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받고 창고를 무기 공장으로 조작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6.0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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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사업청 전 중령, 5억 받고 부적격 제품 납품 받아

방위사업청 직원들이 통영함과 소해함 납품 비리로 구속된 재미교포 무기중개업자 강덕원씨(46)의 미국 현지 업체를 수차례 방문해 현장조사를 실시하고도, 강씨 회사의 제품을 그대로 납품 받았던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밝혀졌다. 이들은 강씨의 미국 회사가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아닌 창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마치 제조 공장을 갖춘 생산업체였던 것처럼 서류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가 한국 측에 납품한 제품은 통영함과 소해함에 부착되는 음파탐지기다. 강씨는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으로 가져가 이것을 미국에서 생산한 제품인 것처럼 꾸며 한국으로 역수출했다. 강씨는 음파탐지기를 소해함에 납품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 대가로 방사청 상륙함사업팀에서 일하던 최 아무개 전 중령(47·구속 기소)에게 2011년 4월부터 올 6월까지 총 5억1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방위사업 비리 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이하 합수단)은 이미 2명의 방사청 직원이 강씨와 연루돼 있는 것을 확인했으며, 미국으로 현지 조사를 나갔던 다른 방사청 직원들 또한 향응 및 뇌물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2012년 9월4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열린 ‘통영함’ 진수식. ⓒ 연합뉴스
무기 중개업자가 제조업자로 둔갑

합수단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강씨는 무기 제조업자가 아닌 중개업자다. 강씨는 통영함과 소해함에 660억원 규모의 음파탐지기 5대를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강씨는 방위사업청과 계약할 때 중개업자가 아닌 제조업자로 계약을 맺었는데, 방사청이 제조업자와 계약을 맺을 때는 현지 실사를 통해 실제로 제품을 만들 능력이 있는 회사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방사청은 통영함과 소해함에 납품하기로 한 장비 계약을 맺을 때도 강씨의 미국 현지 회사에 대한 실사를 나갔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강씨 회사는 제조 공장이 아닌 한국에서 만든 제품을 들여와 이를 라벨만 바꿔 한국으로 역수출하는 중개업체였음에도 방사청 직원들은 이를 제조업체인 것처럼 위조해 서류를 작성했다. 결국 방사청은 현지 실사 서류를 토대로 강씨 회사와 계약을 맺었고, 장비들은 그대로 해군에 납품됐다.

강씨는 처남인 김 아무개씨를 통해 방사청 팀장 및 소속 직원에게 수시로 뇌물과 향응을 제공했다. 2011년 10월에는 서울 강남구의 한 유흥주점에서 방사청 팀장을 만나 장비 납품 계약에 편의를 봐달라고 청탁하며 100만원을 주고, 다음 해 5월 같은 명목으로 500만원을 건네기도 했다. 김씨는 2013년 8월 말까지 28차례에 걸쳐 모두 2400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합수단 수사 결과 밝혀졌다.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방위사업청. ⓒ 시사저널 이종현
한 재미교포 무기중개상은 “군에 무기를 납품할 때는 제품에 MC(Manufacturing Certification)와 FC(Factoring Certification) 등이 다 붙어 있는데 이것만 확인하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미국 현지 실사를 가서 이것만 확인하면 제품을 한국에서 가져왔다는 걸 금방 확인할 수 있는데 마치 미국에서 제조한 것처럼 눈감아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사청 직원들이 해외로 제조업체 실사를 나가는 것은 요식 행위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며 “검증만 제대로 해도 방산 비리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해함의 핵심 장비도 엉터리 계약을 맺고 도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소해함은 주요 항만 및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기 위해 바다의 지뢰인 기뢰를 제거하는 함정으로, 기뢰 탐지를 위한 음파탐지기 및 기뢰 소해를 위한 장비가 핵심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방사청은 기뢰를 제거하는 59억원 상당의 기계식 소해 장비 3대를 각각 90억원을 주고 사들인 정황이 드러났다. 대당 31억원씩 도합 93억원의 혈세를 낭비한 것이다. 방사청은 시험성적서를 확인한 후 장비를 납품해야 하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소해 장비 인수를 책임진 방사청 직원은 장비 납품 전에 시험성적서를 제출받아 성능을 확인해야 하지만 이를 확인하지 않고 장비를 인수했다. 이후 한 달이 지난 뒤에야 방사청은 납품업체로부터 시험성적서를 제출받아 확인 작업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미국 군사표준과 다르게 조작된 시험성적서가 제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당초 시험성적서를 확인해 장비 인수를 거부해야 했지만 때를 놓친 것이다.     


거물 브로커의 ‘배 째라’에 난감한 합수단 


지난해 11월21일 출범한 방위사업 비리 합동수사단은 현역 참모총장과 전직 참모총장을 구속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미 언론에서 언급된 수사 이외에 새로 밝혀낸 비리가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전·현직 총장 이외에 거물급 정·관계 인사들이 없다는 지적도 합수단으로선 난감한 부분이다. 합수단이 정치적 판단을 하면서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시사저널이 합수단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핵심 브로커들이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아예 아프다며 구치소를 나오지 않아서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적 경우가 이규태 일광폴라리스 회장이다. 그는 장비 국산화를 명목으로 1100억원대 공군 전자전훈련장비(EWTS) 납품 사기를 벌인 혐의로 올해 3월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합수단은 이 회장이 오랜 기간 군에 무기를 납품할 수 있었던 데는 군 최고위급 인사나 정치권의 비호가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 회장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검찰 조사를 거부하고 아예 조사실로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수사에 애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덕원 회장의 경우 검찰이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면 마지못해 인정할 뿐,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확실한 증거를 찾아 들이미는 수밖에 없는데, 방산 비리의 특성상 주변 인사들도 입을 닫는 경우가 많아 수사가 어려움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수단 사정에 정통한 검찰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어떻게 볼지 몰라도 오히려 합수단 소속 검사와 수사관이 더 약이 올라 있는 상태”라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수사를 하다 보니 확실한 증거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재미교포 무기중개상은 “그동안 방산 비리의 관행상 수사를 받는 사람이 관련자들이나 윗선을 밝히면, 수감 중이거나 만기 출소 이후 뒤를 봐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거물들만 엮으려 하기보다는 소령이나 중령급 실무자들을 압박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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