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의장,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는 바람직하지 않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5.06.2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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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국회의장 단독 인터뷰…“위헌 요소 없다는 게 다수 의견”

대한민국 헌정 사상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의 정면충돌이 그것이다. 1960년 잠깐 의원내각제를 경험했던 것을 제외하면, 강력한 대통령제 헌법 아래서 청와대의 권위에 도전할 정치 세력은 없었다. 국회는 그야말로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형식만 빌렸을 뿐, 국회의장은 사실상 대통령이 뽑았다. 이전까지의 우리 국회의 모습이다. 지난해 5월 '비박' 정의화 의장이 '친박' 후보를 누르고 국회의장에 당선되면서 변화는 예고됐다.

5월29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정부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 권한을 갖는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하자 청와대는 격하게 반발했다. “행정입법 내용을 입법부가 변경하게 한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였다.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가열됐다. 그러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냈다. ‘정부의 시행령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문구를 ‘요청할 수 있다’로 완화시킨 것이다. 여야 합의도 이끌어냈다. 하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이 법안은 다시 국회로 넘어오게 된다. 재의에 붙여서 과반수 이상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최종 확정된다. 거부권을 행사한 청와대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박근혜 대통령은 급격하게 레임덕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반대로 재의에서 통과가 안 되면, 여야 합의를 이끌어냈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원내대표 사퇴는 물론, 자칫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여야 합의안을 받아들이더라도 권력의 무게 추는 청와대에서 여의도로 급격히 기울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했음에도 국회가 곧바로 재의에 부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며 시간 벌기에 나서면 양측은 잠깐의 휴전 상태에 들어갈 전망이다. 이 싸움은 내년 총선, 박 대통령의 레임덕, 2017년 대선 등 권력 지도에 큰 변화를 몰고 올 휘발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국회의 정면충돌로 정국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이는 정의화 국회의장이다. 그동안 국가 의전서열 2위라는 자리에 비해 존재감이 미미했던 역대 의장들에 비해 정 의장은 활발히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회를 대표하는 수장으로서 대통령을 상대로 날 선 말도 마다하지 않는다. “국회의 권위를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거부권 정국’의 향방이 어떻게 전개될지 키를 쥐고 있는 정의화 의장을 6월18일 국회의장실에서 만났다. 정 의장의 입에 국민의 시선이 쏠려 있는 탓에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이어졌다.    

ⓒ 시사저널 이종현

         

메르스 사태로 대한민국 전체가 앓고 있다. 국민은 정부와 일부 병원들의 행태에 대해 분노와 절망을 느끼고 있다. 

메르스에 대해서는 3년 전인 2012년 세미나에서 이미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매뉴얼은 그림만 그려놓은 채 서랍 속에 있었고, 질병관리센터는 제대로 대처를 못했다. 공공의료기관들이 이에 대처하는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던 게 큰 문제다. 이런 질병일수록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非)공공의료기관에서 의심 환자를 보건소와 시립병원 등으로 보내서 바로 검사하고 격리 조치해서 치료하는 체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2년 전 크게 논란이 됐던 진주의료원 폐업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는지 다 같이 반성해야 한다. 당시에도 내가 줄기차게 공공의료기관의 중요성에 대해 주장했지만, 주변에선 그냥 병원 하나 없어지나 보다 하더라. 공공의료기관은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공공의료기관은 그 역할을 정확히 알고 이런 국가적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 물론 정부도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최근 지역 언론에서 부산에 위치한 정 의장 소유의 병원이 메르스 환자 진료를 거부했다는 보도를 해서 논란이 됐다. 어떻게 된 일인가.

정확히 말하면 ‘우리 봉생병원은 메르스 진단과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내걸었는데, 이를 마치 진료 자체를 거부한 것처럼 다소 자극적으로 보도한 듯하다. 지금 아들이 병원을 맡고 있는데, 확인해보니까 병원 건물 밖에 텐트 시설을 설치해놓고, 의심 환자가 와서 벨을 울리면 나가서 열을 재고 히스토리를 물어보고 의심스러운 게 있으면 보건소나 시립병원으로 보내는 시스템을 다 만들어놨더라. 아들이 언론과 인터뷰한 기사를 봤는데, ‘치료가 되지 않는다’고 표현한 부분에 대해서는 마치 진료를 거부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다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한다고 밝혔더라. 아들에게는 더욱 신중하게 잘해줄 것을 당부했다.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의장 중재안대로 여야 합의가 이뤄져서 청와대로 넘겨졌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수정 사항에 대해서도 여전히 “위헌 요소가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할 분위기로 가는 듯하다.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불가피하게 입법부와 행정부 간 다툼이 발생하기 때문에 (청와대가) 그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내 입장에서는 법대로 집행할 수밖에 없다. 나는 헌법정신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가장 중시해왔고, 국회의장으로서 이런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헌법 53조 4항에 보면, 정부가 재의를 요구해오면 국회는 재의에 부치게 되어 있다. 

