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의 작품 보노라면 가슴 저미는 애절한 슬픔
  • 윤진섭│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명예교수 ()
  • 승인 2015.06.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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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6월28일까지 <마크 로스코>전

마크 로스코(Mark Rothko·1903~70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러시아 태생 비운의 작가다. 죽음의 원인을 놓고 볼 때, 자살이라는 점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후기 인상파 작가인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90년)를 연상시킨다. 차이점이 있다면 전자는 생전에 명예와 부, 거기에 따른 호사를 누린 반면 후자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예술혼의 관점에서는 다 같이 깊은 감동을 준다.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작품을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의 반열에 든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가치가 혼란한 시대라 하더라도 예술 작품의 진가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시간은 진짜와 가짜를 거르는 체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을 알리기 위해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작품이 좋지 않으면 언젠가는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당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와 마크 로스코, 프란시스 베이컨 등 거장의 경우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의 삶과 예술은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위험천만한 생각을 지닌 오늘날의 많은 작가는 이들이 남긴 정신적 유산을 외면하고 실용주의 노선의 곡예를 즐기고 있어 적이 염려스럽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마크 로스코의 본명은 마르쿠스 로트코비치다. 1903년 러시아 드빈스크에서 아버지 야코프 로트코비치와 어머니 안나 골딘 사이에서 네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10년에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정착했다. 두뇌가 명석했던 그는 1921년 명문 예일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영어, 프랑스어, 유럽 역사, 수학, 물리, 생물, 경제, 일반심리학 등을 배웠지만 특별히 미술을 공부한 적은 없었다. 대학에서 장학금이 취소된 사건은 그를 예술의 세계로 이끈 계기가 되었다. 장학금이 끊기자 그는 예일 대학을 그만두고 아트 스튜던츠 리그(ASL)로 전학해 해부학과 연극에 몰입하게 된다. 훗날 로스코는 “내가 최초로 색채나 구성의 세계와 만날 수 있었던 곳은 바로 그 극단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는데, 이때의 경험은 그를 색채 화가로 이끄는 토대가 됐다.

마크 로스코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막스 웨버(Max Weber, 1881~1961년)였다. 마크 로스코와 같은 러시아 태생인 그는 10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 뉴욕의 플래트 인스티튜트에서 아서 도브에게 배운 화가다. 파리 유학 시절에는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수학하고 마티스를 스승으로 섬긴 이력이 있다. 한때 로스코는 웨버의 영향으로 표현주의 양식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마크 로스코가 추상표현주의 작가로서 미국의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한 장의 사진으로 증명이 된다. 바넷 뉴먼, 잭슨 폴록, 클리포드 스틸, 로버트 마더웰, 윌렘 드 쿠닝, 아돌프 고틀리브, 애드 라인하르트 등 미국 현대미술사의 중심축인 작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라이프’ 잡지에 실렸다. 열여덟 명의 미국 화가들은 1950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현대미술 경쟁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에 대해 보수적인 관점에서 판정을 내리자 이에 항의를 표시했는데, 로스코도 여기에 동참한 것이다. 이들의 면면이 훗날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미술사에 남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크 로스코 작품의 본질을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하루는 한 방문객이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 방문객이 작품들을 다 둘러보자 로스코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내 작품에서 무엇을 느꼈는지요?” 그러자 방문객은 “슬프군요”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 로스코는 “당신이야말로 내 작품의 진정한 감상자입니다”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로스코의 작품을 처음 감상하는 대다수 대중에게 그의 작품은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커다란 화면을 넓게 구획한 두서너 개의 면들과 단순한 색채는 추상 회화의 문법과 관례에 익숙지 못한 감상자들에게는 난해함 그 자체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고 있노라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서서히 일어나는, 뭔가 형용할 수 없는 숭고한 감정과 함께 가슴을 저미는 애절한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난해한 현대미술에 대한 감상이 굳이 상세한 이론의 도움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예증하는 사례다. 예술에서 개념의 문제를 다룬 개념미술이 등장한 이후 대다수 대중에게 현대미술은 난해한 것으로 인식됐다. 로스코의 작품 세계는 추상 회화도 이론이 아닌 가슴만으로 감상할 수 있음을 입증한 희귀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동양 미학과 동질감 느끼는 희귀 사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크 로스코>전은 모처럼 고품격 미국 추상 회화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미국 워싱턴 소재 내셔널갤러리 소장품 가운데 50여 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초기 작품에서부터 말년에 이르는 작품들로 이뤄져 로스코 회화의 대강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특히 로스코 채플에 설치된 흑색 단색화 작품들은 때마침 일고 있는 한국의 단색화 붐과 연관돼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로스코의 후기 작품, 그중에서도 특히 흑색의 단색화는 동양 미학의 입장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희귀한 사례다. 명상을 요체로 하는 그의 작품들은 선(禪)이 지향하는 세계와 일맥상통한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정을 되찾도록 유도하는 로스코의 흑색 단색화는 얼핏 복잡해 보이는 삼라만상이 검정이라는 한 가지 색으로 귀일할 수 있음을 대변해준다. 이는 다시 말해서 다(多)가 일(一)로 환원되고 다시 일(一)이 다(多)로 확산되는, 예컨대 주역(周易)에서 이야기하는 우주의 운행 법칙과도 상통하는 것으로 로스코 예술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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