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안희정 ‘한 건’ 김무성은 ‘조심조심’
  • 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 ()
  • 승인 2015.06.1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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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정국에서 드러난 여야 ‘잠룡’들의 엇갈린 성적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확산 사태가 정치권의 차기 대권 주자 판도까지 흔들고 있다. 여야 잠룡들의 희비를 엇갈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야권 대권 주자들은 메르스 사태를 맞이해 발 빠른 행보를 통해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 주력하는 가운데, 현재까지 받아든 성적표에서 조금씩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번 메르스 확산 사태가 박근혜 정부의 초동 대처 실패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야권 잠룡들이 향후 위기관리 능력 등 리더십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최종 성적표를 좌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원순 행보 주목…문재인은 반사이익

메르스 사태를 맞아 야권 잠룡 중에선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보가 가장 눈에 띈다. 박 시장은 메르스가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던 지난 6월4일 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소재 한 대형 병원의 의사(35번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1565명이 참석한 개포동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해 대규모 인원이 메르스 감염 위험에 노출됐다는 내용을 밝혔다. 그는 35번 환자의 동선을 공개하고,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가택 격리 조치 및 지원에 나섰다. 이후 서울시는 ‘메르스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확산 방지에 전 행정력을 동원했다.

왼쪽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안철수 전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까지 ‘과잉 대응’이라고 비판하고 나섰지만, 박 시장은 “늑장 대응보다 과잉 대응이 낫다”며 정부를 향해 지방자치단체와의 정보 공유, 병원 정보 공개, 메르스 확진 권한 지자체 이양 등을 요구했다. 박 시장의 강도 높은 대응은 ‘병원 정보 등의 비공개’ 입장을 유지하던 정부에 부담을 줬다. J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서울 시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시장의 긴급 브리핑이 ‘적절했다’는 응답이 55%로, ‘적절하지 못했다’(32.8%)보다 훨씬 많았다. 결국 정부는 박 시장의 기자회견 이후 사흘 만인 6월7일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경유 병원 정보를 공개한 것은 물론 지자체와의 정보 공유 및 메르스 확진 권한 이양 등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 ‘박원순의 승리’라는 분석이 나왔다. 사실상 ‘박원순 효과’가 정부의 메르스 대응 기조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판단에서다. 여론도 반응했다. 박 시장은 리얼미터가 6월8일 공개한 6월 1주차 주간 여론조사 결과 전주 대비 0.4%포인트 상승한 13.8%를 기록했고, 메르스 대응을 놓고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이 고조됐던 6월5일 일간 지지율은 전날 대비 3.3%포인트가 상승했다. 다만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박 시장이 메르스 사태 속에서 이슈 파이팅에 성공하면서 분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 ‘반짝 효과’는 있겠지만, 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듬직한 국가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일시적인 주목과 관심을 끄는 효과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도 메르스 사태로 일정 정도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문 대표는 제1야당 대표로서 메르스 확산 사태에 대한 정부의 부실한 대응을 비판하면서도 ‘선(先)수습, 후(後)문책’이라는 기조로 질병관리본부를 방문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특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4+4 회동’을 제안해 성사시켰고, 메르스 방지를 위한 ‘초당적 협력’을 위한 국회 메르스 대책특위 설치 합의도 이끌어냈다.

문 대표는 4·29 재보선 참패 후 자신에 대한 책임론을 둘러싸고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던 당 내홍이 이번 메르스 확산 사태로 잠잠해졌다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었다. 김철근 동국대 사회과학대 교수는 “문 대표에겐 메르스 사태로 당내 분란이 사라지는 반사 효과를 누렸다는 게 가장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메르스 사태의 최대 수혜자”라는 농담 섞인 평도 나온다.

