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공포로 ‘병 키우는 환자’ 늘고 있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6.2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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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병원 현장에선…의료진 격리 잇따라 의료대란 우려

“구급출동! 구급출동! ○○초등학교 정문 앞 호흡곤란 환자 발생!” 소방서 출동대기실에 울리는 출동명령 방송. 구급대원들이 재빠르게 구급차에 몸을 싣는다. 119 구급대의 골든타임은 단 5분. 곡예에 가까운 운전이 시작된다. 현장에 도착해 신속히 환자를 싣고 곧바로 응급실로 향한다. 가장 가까운 병원 응급실을 찾았으나 입구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중환자 병실이 없다며 거절당한 것이다. 근처 다른 병원 응급실은 메르스로 인해 폐쇄됐다. 다시 구급차를 몰고 다른 병원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이미 오랜 시간이 지체됐고 환자 상태가 악화됐다. 결국 구급대원의 골든타임 5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말았다.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대규모 의료 공백 사태가 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위 사례는 가상 시나리오지만, 취재 결과 이미 구급 현장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조만간 최악의 사태가 현실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현재 대형 병원들은 외래 환자가 줄어 적막감마저 도는 분위기다. 그러나 의료진은 이러한 적막감이 마치 ‘폭풍전야’와 같다고 토로한다. 시사저널은 119 대원들과 대학병원 의료진 및 전문가들로부터 상황이 계속 악화될 경우 심각한 의료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메르스 사태가 길어지면서 의료진들 건강도 우려되고 있다. ⓒ 연합뉴스

“메르스 안 옮게 개인 병원으로 가세요”

대전 지역의 메이저급 병원은 총 5곳이다. 그중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건양대병원과 을지대병원 응급실이 폐쇄됐다. 큰 병원만 따져 단순히 계산하면 40%가 문을 닫은 것이다. 응급실 폐쇄의 불편함을 직접 느끼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응급실을 오가는 119 구급대원들이다. 대전서부소방서 구급팀에서 근무하며 환자를 실어 나르는 구급대원 A씨는 메르스 사태 전과 후 달라진 상황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우선 병원 입구에서부터 과거에는 없던 불필요한 마찰이 잦아졌다. 메르스 감염자가 나온 병원을 들렀다고 하면 환자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일단 환자가 고열이 있다고 하면 응급실 안으로 들이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중환자실이 없다”는 이유로 환자를 받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응급환자가 병원 가기를 거부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A씨는 “한 응급환자는 병원으로 이송 중 ‘그곳에 가면 메르스 걸리는 것 아니냐’며 다른 개인병원으로 가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환자들은 응급실에 들어가기 위해 열을 체크하고 메르스 감염 여부를 진단받는다. 메르스 환자로 의심될 경우 무턱대고 응급실로 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구급대와 의료진  사이에 불필요한 신경전이 오가기도 한다. A씨는 “이송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하니까 약간의 승강이를 벌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병원 측도 저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니 답답한 노릇 아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경기도 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의사는 “가장 우려되는 경우는 상태가 위독하면서 동시에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난감한 상황이다. 일단 안에 들여보내기 힘든 환자는 텐트에서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메르스 환자를 감별하느라 이곳저곳 전화까지 돌리다 보면 입구에서만 10분을 훌쩍 넘길 때도 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119의 골든타임은 5분이다.

서울 지역에서는 보라매병원을 비롯해 건국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원자력병원의 응급실이 폐쇄 조치된 바 있다. 관할을 명확히 따지는 경찰과 달리 119 구급대는 그 순간 상황에 따라 관할 지역을 벗어난 병원으로도 이송한다. 가까운 병원이 문을 닫으면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면 되지만, 그럴 경우 특정 병원의 응급실에 환자가 몰려 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명 ‘응급실 풍선 효과’다. 또 구급차가 관할 구역에서 벗어나 멀리 갈수록, 해당 관할 구역에 구급차 부재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이번에 폐쇄된 보라매병원의 경우 서울시의 몇 안 되는 ‘행려자(노숙인)’ 응급치료 전담 병원인데 이제는 관악구에서 청량리에 있는 병원까지 이송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행려자의 경우 다른 환자들의 감염 가능성 등을 고려해 특별 관리를 해야 한다.

메르스가 무서운 것은 증상이 지극히 평범한 ‘고열’ 및 ‘기침’이라는 점이다. 현재 소방서에는 일명 ‘우주복’으로 불리는 보호복이 지급돼 있다. 응급환자가 고열이 있다고 하면 대원들은 이 우주복을 입어야 하는데 이 또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래저래 응급환자와의 접촉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지역 소방서에 근무하는 구급대원 B씨는 “지금은 어떻게든 운영이 되고 있지만 만약 한꺼번에 부상자가 나오는 큰 사고가 터지거나 메르스 사태로 문 닫는 병원이 늘어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다룰 경우 구급대원은 방호복을 착용하고 사용 후 곧바로 폐기해야 한다. ⓒ 뉴시스

