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리 이으려 아웃도어 점포도 냈어요”
  • 윤영무│MBC아카데미 이사 ()
  • 승인 2015.06.0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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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소리꾼 이장학의 사랑방론

지난 5월30일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연평리에서 ‘소천재(巢天齋) 사랑방 음악회’가 열렸다. 경기민요 소리꾼 이장학씨(58)의 170년 된 붉은 기와집 마당에서였다. 국악과 재즈, 품바, 보컬, 클래식, 서예 등 각 장르에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숨은 예술인들이 전국에서 모여 협연(協演)을 했다. 올해로 13번째인 이번 음악회에 얼추 500여 명이 다녀갔다. 저녁 10시까지 공연장을 지킨 관중도 400여 명에 달했다. 공연장이라고 해봐야 마당 한쪽에 무대를 세워 음향시설을 설치하고 조명을 치는 것이 전부다. 입장료는 따로 정해놓지 않았다. 마당 입구에 입장료를 담는 종이상자가 놓여 있는데 그냥 지나가도 눈치 보이지는 않는다. 대개 1만원, 혹은 그 이상을 내는 듯하다.

자비 들여 10년째 사랑방 음악회 주관

공연이 시작되는 저녁 7시 전후는 배가 고플 때다. 음식 솜씨가 좋은 이씨의 부인 성열옥씨와 팬들이 250여 만원을 들여 준비한 김밥과 빈대떡, 두부와 떡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 사람들은 은박지로 싼 접시에 음식을 담아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영락없는 사랑방 풍경이었다.

경기민요 소리꾼 이장학씨가 직접 제작한 ‘소천금’을 연주하고 있다. ⓒ 윤영무 제공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소원을 써서 나무에 매달기, 제기차기, 목공예와 도자기 전시회 등이 열렸다. 2부는 만담가 고 장소팔 선생의 아들 장광혁(64·예명 장광팔) 만담보존회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혼성 듀엣 ‘노래하는 풍선껌’의 포크송과 문영식의 맹인타령, 바리톤 장대규, 소프라노 권성순, 피아니스트 류충식의 재즈 연주, 서예가 권성호 교수의 퍼포먼스, 장고의 품바 공연이 잇따라 펼쳐지면서 분위기가 고조됐고, 색소폰 연주로 이날 공연은 막을 내렸다. 10년째 이 음악회를 주관해온 그가 ‘어이구~’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필자에게 뒤풀이 막걸리를 권한다.

“한 달 전부터 준비한 겁니다. 집에서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준비할 게 너무 많아요. 수도시설과 화장실 정비, 무대를 설치하고 음향·조명을 외부에서 부르고….”

“이런 행사를 하는 데 얼마나 드나요?”

“글쎄요. 500만원 이상 들지요. 출연료를 제대로 준다면 2000만원짜리 행사죠. 품앗이로 서로 재능 봉사를 해서 그렇지. 손님들이 입장료 상자에 넣어주는 돈은 20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나머지는 제 부담이죠.”

치과 기공사인 이씨는 30대 후반에 직업병으로 생긴 위장 이상으로 고생을 해야 했다. 출근할 때 눈여겨봐둔 간판을 보고 들어가 국악인 최창남 선생을 만났고, 여기에게 우리 소리를 배웠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장구채를 들었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소리 공부를 했다. 출퇴근 때 자동차를 운전하며 가사를 외우고 발성 연습을 했으니, 자동차는 그만의 연습 무대였던 셈이다. 그러길 11년, 그는 신나는 음악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서울·경기도 지방의 민요 분야에서 최창남 선생의 수제자가 되어 지금까지도 두 가지 직업을 가진 소리꾼으로 살아오고 있다.

“자비로 사랑방 음악회를 여는 이유가 있나요?”

“서양식 극장은 혼자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국악 공연과 어울리지 않더군요. 사랑방이나 마당은 서양식 극장과 달라요. 모두가 소통하며 어울릴 수 있거든요. 발레나 오페라가 서양식 극장에 어울리듯, 우리의 공연은 사랑방과 마당이 좋겠다 싶었어요. 마당은 우리 식으로 치면 야외극장이고, 장터는 큰 극장일 겁니다. 사랑방에 가면 먹을 게 있잖아요. 누구나 자유롭게 막걸리를 마시면서 공연을 볼 수 있어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모셔서 공연을 하는 겁니다. 1등을 하는 분들은 TV에도 나가고 대형 무대에 서니까 사랑방 공연은 성에 안 차지요. 그러니 1등이 아닌 분들을 사랑방에 모셔서 1등을 만들어 드리자는 겁니다.”

“10년 넘게 음악회를 꾸려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요?”

“힘들지요. 그러나 가능성이 보여요. 공연 전에 음식을 먹으면서 소통을 하니까 공연을 보면서 한마음으로 같이 놀 수 있는 거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놀이문화는 고기 구워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는 거잖아요.”

지난해 가을부터 그는 서울 비원 앞의 소극장인 창덕궁 무대에서 ‘막걸리 아리랑’이란 이름으로 공연을 했다가 6개월 만에 손을 들고 말았다. 관중은 늘어났지만 공연을 하면 할수록 손해였다.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꼴로 공연 요청이 들어오지만 봄·가을 한 철에 그쳐 생활비 충당이 쉽지 않다. 그가 아내와 함께 불암산과 수락산 인근에 아웃도어 점포를 낸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일주일 한 번 공연, 생활비 충당도 어려워

“소리꾼이다 보니, 홍보하고 마케팅을 할 능력이 없더군요. 공연을 하는 것이나 점포를 운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사랑방 공연과 막걸리 아리랑 공연 때마다 준비해야 하는 막걸리와 안주 값, 뒤풀이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아웃도어 점포를 하는 것도 그런 비용을 벌려고 하는 거지요. 우리의 소리를 이어가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요.”

조선시대 양반집 사랑방은 손님을 맞는 방이자, 선비들의 문화예술 창작 공간이었다. 선비들은 이곳에서 시를 짓고 글씨도 써서 남기고 그림을 그렸다. 이런 작품들이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우리의 문화 예술을 알리는 데 거대한 극장이나 시설을 갖춘 공연장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린벨트의 빈 공간, 전통 한옥 사랑방과 마당 공연장을 현대식으로 활용하면 대박이 나지 않을까. 이것이 치과 기공사 출신의 소리꾼인 그가 사랑방 음악회를 지속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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