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X 같은 세상을 향한’ 약자들의 항거
  • 허남웅│영화평론가 ()
  • 승인 2015.07.0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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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절친 악당들>과 <소수의견>의 영화적 연대

임상수 감독의 <나의 절친 악당들>과 김성제 감독의 <소수의견>은 전혀 다른 장르와 분위기의 영화다. 범죄와 액션, 코미디를 두루 겸비한 <나의 절친 악당들>에는 20대 청춘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법정 드라마를 표방하는 <소수의견>은 용산 참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사회파 드라마다. 전혀 다르게 가지를 피워가는 작품들임에도 공유하는 지점이 존재한다. 이들 영화가 소재로 삼은 토양은 약육강식의 생존법이 노골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다.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 임상수 감독이 보여주는 태도는 속된 말로 ‘이죽거림’이다. 임상수 감독은 전작 <하녀>(2010년)와 <돈의 맛>(2012년)에서 재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며 조롱 섞인 유머를 선보인 적이 있다. 그것이 재벌의 천박한 행태를 바꿀 수 없다는 허무주의를 내재하고 있었다면, <나의 절친 악당들>은 재벌을 아예 웃음거리로 전락시키며 조롱의 행태를 전면에 내세운다.

영화 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나의 절친 악당들>, 재벌을 조롱하다

그 주체는 임상수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존경할 점이라고는 하나 없는 ‘꼰대’들에게 머리 조아리고 무릎 꿇고 살 수밖에 없는 빚더미 속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다. 지누(류승범)는 2평도 안 되는 좁은 고시원 방에서 대학을 다녔고, 취업도 했지만 갚아야 할 빚만 수천만 원인 인턴사원이다. 나미(고준희)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개발에 항의하던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한 주유소에서 레커차를 몰며 혼자 살아가고 있다.

전혀 안면이 없던 지누와 나미가 뭉치는 계기는 거액의 돈 가방이다. 지누는 재벌의 돈 가방을 운반하는 차량을 몰래 뒤쫓던 중이었다. 돈 가방 차량이 대형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목격한 그는 모종의 계획을 세운다. 돈 가방을 빼내기 위해 사고 차량만 모아두는 곳으로 밤에 몰래 찾아간 것. 그런데 지누에 앞서 먼저 돈 가방을 손에 넣으려는 이가 있다. 사고 차량을 수습하기 위해 레커차를 몰고 갔던 나미도 돈 가방을 목격하고는 지누와 같은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돈을 나누기로 한 두 사람은 가방을 되찾으려는 일당의 표적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재벌과 그 일당을 놀림감으로 삼은 영화답게 이들에 대한 임상수 감독의 묘사는 가관이다. 돈 가방의 주인이자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재벌 3세 회장(김주혁)은 명품 슈트로 멋지게 몸을 치장했지만, ‘어쭈구리’와 같은 비속어와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 충성을 맹세한 부하들은 회장의 돈과 권력에 무릎을 꿇은 무뢰한들인 만큼 자신들보다 힘이 약한 이들에게 폭력으로 ‘갑질’을 해댄다.

지누와 나미는 이에 맞서기 위해 똑같이 악당이 되기로 한다. 역전의 쾌감을 주는 건 우선 지누와 나미가 악당이 되어 응징을 가하는 상대가 재벌과 이들을 비호하는 세력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기성세대의 착취가 도를 넘어선 가운데 마땅히 누리고 취해야 할 것도 포기해야만 하는 젊은 세대가 분연히 일어선다는 설정이 주는 의미도 만만치 않다.

<소수의견>은 손아람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원작을 읽은 김성제 감독은 장르소설처럼 거침없이 진행되는 사건 진행에 매료됐다. 법정이 주요한 무대로 등장하는 영화는 그전에도 있었다. <부러진 화살>(2011년)이 히트를 기록했고, <의뢰인>(2011년)이 국내 최초의 본격 법정 드라마로 관심을 끌었다. 이들 작품이 불의에 항거한 주인공의 뜨거운 정의감을 법정에서 폭발시키며 인물에 집중했다면 <소수의견>은 좀 더 냉정한 시선으로 사건에 치중하는 모양새를 띤다.

영화 의 한 장면. ⓒ 시네마서비스 제공

<소수의견>의 발단은 뉴타운 재개발을 위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강제 철거 현장에서 비롯된다. 경찰의 진압 작전 중 의경과 철거민 각각 1명씩 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현장에서 살해 혐의로 체포되는 인물은 단 한 명, 철거민 박재호(이경영)다. 의경을 죽였다는 이유인데 박재호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해당 의경이 자기 아들을 죽였고 이를 막는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했으니 정당방위에 의한 무죄라는 것이다. 경찰은 이 의견을 무시하고 박재호를 구치소에 가둔다.

박재호의 변론을 맡은 이는 국선변호사 윤진원(윤계상).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경찰 기록 열람을 신청하지만, 어쩐 일인지 검찰은 이를 거부한다. 박재호의 아들을 죽인 건 경찰이 아니라 철거 용역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검찰이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한다는 인상을 받은 진원에게 신문기자 공수경(김옥빈)이 찾아와 용기를 북돋운다. 이에 진원은 선배 변호사 장대석(유해진)에게 함께 사건을 파헤치자고 제안한다.

김성제 감독은 재미를 위해 사건에 집중했다는 연출의 변을 밝혔지만, 그럼으로써 얻은 효과는 재미 그 이상이다. 인물에게 감독의 시각을 투영할 경우, 창작자의 세계관이 곧 영화의 메시지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선의에서 나온 의도일지라도 영화의 분위기나 메시지 면에서 편향적일 위험성이 적지 않다. 대신 사건을 따라간다는 건 인물로 접근하는 것과 비교해 3자의 시선에서 좀 더 객관적인 관찰과 판단이 용이하다는 걸 의미한다.

<소수의견>, 불의에 맞서다

영화는 철거민 박재호로 대표되는 소수자 편에 서 있지만, 그렇다고 명령을 받고 진압 작전에 투입돼 사망한 의경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기존의 한국 법정 영화와 <소수의견>이 갈라진다. 영화의 제목인 ‘소수의견’은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우선 박재호나 지방대 출신으로 경력도 일천한 윤진원과 같이 사회의 중심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힘든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한다.

특정 사건이 바탕이되 <소수의견>은 비도덕과 비상식이 헤게모니가 된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망가진 이유를 소수 세력의 소수(자)에 대한 억압에서 찾는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진원과 수경과 대석으로 대변되는 ‘우리’가 불의에 용기 있게 맞서는 것. 그럼으로써 약자들이 연대하면 비상식과 비도덕의 파도를 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필자에게는 <소수의견>과 <나의 절친 악당들>의 출현이 ‘이 X 같은 세상을 향한’ 영화적 연대와 같은 인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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