 

안철수 미온적 행보…안희정 실속 ‘통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메르스 사태 속에 보건복지위원으로서 목소리를 내면서 존재감을 내보였다. 안 전 대표는 6월7일 보도자료를 통해 △전문가에게 책임과 결정권 위임 △정보의 투명한 공개 △전국의 관련 전문 인력 파악 후 재배치 등 메르스 대응책과 관련한 요구 사항을 발표했다. 다만 ‘의사 출신’이라는 이점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다소 미온적인 행보에 그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6월4일 트위터를 통해 “안 전 대표는 의사 출신이다. 자신의 ‘상품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내가 안 전 대표라면 방역복과 마스크를 장착하고 정부 방역센터와 주요 병원을 돌겠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 서서 박근혜 정부의 ‘의료적 무능’을 질타하겠다. 이어 종합대책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안 전 대표가 보건복지위원으로서 목소리를 냈지만, 현직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발언에 그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정부를 비판하기보다 협조하는 데 무게를 두는 등 ‘통합’ 행보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박 시장이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던 당시 “중앙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혀 국가적 위기 상황에 ‘통 큰 행보’로 다른 야권 잠룡들과 차별화된 행보를 보였다. 천안 단국대병원 등을 방문하며 관계자들을 위로하는 등 안 지사의 현장 행보도 눈길을 끌었다. 메르스 정국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이는 박원순 시장이지만, 실속을 챙긴 이는 안희정 지사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철근 교수는 “안 지사는 박 시장과 달리 정부와 기본적으로 협조 관계를 형성하면서 젊은 나이와 친노라는 이미지 속에서도 안정감을 주는 행보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여전히 메르스 사태가 확산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야권 잠룡들이 이후 행보를 어떻게 가져갈지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최진 원장은 “국가적인 재난이라는 위기 상황 속에서 차기 대권 주자들의 활동은 국민들에게 상당히 깊은 인상을 심어주게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행보도 그렇지만, 앞으로 메르스 사태의 진전에 따라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도 국가 지도자로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남경필 경기도지사. ⓒ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김무성 구설 오르는 등 여권은 ‘전전긍긍’

“청와대와 정부가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는 마당에 어느 누가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나. 솔직히 말해 여야를 비교하면 완패다. 야당과 달리 여당의 잠룡들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적 평가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한 번 더 확인된 것이다.” 메르스 사태 정국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인 야권 대선 주자들과는 달리 여권의 잠룡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에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이 한숨을 내쉬며 한 말이다. 수도권 출신인 그는 연신 혀를 차면서 “지역구에 가보면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보다 훨씬 여론이 안 좋다는 게 금방 실감 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메르스 사태 와중에 여권 잠룡들 가운데 특별히 주목되는 행보를 보인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여기에다 여권의 속성상 청와대나 정부를 비판하며 다른 행보를 하기도 쉽지 않다. 김무성 대표가 불필요한 구설에 오른 게 단적인 예다. 그는 메르스 확진 환자를 치료 중인 국립중앙의료원을 비공개 방문하고 2차 감염자가 발생한 여의도성모병원을 찾는 등 동분서주했지만, 확진 환자가 100명을 넘어선 6월10일 “메르스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고 언급해 비판을 자초했다. 한 경기 지역 초선 의원은 “지역구민들에게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며 “과도한 불안감이나 공포를 차단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의식적으로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려다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개정 국회법 논란과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및 인준안 처리 등으로 정신이 없는 상태다. 메르스 파문과 관련해 정부의 컨트롤타워 부재를 연일 지적하면서 쓴소리를 했지만 이에 집중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원내부대표단에 속한 한 의원은 “메르스 사태가 확산되면서 개정 국회법 논란이 수그러드는 것 같더니 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연기하는 바람에 내부적으로는 초긴장 상태”라며 “야당과의 협상이 잘 안 돼서 결국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원칙대로 재의결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내대표직을 걸고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한판 승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비롯한 광역단체장들의 움직임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나마 남 지사가 문재인 대표, 이재정 경기교육감 등 야권 인사들과 메르스 사태 대처를 위한 ‘협치’에 나선 것 정도가 눈길을 끈다. ‘성완종 리스트’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두문불출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메르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 역시 현직에서 벗어나 있어 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발언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친박계에선 유일하게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총리대행 자격으로 메르스 파문 진화의 선두에 섰다. 하지만 최 부총리의 역할이 국민적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한 수도권 비주류 중진 의원은 “메르스 사태에 대처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자세나 태도는 내가 봐도 한심하지만 그렇다고 김 대표나 유 원내대표, 남 지사 등이 이를 비판하고 나서면 당·청 갈등이니 계파 갈등이니 하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어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며  “내년 총선 준비에 들어가야 할 당 지도부엔 지금처럼 민심 악화를 자초하는 박 대통령이 계륵 같은 존재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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