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서초동발 ‘쓰나미’ 몰려온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7.0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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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정 2라운드 돌입…신세계·효성·우리은행 등 바짝 긴장

최근 검찰 직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다. 검찰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내외부의 비판이 끊이지 않는 데다,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수사마저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수사로 말한다고 하는데, 내세울 만한 성과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게다가 최근 이뤄진 특수부 담당 수사의 경우 청와대와의 조율을 거쳐 이뤄진 사실상 기획수사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이 입은 내상은 크다. 검찰은 명예회복을 위해 신임 법무부장관이 임명된 후 다시 한 번 대대적 사정 수사에 들어간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 정권에 대한 사정보다는 기업 비리 및 야당 정치인에 수사의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있어 다시 한 번 정국에 풍랑이 일 전망이다.

전 정권 겨눴던 포스코 수사 ‘흐지부지’

외부에서 보는 실패한 수사의 대표적 사례는 경남기업과 포스코 수사다. 검찰의 ‘주포’라고 할 수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2부가 수사를 맡았지만, 시작할 때 세웠던 로드맵대로 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경남기업 수사의 경우 원래는 자원외교와 관련해 이명박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겠다는 의도로 시작됐다. 먼저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광물자원공사, 두 에너지 공기업을 도마에 올렸다. 포스코 수사는 ‘국민 기업’이나 다름없는 포스코가 이명박 정권 실세들에 의해 휘둘렸던 과정들을 살펴보겠다는 취지였다.

ⓒ 연합뉴스

3월 초에 시작된 두 수사는 ‘산’으로 가고 있다. 자원외교 수사의 경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이라는 돌출 변수가 생기면서 동력을 잃었다. 성 전 회장 사망 이후 특수1부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토대로 금융감독원이 경남기업 워크아웃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로 방향을 틀었다. 금감원 윗선을 경유해 금융권 전반에 대한 수사로 확대한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첫 단추인 김진수 전 부원장보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이 역시 제동이 걸렸다.

검찰은 원래 수사 궤도에서 벗어나 한전산업개발이 양양철강의 희토류 개발을 위해 설립한 법인인 대한광물의 지분 투자와 관련한 사건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한광물에는 한국광물자원공사도 지분 투자를 했다. 이 사건을 통해 광물공사와 관련된 비리 의혹을 보겠다는 것이 검찰의 의도지만 사실상 ‘별건 수사’라는 것이 외부의 시각이다. 광물공사 관계자는 “희토류 개발은 정권의 자원개발 의지와는 관계없는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이런 부분까지 수사하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란 이야기와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할 예정으로 알려졌지만, 이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강 사장의 경우 기관장 평가와 사장 연임을 목적으로 캐나다 자원개발업체를 무리하게 인수해 1조3000억원을 낭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데, 공기업이 독단적으로 대형 투자를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에너지 공기업 관계자들은 당시 지식경제부장관이었던 최경환 경제 부총리의 동의 없이 투자가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검찰도 이를 의식해 최 부총리가 관여한 흔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산하 공기업이 상급 부처의 동의를 구할 때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관례다. 검찰이 현 정권 실세를 엮기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일단 강 전 사장을 기소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고 있지만, 법원에 가면 다툼의 여지가 많다.

포스코 수사도 본류에서 벗어난 분위기다.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사들은 지난 5월23일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고 보고 있다. 정 전 부회장은 포스코건설 사장으로 재임한 2009년부터 3년 동안 해외 법인을 통해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 중 국내 업체가 조성한 40억원을 추적해 포스코건설 협력사 관계자를 포함해 10여 명을 구속했다. 하지만 이 수사는 처음부터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을 넘어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까지 가지 못하면 실패한 수사라는 말이 있었는데, 현 상황에서 이들을 검찰청 포토라인으로 끌어내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현재 검찰은 포스코의 성진지오텍 특혜 인수 의혹을 통해 정준양 전 회장에게 배임 혐의를 적용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수사를 시작할 때의 의도와는 다른 모양새다. 다만 내부에서는 포스코 수사가 실패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 특수부 관계자는 “애초 수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거물급 인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며 “국민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포스코가 내부에서 장난치는 몇몇에 의해 병들어가고 있는 것을 검찰수사를 통해 제대로 돌려놨다면 그것으로 성공했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특수1·2부 사건에 비해 특수4부가 두산그룹의 중앙대 인수 과정에서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특혜 의혹을 수사해 박 전 수석을 구속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이는 개인 비리 차원이어서 파장이 크지 않았다.