처음 여야 합의로 통과될 때와는 달리 여당의 분위기가 바뀔 수도 있을 듯하다.

만약 여야 합의가 안 되어서 여당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오지 않으면 과반수가 안 되어 회의 성립 자체가 안 된다. 재의결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전체 과반수 이상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폐기되는 건 아니고 계속 남아 있으니까, 내가 필요로 하면 적절할 때에 또 재의에 부칠 수가 있다. 그런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국회의장으로서 내 입장은 정상적인 프로세스를 밟겠다는 것이다. 재의에 안 부쳐도 되는 것을 억지로 부치는 것도 아니고, 정부에서 재의가 오면 국회가 이를 재의에 부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이다. 

자칫 시간만 보내고 유야무야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있다.

물론 지금 여당 일각에선 재의에 부치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안다. 즉 본회의를 열어서 재의결하지 말자는, 소위 깔아뭉개자는 말인데, 헌법에 그렇게 안 되어 있다. 헌법에 부치게 되어 있으니까 국회의장으로서 난 (재의에) 부친다는 것이다. 그럼 부치는 것도 몇 달이고 후에 하자는 말이냐 하면, 그런 게 아니라 대강 2주 내 정도에 될 것으로 본다. 7월 이후 두 달간 국회가 안 열린다. 그렇게 되면 9월인데, 너무 늦으니까. 국회 회기가 7월7일까지니까, 야당이 (재의를) 요구하면 여야가 협의하도록 할 것이다. 만약 협의가 안 되면 내가 일방적으로 정해서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거기에 여당이 안 들어온다면 정족수 미달로 회의 자체가 불성립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학자들도 위헌 논란에 대해 의견이 갈리지만, 경실련이 공법학자 46명을 대상으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82.6%인 38명이 “위헌이 아니다”고 답했다는 결과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왜 청와대는 한사코 위헌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고 보는가.

청와대가 좀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보고 있다.

자칫 국회와 청와대가 정면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국회의장으로서 대통령과 맞서는 모양새가 상당히 부담이 될 수 있을 듯한데.

부담이라기보다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개정안에 대해) 위헌성이 없다고, 강제성이 없다고 한다. 또 설령 있다 하더라도 아주 무시할 정도로 작다고 한다. 또 충돌이 생기더라도 행정부와 입법부가 사안 하나하나에 따라 상임위에서 서로 논의를 해 결정하면 될 정도의 그런 미약한 수준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을 가지고 이렇게 국민들 앞에 마치 입법부와 행정부가 서로 맞서는 모양새를 보이는 게 옳은 것인가. 시기적으로도 지금 메르스로 인해 전 국민이 위축되고 불안한 속에 정부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청와대가 여당과 국회에 밀리는 듯 약하게 보이면 레임덕이 조기에 올까 우려해서 일부러 더 강경하게 나오는 것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보다는 좀 더 합리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보면,  ‘청정(淸靜)이 위천하정(爲天下正)’이란 문구가 있다. 맑고 고요하게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가장 올바른 정치는 맑고 고요한 정치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신경 안 쓸 수 있게 고요하게 하는 정치가 올바른 정치다.

역대 정부를 보면 국회의장이 사실상 대통령의 지명에 의해 선출되었고, 그 때문에 의장은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분위기였다. 혹시 이번 사안을 놓고 청와대와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있는가.

입법부가 과거와 같이 ‘통법부’ 소리를 듣거나 ‘거수기’ 소리를 듣는 것은 독재 시대의 낡은 관행이었다. 최소한 이 정의화 의장의 국회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다. 이번 경우에도 저쪽(청와대)과 서로 논의하거나 내가 먼저 제안을 하거나 그런 건 전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10월29일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청에 들어서며 정의화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통화한 내용을 소개한 게 오늘 아침 신문에 보도됐던데.

