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이 몸이면 만화는 심장이다”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5.06.2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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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 셰블스키 마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담당 수석부사장 인터뷰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엑스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 마블의 ‘슈퍼히어로’는 10년 전만 해도 ‘부도 상품’이었다. 이들이 전 세계 슈퍼히어로로 부상한 것은 1990년대 할리우드를 만나면서다. 돈이 있어도 마땅한 투자처가 없던 할리우드 ‘큰손’들에게 마블의 캐릭터는 ‘황금 노다지’였다. 마블 캐릭터의 힘은 강력하다. 메릴린치가 마블의 캐릭터를 영화화할 권리를 넘겨받는 대신 마블이 제작비의 이자를 부담하지 못하면 대신 물어준다는 ‘불공정 계약’까지 체결할 정도였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은 전작보다 못하다는 혹평에도 개봉 25일 만에 1000만명을 돌파했다. 게임회사에 다니는 김동현씨(36)는 이번에 나온 <어벤져스2>를 세 번 이상 보고, 제일 좋아하는 <아이언맨>을 잠잘 시간에도 보고, ‘아이언맨’ 슈트를 3D 프린터로 직접 제작해 소장하고 있다. 국내 극장가 독점 논란이 일었던 <어벤져스2>는 이번 주를 끝으로 주요 극장에서 간판을 내린다. 어벤져스 신드롬이 끝나가는 현 시점이야말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둘리’와 ‘뽀통령’밖에 내세울 게 없는 한국의 캐릭터산업은 마블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마블 엔터테인먼트에서 캐릭터 개발을 총괄하는 CB 셰블스키 수석부사장(44·사진)을 이메일로 만났다.

 

CB 셰블스키, 고영훈 작가와 협업해 탄생한 한국형 캐릭터 ‘화이트 폭스’. ⓒ 마블엔터테인먼트 제공

마블 엔터테인먼트에서 맡은 자신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공식 직함은 ‘국제 비즈니스 개발 및 브랜드 매니지먼트 부사장’이다. 쉽게 말하면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마블 글로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블 브랜드와 마블이 보유한 8000개가 넘는 캐릭터들을 적절하게 홍보한다. 마블이 전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다양하게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이미 국가를 불문하고 전 세계인이 마블 영화를 다 알고 있다. 영화 외에도 마블의 비디오 게임, 애니메이션, 코믹스 등을 함께 알리는 일도 내 임무다.

마블이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각 나라에 맞춘 현지화된 캐릭터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들었다.

맞다. 마블은 현재 각국의 현지 파트너와 작가(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해 다른 나라 소비자에게 문화적으로 더 연관된 콘텐츠를 개발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다음(DAUM) 웹툰 ‘어벤져스: 일렉트릭 레인’을 통해 처음 소개된 한국형 여성 히어로 캐릭터인 ‘화이트 폭스’가 그 예다. ‘어벤져스: 일렉트릭 레인’ 웹툰은 마블의 첫 현지화 콘텐츠 개발 프로젝트였는데 꽤 성공적이었다. 기쁘다. 일본과 중국에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마블의 첫 일본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디스크 전사 어벤져스>의 결과가 만족스럽다. 이 작품은 다른 나라 이전에 일본에서 제작돼 방영됐다.

한국에서 고영훈 작가와의 협업은 어땠나.

고영훈 작가는 한국적인 특성과 캐릭터의 연속성을 충실히 살리면서 훌륭하게 어벤져스의 모험을 그려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와 다음(DAUM)이 마블에 웹툰이라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우리는 그들과 창조적인 과정을 함께 경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화이트 폭스’는 올 9월에 ‘주요 마블 세계관(main Marvel Universe)’에 추가될 예정이다. 또 마블은 ‘어벤져스: 일렉트릭 레인’ 외에도 가까운 시일 내에 웹툰 프로젝트를 추가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큰 성공을 거뒀지만 전편과 기본 구성이 비슷하다는 비판이 있다.

동의할 수 없다. 마블 캐릭터들이 같은 ‘마블 세계관(Marvel Universe)’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마블의 많은 캐릭터 간 유일한 공통점은 마블 영화들이 마블 코믹스(만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뛰어난 캐릭터와 훌륭한 크리에이터(작가)가 만나야 위대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가 마블의 철학이다. 마블은 이 철학을 바탕으로 만화, 영화, 비디오 게임 등 수많은 콘텐츠를 생산한다. 마블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슈퍼히어로물이지만, 작품들은 모두 다른 영화 장르에 속한다.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는 시대극이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스파이 스릴러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공상과학 영화다. 마블 캐릭터들이 모든 영역과 분류를 뛰어넘는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

마블의 캐릭터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마블과 팬들이 깊이 연결(relatability)돼 있다는 게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마블 캐릭터들은 먼저 인간이고, 이후에 영웅이 된다. 이들은 슈퍼히어로의 옷을 입기 전에 이미 현실에서 영웅이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놓인 실제 사람이다. 우리는 캐릭터들이 영웅 의상을 입었을 때의 정체성보다 캐릭터 자체의 자아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스파이더맨’이 되는 사람이 피터 파커고, ‘아이언맨’은 토니 스타크, ‘캡틴 아메리카’는 스티브 로저스인 것처럼. 캐릭터 자체가 영웅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마블 캐릭터가 입는 영웅 의상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마블이 인기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다.

마블 캐릭터가 한국에서 유독 인기를 끄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초인적인 힘이 있든 없든 간에,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한국에서 마블 캐릭터가 인기 있는 이유라고 본다. 마블 캐릭터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즉 희망을 주는 존재다. 이러한 특징이 한국에서 특별한 감정선을 건드린 것 같다.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진심으로 믿으면, 세상은 그들을 위해 좀 더 큰 것을 준비해놓고 있을 것이라고, 한국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블의 성공은 곧 마블 코믹스 캐릭터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젊고 유능한 만화(웹툰)작가들이 포털이 독점하는 배급 체제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블 스튜디오가 설립된 이후, 우리는 줄곧 다양한 소스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멀티 소스-멀티 유즈(multi-source multi-use)’ 회사였다. 이제 마블은 자체적으로 애니메이션과 비디오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 그 핵심에 코믹스(comics·만화)가 있다. 캐릭터와 콘텐츠 그리고 많은 스토리는 결국 만화 원작으로 수렴된다. 마블이 사람의 ‘몸’이라면, 만화 제작 부서(코믹스 부서)는 우리의 심장이다. 마블 코믹스는 팔다리에 피를 보내 몸을 움직이고, 성장시키는 심장이다. 피는 잉크를 의미한다. 마블 크리에이터, 작가, 아티스트들이 거의 매달 나오는 75권의 만화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용할 잉크 말이다. 마블의 재무 모델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수십 년간 출판해온 마블 신화를 위해 일하고 기여한 인재들에게 ‘존경(respect)’ 말고 다르게 표현할 말이 없다. 마블에서 크리에이터는 고용자가 저작권을 보유하는 시스템(work for hire) 아래서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다. 마블은 ‘크리에이터 프렌들리(creator friendly)’ 회사다. 우리는 최고의 캐릭터를 개발하고 최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최고의 능력을 가진 인재를 고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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