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은 못해도 계좌 추적은 했어야지”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6.1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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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성완종 리스트’ 대선 자금 수사 졸속 마무리 논란

 

“피하고 싶은 사건이다.” “누가 맡은들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수사다.” 복수의 베테랑 검찰 관계자들이 ‘성완종 리스트’로 촉발된 대선 자금 수사와 관련해 한 말이다. 뇌물 핵심 공여자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사망한 데다 현 정권의 대선 자금에 직접 칼을 들이댄다는 것 자체가 수사를 맡은 검사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란 뜻을 내비친 것이다. 그래서일까.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을 바라보는 검찰 내 시각엔 동정도 느껴진다. 어떻게 하더라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수사이기 때문이다.

초기 반짝 기세를 올리던 성완종 리스트 관련 수사가 지지부진한 행보 끝에 유야무야될 상황에 처했다.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던져가며 돈을 전달한 대상과 구체적 액수까지 적시하고, 그의 측근들이 거듭 진술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수사 결과 발표뿐이다. 수사 결과 발표는 사실상 수사 종결을 의미한다.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 등장인물들에 대해 더 이상 소환조사를 하지 않을 예정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2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홍문종 전 새누리당 사무총장(가운데). ⓒ 시사저널 최준필

“증거 부족한 상황에선 계좌 추적 했어야”

성완종 리스트 수사의 핵심은 대선 자금 수사였다. 처음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한 수사가 시작됐을 때부터 정치권의 관심은 “과연 수사가 홍문종 의원 등 대선 자금 관련 인물들에게까지 이어지느냐”였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에 대한 수사는 개인 비리에 초점이 맞춰졌을 뿐, 대선 자금 수사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대선 자금과 관련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주춤대는 모습을 보이더니 급기야 ‘졸속 수사’ 논란까지 일게 됐다.

애초부터 성 전 회장이 사망했기 때문에 검찰이 증거 확보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검찰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느냐는 점은 전혀 다른 얘기다. 증거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증거 확보 수단을 사용하는 데는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한 아무개 전 경남기업 부사장으로부터 “2012년 대선 직전 성 전 회장 지시로 현금 2억원가량을 조성해 새누리당 대선 캠프 관계자 김 아무개씨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성 전 회장이 죽기 전 남긴 메모지의 홍문종이라는 이름 옆에 적힌 액수 역시 2억원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홍 의원에 대해 소환조사는 했지만 계좌 추적을 하지 않았다. 과거 대선 자금 수사팀에 참여해 직접 수사를 진행한 바 있는 A 변호사는 “만약 이 수사를 맡았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란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지금 수사팀의 수사 진행 상황을 보면 워낙 어려운 건을 맡은 데다 마땅한 카드가 없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증거나 자료가 부족한 만큼 더더욱 계좌 추적은 했어야 한다고 본다. 계좌를 추적한다 해서 검은돈 거래 사실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다른 무엇인가가 나올 수도 있고, 또 압박하는 자료라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압수수색까지는 무리라고 하더라도 계좌 추적은 충분히 해볼 만한 상황이었다.”

 

서면질의서 보내는 날 “비밀 장부 없다” 공표

실제 수사팀은 리스트 등장인물 중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를 제외한 나머지 6명에 대해서는 계좌 추적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6명 가운데 서병수 부산시장, 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등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모두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다. 계좌 추적은 검찰이 비자금 등을 수사하는 데 즐겨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로 자금 흐름을 파악하는 데 필수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팀이 홍준표 지사의 측근 나경범 경남도청 서울본부장 개인 계좌로 1억원이 서너 차례에 걸쳐 입금돼 이 돈이 대부분 한나라당 대표 경선 자금에 쓰인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 역시 계좌 추적을 통해 알아낸 것이다. 과거 유병언 일가, 통영함 비리, 포스코 건설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할 때도 계좌 추적은 늘 검찰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김형식 전 서울시의원 관련 재력가 송 아무개씨 피살 사건을 수사할 때는 관련 정치인 및 공무원 친인척 계좌까지 추적했다. 지난 5월엔 검찰이 과거 ‘철피아’ 관련 수사를 하면서 감사원 직원 3분의 1에 대해 대대적으로 계좌 추적을 한 사실이 알려져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런 계좌 추적이 이번 성완종 리스트, 특히 대선 캠프 관련 인물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부실 수사 의혹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 18대 대선과 관련해 이뤄지고 있는 또 하나의 수사가 있다. 오피스텔 임대업을 하는 정 아무개씨가 자신의 오피스텔을 대선 캠프 사무실로 쓰고 임대료를 내지 않았다며 새누리당 대선 캠프 관계자 7명을 고소한 사건이다. 피고소인 중에는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서병수 부산시장이 포함돼 있다. 이 사건은 현재 형사1부에 배당돼 있다.

서 시장은 2012년 대선 당시 선거 자금 및 조직을 총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별수사팀에선 자금을, 형사1부에선 조직을 각각 보고 있는 격이다. A 변호사는 “두 사건의 관련성을 생각했을 때 정씨를 단순히 임대업자로 보면 대선 자금 수사와 함께 묶지 못할 것이지만, 정씨가 사건 관련자들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두 수사를 묶어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선 자금 수사가 일단락되고 있는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해당 사건과 대선 자금 수사가 함께 이뤄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씨 사건은 단순 고소 사건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성완종 리스트 속 6명에 대해 서면조사만 한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히 검찰은 지난 5월29일 “비밀 장부는 없다”고 공표하고 리스트에 오른 6명에게 서면질의서를 발송했는데, 이를 놓고 일각에선 “조사 대상 6명이 검찰의 패를 본 상황에서 답변을 쓰게 해준 격”이라는 비판도 일었다. 서면질의를 받은 인물들이 하필 정권의 최측근이거나 대선 캠프에 몸담았다는 것도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공교롭게도 이 6명에 대해 검찰은 계좌 추적을 하지 않았다.

검찰 내부에서는 사안 등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기 힘든 점이 있었음을 들며 오히려 수사팀을 격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주어진 조건에서 저만큼이라도 한 것은 인정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수사가 마무리될 조짐을 보이자 강력하게 특검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만약 문재인 대선 캠프 수사였으면 이렇게 했었겠느냐”란 항변도 들린다. 결국 이렇게 대선 자금 수사 논란은 서초동에서 여의도로 장소만 옮겨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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