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삼성 임원 22명 신상 조사했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6.1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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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주주 계열사 3곳 사장 등…제일모직과 합병 반대 위해 치밀한 준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 입장을 밝혀온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6월9일 법적 절차에 착수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서초사옥 © 연합뉴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고 나선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가 지난 5월 국내 한 신용정보회사에 용역을 줘서 삼성물산 주요 주주인 삼성그룹 계열사 세 곳의 핵심 임원 및 사외이사들의 이력과 신상정보 등을 조사했던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세 곳은 삼성SDI, 삼성화재, 삼성생명으로 삼성물산의 주식 7 . 4%, 4.8%, 0. 15%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엘리엇 측이 합병을 반대하기 위한 치밀한 준비 작업을 해왔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그 구체적 정황이 드러난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엘리엇 측이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정보를 파악한 임원은 총 22명으로 각 회사의 사장과 감사, 재무팀 부사장급 임원을 비롯해 사외이사 등이 포함돼 있다. 엘리엇 측은 이들의 경력과 회사 측에서 맡고 있는 주요 역할 그리고 오너 일가와의 관계 위주로 조사했다.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삼성그룹 내부의 깊숙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엘리엇이 사전에 이 같은 준비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번 공격이 치밀하게 계획됐음을 보여준다. 또한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 가치뿐만 아니라 삼성그룹의 핵심 의사결정 라인에 속해 있는 임원들과 오너 일가 간 관계까지 알고자 했던 것은 이번 합병의 불합리함을 주장할 때 근거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주주로 있는 주요 계열사들이 사실상 오너 일가의 지배력 아래 있다는 것은 이들이 주주 전체를 위한합리적 의사결정보다는 오너를 위한 결정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이 회사는 보고 있는 것이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왼) ,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오)


오너 일가와의 관계에 집중

엘리엇이 신용정보회사로부터 받은 자료 중 일부 임원들에 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김영식 삼성SDI 경영지원실 부사장 
-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 전 삼성전자 해외지원팀 팀장
- 전 삼성전자 생활가전팀, IT팀장
- 최지성 미래전략실장과 가까운 사이로 이재용 
부회장 측 핵심 인사로 분류됨. 
- 삼성SDI는 삼성전자 제품의 핵심 소재 기업이
기 때문에 전자 쪽 사정에 밝은 전문 엔지니어들
이 대거 경영진에 포함. 단 김 사장의 경우 특이하게 전자에 오래 있던 재무통으로 분류됨.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 
- 경남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학과
- 전 삼성생명 금융사장단협의회 사무국장
- 전 삼성생명 자산운용본부 본부장, 전무 
- 전 삼성생명 뉴욕투자법인 법인장
- 전 삼성생명 전략기획실 부장
- 이건희 회장 비서실 출신으로 이 회장의 수행과 의전을 담당했던 인물이며 사실상 오너 일가의최측근과 같은 역할을 해왔음. 지배구조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금융 계열사 사장에 앉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임.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
- 충남고,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 전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
- 전 삼성물산 상사부문 부사장  
- 전 삼성그룹 비서실 인사팀 담당차장  
- 이건희 회장 비서실 의전팀에 근무하며 지근거
리에서 보좌하고 지시를 받았던 인물. 

최신형 삼성생명 부사장 
- 가야고,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 삼성생명 최고재무책임자(CFO)
- 삼성물산 부사장 
- 에버랜드 감사    
- 삼성전자 재무팀담당 부장, 상무보
- 재무와 인사통으로 그룹 비서실의 영향 아래서 지휘하고 있음. 삼성전자 근무 시에도 재무를 담당했던 재무통. 최근에 자금을 담당하는 P 상무가 최신형 부사장의 지휘 아래 실질적으로 삼성생명의 자금을 총괄. 

문태곤 삼성생명 감사
- 경북대학교 행정학과, 성균관대학교 행정학 박사
- 제24회 행정고시 합격 
- 감사원 제2사무차장 
- 감사원 기획관리실 실장
-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  
- 감사원 비서실 실장   
- 감사원 출신으로 회사 경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힘은 없음. 대(對)감사원 창구 역할.

           
엘리엇은 주요 임원뿐만 아니라 감사와 사외이사들의 경력 및 이사를 맡게 된 계기 등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파악했다. 엘리엇 측이 삼성그룹 계열사 세 곳의 주요 임직원 정보를 파악하고 나선 것은 삼성물산의 주주인 세 회사가 엘리엇 측의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할지 사전에 파악하려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엘리엇은 지난 6월4일 삼성물산 지분 7.12%를 매입했다고 발표한 후 다음 날 곧바로 삼성물산의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을 비롯해 삼성그룹 세 개 계열사에 공식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며 위법 소지가 있다’는 엘리엇 측의 합병 반대 의사가 담겨 있다. 

