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가 자꾸 떠올라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6.2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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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그룹 재건 ‘첩첩산중’…아시아나항공·금호산업 ‘꼼수 흑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올해를 ‘그룹 재건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그는 올 초 신년사에서 “2015년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제2 창업을 완성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원년”이라며 “자율협약과 워크아웃이라는 5년간의 긴 터널을 털어내고 새 시작을 알리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자”고 주문했다.

지난 5월 그룹의 모태 회사인 금호고속을 3년 만에 되찾으면서 첫 단추를 끼웠다. 고 박인천 창업주는 1948년 광주여객자동차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바로 금호고속의 탯줄이다. 금호그룹은 이 회사를 기반으로 타이어(금호타이어), 석유화학(금호석유화학), 항공(아시아나항공), 건설(금호산업) 등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2005년 박삼구 회장이 그룹을 맡으면서 정점에 달했다. 박 회장은 2006년과 2008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달아 집어삼키면서 금호그룹을 재계 순위 8위까지 끌어올렸다.

금호아시아나 본사의 모습 ⓒ 최준필

모태 기업 금호고속 재인수… 금호산업은?

무리한 M&A(인수·합병)는 부메랑이 돼 박 회장을 덮쳤다. 빚을 내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한 탓에 그룹의 자금난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금호그룹은 ‘울며 겨자 먹기’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되팔아야 했다. 박 회장은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2009년 말에는 핵심 계열사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친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도 등을 졌다. 하지만 박 회장은 그룹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는 사재 출연을 조건으로 금호타이어 경영권과 금호산업의 우선매수청구권을 인정받았다. 2010년에는 사재 3300억원을 들여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그해 말 박 회장은 경영 일선에 복귀했지만 그룹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박 회장은 2년 후 되사는 조건으로 그룹의 모태 회사인 금호고속까지 IBK펀드에 매각했다.

금호고속을 되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재인수 가격을 놓고 IBK펀드와 진통을 겪었다. IBK펀드는 4500억원을 요구했고, 금호그룹은 “금액이 과하다”고 맞섰다. 금호고속의 대표이사 자리를 놓고 양측이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가격이 4150억원으로 결정 나면서 양측의 지루한 싸움은 끝이 났다.

박 회장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금호고속 인수로 그룹 재건을 위한 주춧돌은 놓았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회사는 금호산업이다. 금호산업은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30.1%를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나는 다시 에어부산·금호터미널 등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금호산업을 인수하지 못하면 그룹 재건은 요원하다.

현재까지의 상황은 박 회장에게 그리 나쁘지 않다. 호반건설이 금호산업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채권단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6007억원의 가격을 써내면서 입찰이 무산됐다. 채권단은 결국 박 회장과 직접 협상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미 한 차례 입찰이 유찰된 만큼 채권단도 무리한 가격을 요구하지는 못할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지난해 워크아웃을 졸업했고, 아시아나항공 또한 채권단 자율협약을 마친 상태여서 기대감이 더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현재 채권단이 보유한 금호타이어 지분 42.1%를 인수해야 그룹 재건이 마무리되지만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올 초 신년사에서 ‘그룹 재건의 원년’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는 최근 금호고속 인수를 확정 짓고 기자들과 만나 “준비가 잘되고 있다. 도와주겠다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5월7일 열린 금호산업 채권금융기관 협의회 실무책임자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룹 재건 선언했지만 내부 문제 산적

하지만 그룹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녹록하지만은 않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은 5조5527억원의 매출과 42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6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당기순이익은 95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자본 잠식 상태에 돌입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당기순이익이 633억원으로 별도 재무제표와 1580억원 가까운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당기순이익이 크게 증가하면서 자본 잠식 역시 연결재무제표에서는 해소된 상태다. 기타수익, 그중에서도 ‘관계 기업 투자처분 이익’이 1328억원을 기록했기 때문에 발생한 착시 현상이다. 아시아나항공은 2014년 초 자회사인 금호터미널·아시아나IDT·아시아나애바카스·아시아나에어포트 등 4개 회사를 통해 금호리조트 주식 50%를 CJ대한통운으로부터 695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유상증자 등을 거쳐 지분을 51.2%로 늘리면서 금호리조트를 종속 기업에 포함시킨 후 지분 가치를 재평가하는 방식으로 당기순이익이 크게 증가한 것처럼 서류를 만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아시아나항공 측은 “현행 회계 기준대로 처리했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금호리조트의 주식은 외부 기관에서 평가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가치를 부풀릴 수 없는 구조”라며 “회계 기준에 따라 적법하게 처리한 만큼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 K-IFRS(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에 따르면 비상장 회사의 가치 평가는 취득 원가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금 유입 없이 장부상의 이익만으로 당기손익 결과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도 2013년 발표한 ‘동일 지배 기업 간 합병 회계처리 실태 분석’ 자료에서 합병 대상 회사의 자산과 부채를 인식하는 방법에 따라 당기순이익이 적자에서 흑자로 바뀔 수 있는 점에 우려를 표시했다. 금감원은 “지배·종속 회사는 이미 경제적으로 하나의 실체였고 합병을 통해 법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에 불과하다”며 “경제적으로 변동이 없다는 점에서 합병 대상 회사의 자산과 부채를 장부가액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BK펀드에 매각됐다가 재인수된 금호리조트가 동일 지배 기업 합병인지 일반 합병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금호리조트의 자산 재평가를 통해 적자 기업에서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이다. 모회사인 금호산업 역시 200억원의 연결 이익이 반영돼 워크아웃 졸업 요건을 충족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금호산업 매각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데도 이런 점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호타이어의 상황 역시 만만치 않다.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2009년 12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5년 만이다. 금호타이어는 연간 400만개의 타이어를 생산할 수 있는 미국 조지아 주 공장 건립에 나섰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2009년 워크아웃으로 공장 건립이 중단된 지 6년여 만이다. 내년에 공장이 완공되면 매출이 크게 늘어나는 등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6월 조지아 공장 건립을 채권단으로부터 승인받았다. 워크아웃을 졸업하기 전이었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현지 공장 보유 기업에 납품 우선권을 부여하기로 했다’는 산업은행의 보고서가 채권단을 움직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대차가 “금호타이어에 납품 우선권을 주기로 약정한 사실이 없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었다. 김영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당시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 졸업을 위한 실사도 시작하지 않았다”며 “금호타이어 미국 조지아 공장 건설 과정에서 채권단이 검증도 없이 4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고 꼬집었다.

 

금호타이어 미국 공장 정상 가동 의문

지난해 말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졸업하면서 변수가 발생했다. 산업은행·우리은행 등 채권단이 투자를 철회하거나 투자 규모를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1분기 금호타이어의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에 비해 각각 12.4%, 28.1%, 15.3% 감소했다. 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가 지난해 워크아웃 졸업을 앞두고 이 회사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상향 조정했지만, 자체 자금만으로 공장을 완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부채가 3조5000억원에 달해 추가 투자에 애를 먹고 있다”며 “일단 자체 자금으로 공사를 시작했지만 기한 내에 끝마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산업은행 측은 “투자 철회가 아니다”고 말한다. 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채권단 회의를 통해 미국 공장 착공을 승인한 것은 맞지만, 투자 승인은 하지 않았다. 일단 실사를 해보고 투자금은 나중에 결정하기로 했다”며 “금호타이어 자체 자금으로 공장 건립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호타이어 관계자도 “현재 1000억원을 조달해 미국 공장을 순조롭게 건립 중이다. 나머지 3000억원에 대한 조달 방안도 강구 중인 만큼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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