김진태 검찰총장 ⓒ 연합뉴스

수사 드라이브 거는 세 가지 이유

대대적으로 시작한 기획사정 수사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면서, 검찰은 새로운 판을 구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박근혜 정부가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강력한 사정을 통해 레임덕을 조기에 방지하겠다는 의도가 크다. 둘째로는 신임 법무부장관 임명에 따라 있을 수 있는 검찰의 동요를 수사 드라이브를 통해 막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검찰 내부에서는 김현웅 법무부장관 지명자가 김진태 검찰총장보다 후배라는 점에서 동요가 적지 않다. 정권에서 김 총장의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인사 문제나 수사와 관련된 의견이 엇갈리면 아무래도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실추된 명예 회복이다. 안대희·남기춘·채동욱·최재경으로 이어지는 특수통 ‘칼잡이’들이 대거 검찰을 떠나 수사력이 약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수사마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검찰 조직이다. 반전의 카드가 필요한 상황이다.

검찰은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사건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특히 기획사정 2라운드에서는 대기업과 이명박 정부 금융권 인사 그리고 야당 정치인들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특수부 사건을 살펴보면 SK이노베이션·신세계·효성그룹·우리은행 사건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 특수1부에서는 자원외교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이 사건들이 마무리되는 대로 SK이노베이션 성공불융자 특혜의혹과 신세계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수사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SK이노베이션 특혜 의혹은 SK이노베이션이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위해 지원받은 성공불융자의 원리금을 상환하는 과정에서 약 1300억원을 감면받은 사건으로 감사원이 검찰에 고발한 것이 특수1부에 배당됐다. 감사원은 SK이노베이션 측이 약정에 따라 6억5800만 달러(약 6900억원)를 국고에 상환해야 할 금액으로 산출했지만 SK이노베이션은 1억2800만 달러(약 1340억원)를 감면받고 나머지 금액만 정부에 상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이 당시 성공불융자 승인권을 갖고 있는 지식경제부 고위 관료나 성공불융자 지원·회수를 심사하는 한국석유공사 핵심 임원들에게 로비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신세계 비자금 조성 사건의 경우 법인 계좌에서 발행된 수표를 현금화해 총수 일가 계좌에 입금했다는 의혹과 관련된 것이다. 이미 몇 달 전에 배당된 사건이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아직까지 본격화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신세계 측은 “아직까지 자료 요청이나 소환 요청은 없었다”며 “수사가 시작되면 성실히 응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특수2부에서는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 관련 수사를 본격화할 전망이다. 검찰은 박 회장이 거액의 회사 돈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해 8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경제개혁연대는 박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조사부에 배당했다가 비자금 조성 사건과 묶어 특수2부에 재배당했다.

특수3부의 경우 대다수 인원이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에 파견돼 별도의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은행의 중국 화푸 빌딩 부실 대출과 관련한 내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우리은행 측이 중국 베이징 화푸 빌딩을 인수한 시행업자에게 거액의 대출을 해줬다가 아직도 회수되지 않은 것을 말하는데, 대출 과정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최근 이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 인사들로부터 자료를 입수해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은 지난 정부 금융권 실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와 함께 KT&G 관련 사건도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4부는 ‘형제의 난’으로 시작된 효성그룹 고발사건을 맡고 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80)의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이 형 조현준 사장과 전·현직 임원들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으로 조사1부에 배당됐다가 지난 5월 특수4부에 재배당됐다. 검찰도 별도의 인원을 통해 이 사건과 연관된 비리 첩보 수집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그룹 내부 가장 깊은 곳의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조 전 부사장이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2013년 조석래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 때보다 훨씬 밀도 있는 수사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효성그룹은 지난 정권과 가까운 기업으로 분류됐던 만큼, 검찰 입장에서는 꽃놀이패를 쥐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한 것을 두고 조 전 부사장과 현 정권 사정 기획자로 알려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인연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조 전 부사장은 우 수석이 변호사로 개업했던 시절, 자신과 같은 교회에 다니던 김준규 전 검찰총장을 통해 소개받은 이후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부사장의 측근은 이에 대해 “조 전 부사장과 우 수석의 관계는 와전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다만 그동안 피해를 입고 마음고생을 한 것은 우리 쪽인데 이제 와서 우리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회사가 여론전을 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효성 측은 “2013년 있었던 조 회장에 대한 수사도 이제 1심이 진행 중”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검찰 수사가 시작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정치인 수사로 방향 틀 가능성도

검찰 일각에서는 기업 수사보다는 정치인 수사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신세계·금호 등은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나온 만큼 굳이 이 시점에 판을 키울 이유가 없고, 최근 나라 경제 상황도 어려워 기업 수사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 근거다. 대신 야당 정치인들이나 여당 내 비박계 의원들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최근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대한 수사나 서울남부지검에서 수사 중인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대한항공에 대한 처남 취업 청탁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서울중앙지검에서는 한 야당 중진 의원의 동생이 연루된 사건에 대해 수사 중이다. 검찰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정부로서도 총리와 법무부장관이 교체된 데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후 분위기 쇄신책을 찾고 있다”며 “일부 기업과 함께 정치인에 대한 수사가 동시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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