물론 엘리엇도 삼성그룹 계열사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에서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인데, 삼성그룹 계열사가 이를 막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엘리엇은 세 회사 주요 임원들의 경력이나 역할을 봤을 때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반대 서한을 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엘리엇이 세 회사에 합병 반대 서한을 발송한 이유는 무엇일까.

불합리한 지배구조 부각시키려는 듯

조남성 삼성SDI 사장 © 연합뉴스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엘리엇이 단기 차익을 노리든, 소송을 통한 장기전을 노리든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이 얼마나 불합리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엘리엇이 지난 6월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주총회 결의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점으로 미루어 삼성물산 합병 법인에 대한 경영 간섭을 위한 장기전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봤을 때 삼성그룹의 가장 큰 약점은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지배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세 개 회사의 임원들이 오너 일가의 핵심 측근이라는 것은 결국 삼성 계열사 모두가 전체 주주가 아닌 오너 일가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하기 전에 주요 계열사들 임직원의 성향을 알아본 후 반대 서한을 보냈다면 이는 나중에 있을지 모르는 소송 과정에서 ‘반대 서한을 보내 합병의 불합리성을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계열사 임원들이 오너 일가의 뜻대로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엘리엇이 2003년 소버린 사태처럼 단기 차익을 노리고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버린 사태란 지난 2003년 미국계 소버린자산운용이 보유 지분을 바탕으로 SK의 경영권을 흔든 다음 2005년 9459억원에 가까운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고 떠난 일을 말한다. 당시 소버린은 SK 지분 14.99%를 확보해 2대 주주가 된 후 크레스트증권의 5개 자회사에 주식을 나눠 맡겼다. 보유 지분을 나눠 이사회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할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 합계는 3%, 각 일반 주주는 3% 지분율 규정을 준수하면서 의결권을 최대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이어 소버린은 SK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전부를 행사하며 경영 투명성 제고 목적으로 경영진 교체와 집중투표제 도입,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했다. 반면 SK는 의결권이 3%로 제한돼 약 1조원 규모의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나서야 가까스로 경영권을 방어했다. 당시 소버린의 ‘먹튀’를 둘러싼 논란이 거셌다.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엘리엇의 움직임으로 봤을 때 단기 차익 실현을 하고 빠질 가능성보다는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KCC에 자사주 매각’은 여론전 역효과
엘리엇의 목표가 단기 차익 실현이든 장기적 경영간섭이든 양측은 당분간 연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여론전에 전력투구할 전망이다. 엘리엇은 주주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활동임을 강조할 것이고, 삼성 측은 엘리엇이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린 외국계 투기자본임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엘리엇이 ‘꽃놀이패’를 쥐었다고 볼 수 있는 반면, 삼성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삼성 측은 엘리엇과의 싸움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결국 지키는 것은 오너 일가의 지배권밖에 없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이번 합병에 반대하는 엘리엇이나 소액주주들의 주장에 대해 “건설 경기가 떨어져 있기 때문이고, 합병 시 더욱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
라고 반박하지만 이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좋은기업지배구조 연구소의 채이배 연구원은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삼성물산에 제기되는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합병을 한다고 하지만 합병한다고 해서 건설 경기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사태가 발생했다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마치 국내 자본에 대한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이라는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위해 회사가 움직일 때 장기적으로 더 큰 손실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폴 싱어 엘리엇 매니지먼트 CEO © REUTERS

삼성물산이 KCC 측에 자사주를 매각한 것 역시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는 유리할지 몰라도 여론전에서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삼성물산은 자사주 매각 공시 전날까지도 시장에서 나돌고 있는 ‘자사주 매각설’에 대해 “자사주 매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주주들 설득 작업을 통한 우호 지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으나, 6월 11일 주주명부 폐쇄를 앞두고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같은 날 보도자료를 내고 “삼성물산의 자사주 처분을 통한 의결권 부활 시도는 삼성이 결코 꺼내들지 말았어야 할 카드였음에도, 근시안적 시각에서 무리수를 둔 삼성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의 정당성을 한순간에 잃은 것은 물론이고,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승계 작업마저도 의구심의 대상이 되게 만들었다”며 “자신의 명분은 훼손하고 상대방의 명분을 강화한 이번 결정은 ‘최악의 한 수’라고 평가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엘리엇은 삼성과의 경영권 분쟁을 제법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해온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 주요 주주이자 삼성그룹 계열사 임원들의 사내 역할을 파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반면 삼성으로선 상대방의 패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힘겨운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배구조를 정상화시키지 않고서는 이런 식의 공격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삼성의 고민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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