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전염
  • 김인숙 | 소설가 ()
  • 승인 2015.06.0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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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3월 빌 게이츠가 테드쇼에서 강연한 내용은 테크놀로지나 경제 산업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미래의 위기에 대해 우리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제목의 이 강연에서 그가 힘주어 말한 전 세계적인 위기 혹은 재앙은 전염병이다. 향후 몇 십 년 안에 만일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이 사망하는 재앙이 발생한다면, 그건 핵폭발이나 전쟁이 아니라 전염병 때문일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에볼라 사태를 겪은 후의 강연이라 설득력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염으로 인해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이 실명을 하게 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계로 빠져든 사람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공포와 불안과 폭력과 기만이다. 내가 세상을 볼 수 있을 때는 정작 볼 수 없었던 나의 내면과 타인의 내면은 토할 것처럼 역겹고 끔찍하다. 잃은 것은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지만 얻은 것은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다.

이 소설은 나중에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줄리언 무어의 최근작이 또 의미심장하다. <스틸 엘리스>는 고작 쉰 살에 알츠하이머에 걸려 자신을 잃어가는 여교수의 이야기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명하다. 무엇을 잃었더라도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사랑이 있다면 그는, 그녀는 ‘여전히 그’이고 ‘여전히 그녀’인 것이다. 바로 그 ‘사람일 수 있는 존엄’을 앗아가는 것 중 하나가 공포다.

빌 게이츠는 에볼라에 대처하던 당시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예방과 치료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런 시스템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뼈아픈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에볼라를 겪으면서 우리가 전염병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된 것이라고도 말한다. 알았으니 준비를 시작하면 될 것이고, 그러고 나면 어떤 재앙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늘어나고, 사람들의 공포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이럴 때는 별거 아니니 떨지 말라고 달래는 대신 그에 대해 최대한 더 많이 설명해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 겪어보지 않은 전염병에 대처하는 가장 올바른 자세는 최악의 상황에 맞춰 매뉴얼을 구성하는 것이라는 의료진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것은 정책 당국이나 의료진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필요한 공포는 불필요한 상상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부정확하고 불충분한 정보 때문에 오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라면 말이다. 확진 환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우리는 메르스에 대해 거의 모른다. 발생 병원도 모르고 대처 방법도 모르고, 정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 안 무서울 수가 있겠나. 메르스만 전염인 게 아니라 공포가 전염이다. 조기에 확실하고 투명하게 그 대응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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