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천수답 행정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5.06.1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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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마다 실기(失機)의 연속입니다. 메르스 관련 병원 정보를 공개한 것도, 민관 합동 대응팀을 꾸린 것도 모두 원님 떠난 뒤 나팔 분 격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확진자와 격리자 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국민들은 난생처음 접하는 이 바이러스가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또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학교 밖에서 맴돌아야 했고, 식당 주인들은 빈 테이블을 보며 울상지어야 했습니다.

이제는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고 질타하는 일조차 번거롭게 느껴질 만큼 허무하고 또 허무합니다. 정부 스스로 병원 내 감염 범위에서 충분히 통제될 수 있다고 장담한 전염병이 왜 이렇게 무서운 공포의 대상으로 둔갑하고 말았는지 어처구니가 없을 뿐입니다.

이쯤에서 정부가 왜 또 세월호 참사에 이어 국민 안전과 관련한 사안에 안일하게 대처해 ‘민폐 정부’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는지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론 매체 등에서는 정부가 연금 문제에만 매달려 보건복지부 수장에 경제학자를 앉힌 것부터가 잘못이었다는 등 여러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딘지 모자란 구석이 있습니다.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점부터 찾아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 정부를 이끌어가는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천수답 행정’ 관행입니다. ‘천수답’이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에만 의존해 벼농사를 짓는 논이고, 천수답 행정은 윗사람의 명령이 있어야만 비로소 움직이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윗사람들은 잘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조직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모든 책임을 아랫사람들에게 돌리는 조직에서 누가 자발적으로 움직여 제 할 일을 하겠습니까. 그저 윗사람 눈치만 볼 뿐입니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솔선수범하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다 보면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노력은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현장 취재한 일선 기자들도 공무원 특유의 경직성, 상황에 대한 유연성 부족이 답답한 대처를 낳은 원인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메르스에 대한 뒷북 행정이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그 물이 왜 엎질러졌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실패를 거울삼아 이제라도 일선 행정 인력들이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즉각적으로 과감하게 수행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주어야 하고, 그러려면 잘못된 관행부터 철저히 뜯어고쳐야 합니다.

2004년 6월 이라크에 파견된 한국 무역업체 직원 김선일씨가 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돼 살해됐을 때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

 

혜 대통령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노무현 대통령은 자격이 없으며 난 용서할 수 없다.”

그런 말을 했던 대통령이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은 지금 스스로 생존 능력을 단련하는 훈련을 매일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독자 생존의 능력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정부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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