 판사 재임명이 좌절된 것이다. 당시 사법파동은 박정희 정권이 군사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하는 법관들을 무더기로 면직시킨 사건이다. 당시 사법파동으로 부장판사 이하 법관 44명이 강제로 면직 처리됐다.

유수호 전 의원은 사법파동으로 면직 처리되기 전인 1971년 8월, 대통령선거법 위반죄 혐의로 기소된 전 울산시장의 병보석을 취소하고 징역 3년 실형을 선고하는 등 관련 공무원을 엄벌했다. 당시 공무원들은 그해 4월27일 치러진 7대 대선에서 신민당 김대중 후보의 유효 득표를 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표에 가산해 박 후보의 득표율을 76%에서 81.2%로 조작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는 전국적으로 53.2%를 득표해, 김대중 후보(45.2%)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유 전 의원은 같은 해 10월27일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전국에서 처음 구속된 부산대 총학생회장의 구속적부심(영장실질심사)에서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석방 결정을 내렸다. 소신 발언을 하는 아들 유 원내대표가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에서 부친들의 악연이 오버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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