내가 이 실장과 전화한 것은, 이 기회에 시사저널을 통해 자세히 밝히겠다. 엊그제(16일) 내가 이만섭 전 의장과 점심 식사를 같이했다. 이 전 의장께서 이 실장을 잘 아신다며, 내게 (이 실장에게) 전화를 넣어달라고 했다. 이 전 의장은 스마트폰을 안 갖고 계시니까. 이 전 의장이 “이 실장에게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는 당부를 해야겠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내가 내 전화로 전화를 했는데 이 실장이 바로 안 받더라. 그 후에 이 실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때 내가 이 전 의장의 말씀을 대신 전했다. 그런데 그때 (이 실장과) 통화하면서 청와대의 분위기가 상당히 완강한 걸 느꼈다. 통화는 그렇게 이뤄진 것이지, 내가 일부러 전화한 건 아니었다. 

그때 이 실장의 정확한 말이 뭐였나. 

정확한 워딩이 아니기 때문에 옮기기는 어렵다. 다만 말하는 표현이나 어감이··· 청와대 전체 분위기가 그렇게 (강경한 느낌으로) 감지가 됐다.

지난해 말쯤으로 아는데, 의장께서 국무총리·부총리 등과 대화하면서 박 대통령의 소통 부재를 지적한 적이 있다. 그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고 보는가.

내가 처음 의장이 된 후, 대통령과 서로 도와서 나라를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자고 하는 의욕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대통령과 바로 통화할 수 있는 창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해서 번호를 받았다. 전화를 두 번 정도 했는데 안 받았다. 리콜도 없었다. 내가 다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그러면 대통령을 늘 수행하는 사람 번호라도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서 한 번 (대통령과) 통화가 된 적이 있다.

그게 지난해 12월 이후인가.

그 이후다. 두 달 전인가. 5·18 행사 때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와 남북 국회회담 문제에 대해 대통령의 협조를 구하고자 만나자 했는데, 시간이 안 났는지 전화가 없더라.

과거 별 존재감이 없던 국회의장에 비해 정 의장의 행보는 활발한 듯하다. 정치적이란 평가도 받는 것 같다. 

국회의장의 권위가 바로 서야 국회의 권위가 선다. 의장의 권위가 무너지면 국회의 권위가 무너진다. 의장은 늘 그것을 인식하고 권위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처신을 잘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국회의장의 권한이 상당히 약화되어 있다. 이제 여야 원내대표 합의 없이는 (의장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단독 국회, 반쪽 국회는 절대 안 된다는 게 내 소신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의장의 권한인 ‘중재권’을 써서 여야 합의를 원만하게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원래 국회 선진화법 반대론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막상 의장이 된 후 중재 능력을 보이면서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은 ‘국회 폭력 방지법’ 취지로 가려던 게 결과적으로 이상한 괴물로 되어 나타났다. 그러나 어쨌든 법이 존재하는 이상 그 테두리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에게는 자칫 선진화법을 반대하는 게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의 원칙은 소수를 인정하면서 다수결로 가는 것이다. 무조건 표결만 하자는 게 아니라,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거기서도 좋은 게 있으면 다수의 의견에 반영해서 가자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선진화법은 전체 60% 이상의 찬성만 있으면 무조건 다 할 수 있는 초다수결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올바른 대의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 

지난해 취임 이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남북 국회회담에 강한 의욕을 보였는데, 아직은 별다른 진전이 없는 듯하다.

여전히 희망적으로 본다. 북한에서 보기를, 남한의 정치인 중에 그래도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이 정의화라는 말을, 북을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직접 들었다. 7월17일 제헌절 경축사를 통해 정식으로 남북 국회회담을 위한 수장회담을 북측에 제안할 생각이다. 

정부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이는 정부가 하라 마라 할 사안은 아니다. 문제는 북한이다. 북에서 만나겠다고 하면 정부도 도와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지금 시기가 대단히 중요한 게 19대 국회도 이제 1년 남았고, 정부도 올해가 지나면 내년 4월이 총선이고, 그게 지나면 대선 국면으로 접어든다. 임기 말이 되면 남북 대화를 추진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막혀 있는 남북 대화의 물꼬를 내가 트려고 한다. 국회회담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월 “대권 꿈이 있느냐”는 한 대학생의 질문에 독일 메르켈 총리를 언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통일 독일처럼 통일 한국의 대통령을 꿈꾼다는 뜻인가. 

(웃음) 이완구 전 총리가 원내대표 시절에 어디서 들었는지 내 방에 가끔 올 때마다 번번이 “통일 대통령 하셔야 한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다. “내 나이가 얼만데, 언제 통일이 되나.”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뜻에서 통일 대통령을 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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