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로 무능 정권 뭇매, 레임덕 오나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5.06.1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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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새누리당과의 갈등도 불씨…“걸핏하면 뜻 거스르는 당과 어찌 함께 가느냐”

국무총리·장관 후보자들의 낙마를 비롯한 인사 난맥, 세월호 참사, 청와대 비선의 국정 농단 시비, 메르스 확산 파동….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정권의 성패는 국정 스케줄의 효율적 운용 여하에 달려 있다. 실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4년 미만이라서 이른바 시테크(時-Tech)의 최적화·극대화가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 제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수단을 보유했더라도 ‘시’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기 십상이다. 집권 5년 차에 접어들면 레임덕이 자연현상처럼 찾아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당·기업 등은 물론, 공무원들까지 노골적으로 차기 권력에 눈길을 주면서 청와대의 영은 서지 않게 돼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검증된 부동의 ‘법칙’이다.

집권 초반 허송한 정부에 ‘메르스’는 치명적

1987년 개헌을 통해 5년 단임제가 도입된 제13대 노태우 대통령 이래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예외가 없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 모두가 아예 여당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형식은 탈당이었지만 사실상 출당(黜黨)이었다. 그저 임기 얼마 전이냐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었다. 대개 대통령 일가 관련 권력형 부패 등 최고 권력 내부의 치명적 하자가 사태를 더 악화시켰는데 비단 이런 요인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초라한 말년은 1987년 개헌 헌법 체제에선 불가피한 ‘권력의 정석’이다.

6월8일 ‘메르스 대책회의’를 주재하는 박근혜 대통령. 메르스 전국 확산이 정부의 무능 탓으로 드러나면서 집권 3년 차마저 허송하게 될지 모를 위기에 처했다. ⓒ 연합뉴스

앞서 예시한 인사 난맥, 세월호 참사, 국정 농단 시비는 현 정부의 집권 1, 2년 차를 허송케 만든 대표적 사례다. 정권의 기초를 닦고, 국정 수행 동력 축적과 최대 출력 발휘 여지를 앗아갔다. 패착들을 뭉뚱그려 얘기해서 그나마 그렇지,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숱한 문제들의 책임이 정부, 좀 더 적확하게는 청와대에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후반에 터져 나온 정윤회씨의 비선 개입 논란 파문 속에 지지율이 30% 이하로 급락하자 청와대는 아연 긴장, 일대 변신을 추구하는 듯했다. 국정의 핵심 축인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의 ‘경질 예고’ 등 전대미문의 극약 처방까지 동원했다. 이런 노력이 상당 부분 먹혀 들었고 거기엔 여전한 내분과 방향감각 상실로 휘청거리는 무기력한 야당의 존재도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일각에선 그런 야당으로 인해 여권이 방심하게 되고, 따라서 궁극적으론 독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지만 어쨌거나 당장의 곤경을 빠져나오는 데는 ‘도움’이 됐다.

그러나 회심의 카드로 꺼낸 이완구 총리 카드는 발등을 찍었다. 또 현 정부 출범의 최대 공신인 새누리당 핵심 인사 4명과 청와대 전·현 비서실장 3명 모두가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는 여권의 급소를 찌를 만했다. 하지만 김무성-유승민 체제의 새누리당은 그 와중에 치러진 4월 재보선에서 압승했다. 이 역시 지리멸렬한 야당 덕이 컸다고 하더라도 ‘불가사의’임은 틀림없다. 하나 이조차도 반짝 경기에 불과했다. 입으로는 당·청 관계 재정립 운위했으나 ‘성완종 리스트’ 쓰나미를 딛고 일어선 새누리당의 김무성-유승민 체제와 청와대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결국 공무원연금법 개정 과정의 후폭풍으로 날카롭게 대립하던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 그리고 새누리당 내 ‘비박’과 ‘친박’ 진영 갈등은 법 시행령과 관련한 국회법 개정을 거치며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그냥 삿대질이 아니라 여차하면 독수(毒手) 행사도 마다않을 기세다. 임기 절반도 채우지 않은 대통령이 건재한 즈음에 청와대와 여당 사이에, 그리고 여당 내부에서 희한한 권력 게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의 의사를 걸핏하면 거스르는 여당과 어떻게 함께 가겠느냐”는 힐난이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그 말을 곱씹으면 대통령의 탈당 불사 카드가 읽혀진다. 지난해 당 대표를 뽑는 7·14 전당대회에서 ‘비박’ 주자 김무성 후보가 ‘친박’인 서청원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른 바로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 오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야당이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여당이 공격하면 정부는 일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된다. 새누리당이 만약 그렇게 하면 내가 여당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며 탈당 가능성을 언급했던 사실이 새삼 거론되는 등 한때 상황은 심상치 않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6월11일 메르스 치료 병원을 찾았다. 국회법 개정에서 비롯된 당·청 갈등 수습에 골몰하던 그에게 메르스 파동은 또 다른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잠시 소강 상태 당-청 갈등, 재연 시간문제

이 자체는 으름장이 분명했지만, 더 이상의 강수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의지는 확실했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운운은 단순한 힘겨루기 강수가 아니었다. ‘여의도’ 정치권과 정면 대치도 마다않겠다는 청와대의 경고였다. 물론 대통령 임기가 아직 2년 8개월 이상 남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탈당 사태 등이 있을 것으로 보는 전망은 거의 없다. 대통령의 탈당은 정치지형의 근본적 변화, 특히 여권의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피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유승민 원내대표가 최근 몸을 다소 낮추면서 사태는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탈당’이 대치 국면에서 잠시 지나가는 말로 거론됐다지만 일단 거론됐다는 사실 자체는 의미심장하다. 당·청 긴장관계는 언제고 재연될 소지가 충분한 마당이고, 따라서 ‘탈당’이라는 단어는 재론될 소지가 다분하다. 말이란 게 처음 꺼내기 어렵지 다음부터는 스스럼없게 마련이다. 일단 길이 들면 아주 쉬워진다. 과거 정권들의 사례에 비춰 예외 없이 있어온 정권 후반기의 ‘대통령 탈당’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마디로 역대 정권보다 앞당겨질 소지가 농후하다는 말이다.

이런 마당에 메르스 확산 파동이 터졌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태 발생과 악화·확산 등 전 과정에서 정부 책임·무능이 부각되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후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며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등 호들갑을 떤 정부로서는 아무런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세월호 때와 달리 모든 국민을 ‘직접 당사자’로 하는 대목도 정부를 더 곤혹스럽게 만드는 대목이다. 더욱이 책임 논쟁에서 대통령을 지목하는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부인키 어렵다. 국민 상당수는 정부 처사에 대해 아예 분노를 넘어 절망할 정도다. 다행히 메르스 사태가 3개월 이내에 대충 진정된다 하더라도 그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할 전망이다. 가뜩이나 우려되던 경제 침체의 심화를 비롯해 모든 국정 구석구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란 전망이다.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내년 총선을 거치면 상상 이상으로 쇠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권보다 1년 이상 앞당겨 찾아들지 모르는 권력 누수 상황은 레임덕이라는 단어조차 무색하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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