일부 병원 ‘과부하’ 이미 시작됐다

그렇다면 병원 상황은 어떨까. 엄청나게 많은 환자로 북적거릴 것이란 예상과 달리 조용하다. 심지어 적막감마저 든다. 병원이 메르스 발생의 주요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고 있어서다. 지금 대학병원은 물론, 개인병원까지 환자들이 좀처럼 방문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각 병원마다 건강검진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의료진은 이게 폭풍전야와 같은 상황이라고 우려한다. 병원을 찾지 않는 환자 중에는 평소 굳이 3차 병원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데 방문했던 환자들도 있다. 병원마다 거품이 빠진 측면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진료가 꼭 필요한 환자들까지 발길을 끊는 것이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30대 임신부 송 아무개씨는 예정돼 있던 정기검진을 미뤘다. 임신 상태에서의 정기 검진은 태아는 물론 엄마의 건강 상태까지 체크하기 위한 필수 절차지만, 아이를 품고 있는 데다 이미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해서 병원에 가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병원은커녕 생필품을 사기 위한 외출도 자제하고 있다. 송씨는 삼성서울병원에서 확진 환자가 발생한 날 해당 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았다.

송씨의 어머니 역시 병원 찾기를 꺼리기는 마찬가지다. 지병 치료를 위해 나흘에 한 번씩 병원에 가야 하는데 메르스 사태 이후 치료 주기가 일주일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송씨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임신부가 지금 병원을 찾지 않고 있다고 한다. 건강이 우려되는 건 사실이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함부로 병원에 갈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의료진은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다. 병을 키워서 문제가 심각해진 환자들이 병원으로 몰려올 경우 그야말로 손을 쓰기 힘든 ‘의료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병원을 찾지 않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의료 대란의 전조 증상이라는 것이다. 

국민안심병원으로 선정된 서울 지역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조 아무개씨는 “정기적으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도 병원을 찾기 꺼려하는데 이런 사태가 계속되면 향후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고려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최재욱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지금 병원에 와야 할 환자들이 오지 않는 것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일부 병원을 제외하고는 현재 총력 체제로 안정적인 정상 진료를 하고 있기 때문에 병원을 와야 하는 분들은 꼭 찾아와 진료를 받으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또 다른 문제는 각 병원마다 의료진이 격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고열 등 메르스 의심 증상이 있는 인턴·전공의·간호사 등은 즉각 자가 격리 조치되고 있는데 이는 안심병원으로 지정된 곳들도 예외가 아니다. 격리 인원은 시시각각 변해 많은 곳은 수십 명이 넘는다. 경희대의료원의 경우 이미 1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의 메르스 감염은 일반인보다 더욱 심각하기 때문에 격리는 당연한 조치지만, 문제는 이로 인해 벌써부터 인력난을 겪는 곳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송명제 전공의협의회장은 “의료진이 격리된 한 병원은 나머지 인원의 업무가 1.5배 늘어나 거의 잠을 못 자는 상태로 진료를 하고 있다. 이런 사태가 장기화되고 다른 곳까지 번질 경우 환자들의 건강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6월8일 서울 일원동에 있는 삼성서울병원의 한산한 모습. ⓒ 시사저널 임준선

D등급 장비 지급 등 정부 대처 안일

현재 국내 전공의들의 주당 근무 시간은 평소에도 100~140시간(하루 14~20시간)으로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수준이다. 의료진이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여 격리되는 경우 남은 의료진은 휴식 시간마저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다. 집중을 요하는 의료 업무 특성을 감안할 때 메르스로 의료진 격리 및 병원 폐쇄가 계속 늘어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환자들이 그야말로 의사들의 사명감 하나에만 몸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고열이 있어도 그냥 진료를 해왔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태다.

상황이 급박한데도 정부가 안일하게 대처해 의료진 격리 및 감염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메르스 의료진에 세계보건기구(WHO)의 방호 장비 기준 중 최하위인 D등급 장비를 지급했다. 실제로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36번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했던 대전 건양대병원 수간호사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D등급의 감염 가능성은 이미 보건복지부도 인정했던 사안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22일 에볼라 대응 의료기관 내 의료진 보호를 위해 개인 보호구를 D+등급에서 C등급으로 격상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사태 때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그때와 달리 “WHO 및 미국 CDC 기준과 동일 수준”이라며 “D등급도 문제없다”는 식의 입장을 내놓았다. “아직도 메르스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뭇매를 맞고 있는 이유다. 

 

 
6월18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음압격리병동. ⓒ 뉴시스

“음압병실 부족 예전부터 문제됐다”

의료 대란 우려를 낳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음압병실과 관련한 문제다. 음압병실은 감염 방지를 위해 공기가 항상 문 외부에서 병실 쪽으로만 유입되도록 만든 곳으로 메르스 환자는 이곳에 입원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17개 병원 105개 병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중엔 여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도록 돼 있는 방도 있어 실제론 50개가 채 안 된다. 이에 따른 음압병실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실제로 충북 지역에선 이미 음압병실 11개가 모두 만실 상태라 도내에 메르스 의심 환자가 발생할 경우 다른 지역으로 보내야 한다.

민간 병원으로 확대해서 보면 음압병실 숫자는 늘어나지만, 의료수가 문제 등으로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곳에 메르스 환자들을 강제 입원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재욱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신종 전염병이 돌 경우 음압병실 부족 문제가 생길 것이란 점은 예전부터 의학계에서 지적해온 사안이다. 비용 대비 효과를 감안해서라도 지금보다 많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 자명한데 정부 예산 우선순위에서 늘 밀려왔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는 “삼성서울병원에 음압병실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뒷북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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