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라 생각이 답을 찾아낸다”
  • 조철│문화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7.0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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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복기하며 깨달음 전하는 ‘바둑 황제’ 조훈현

“앞으로 남아 있는 나날을 위해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는 건 그저 마음만 고쳐먹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놀랍게도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심지어 결과까지 달라진다. 개인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바로 생각인 것이다.”

오랜 기간 바둑의 고수이자 승부의 고수로 살아온 조훈현 9단(63)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직접 복기’하는 첫 에세이집을 냈다. 그가 깨달은 ‘생각의 힘’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인생에 담대하게 맞설 수 있도록 조언을 건네는 책이다.

1989년 세계 바둑 최정상을 놓고 건곤일척의 승부가 벌어졌다. 제1회 잉창치배(應昌期杯) 바둑대회에서다. 유일한 한국 대표 조훈현과 중국 최고의 기사 녜웨이핑이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5전 3승제의 결승전에서 2 대 2로 팽팽하게 맞선 두 사람은 ‘세계 바둑 황제’ 타이틀을 놓고 싱가포르에서 마지막 대국을 펼쳤다.

ⓒ 인플루엔셜 제공

조 9단은 우승을 결정짓는 이 단판 승부에서 불리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녜웨이핑의 무차별 공세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또 버텼다. 끝내 판세를 극적으로 뒤집는 129번째 수를 던졌다. 이후 대국을 계속 리드하던 조 9단이 145번째 수를 놓자 녜웨이핑은 결국 패배를 인정하며 돌을 던졌다. 당시 조 9단의 129수에 대해서는 26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 결승전 마지막 대국이라는 부담감, 어마어마한 수가 오가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숨 막히는 혈전, 초읽기에 몰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그 수를 생각해낼 수 있었는지를. 과연 그는 어떻게 그 수를 생각해냈을까.

“나는 그저 생각 속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내가 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답을 찾아낸 것이다.”

“집중해 생각하면 반드시 답이 보인다”

네 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기원에 나가 바둑을 접하기 시작할 때부터 조 9단에게 바둑은 ‘운명’이었다. 그는 그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바둑이라는 승부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더 나은 생각’을 포기하지 않으며 직접 부딪쳤다. 이 치열한 ‘생각의 과정’ 끝에 마침내 ‘바둑 황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하라’는 그의 제언은 지금 시대를 역행하자는 제언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스마트 기기’의 도움을 받으며 살게 되면서 점점 생각하는 일을 그저 피곤한 일, 머리 아픈 일이라고 여기며 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겠다’라는 자신만의 생각은 그만두고, 단순히 남이 하는 대로, 누군가가 해온 대로 무작정 따라가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래서 조 9단은 그 어느 때보다 ‘생각의 힘’과 ‘생각의 경험’이 필요다고 말한다. 최고가 아니면 기억되지 않는 냉혹하고 치열한 승부의 세계를 관통하면서 얻은 진정한 인생 고수의 깨달음은 이렇다.

“바둑이 내게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집중해 생각하면 반드시 답이 보인다. 심지어 내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조차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의외의 답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조 9단은 “아플수록 복기하라”면서 실패를 바라볼 때 눈을 부릅뜨라고 조언한다. 그는 ‘바둑 황제’라는 칭호를 얻으며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고, 당시 변방으로 평가받던 한국 바둑을 세계 중심에 올려놓은 국민적 영웅이 되기도 했지만, 맞수 서봉수, 제자 이창호를 비롯해 황제를 향한 수많은 도전 속에 패배의 쓴맛을 보기도 했다. 특히 자신의 최전성기에 함께 살면서 직접 가르친 열네 살의 이창호에게 왕좌를 뺏기는 쓰라린 패배를 겪기도 했다.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어설픔과 미숙함을 줄이고 프로페셔널 한 삶을 살 수 있다. 실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아프더라도 아플수록 더욱 예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조 9단은 수많은 승리 뒤에 가려진 패배가 준 가르침을 한시도 잊지 않으려 했다. 이기기 위해, 아니 지지 않기 위해 패배의 쓰라림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지는 순간을 복기했다.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그는 ‘인생에서 승패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이기는 바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만의 바둑’을 후회 없이 두는 것이라고 여기며 긴 승부의 인생을 지나왔다. 조 9단은 “좋은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간단한 일일지라도 원칙과 도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원칙과 도덕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야 언젠가 큰 선택을 할 때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자신만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면 서너 수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수읽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고 ‘무심(無心)’의 상태를 유지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야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바둑과는 달리, 신념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인생에서 악수를 두어야 할 때가 있음을 기억하라.”

여전히 시니어 바둑 클래식 왕중왕에 오르는 등 승리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승부사지만 승패를 떠나 그저 바둑을 두는 게 좋아서 기원에 나가는 조훈현 9단. 한 모바일 게임 광고에 출연해 유머러스한 모습을 선보이고, 바둑을 알리기 위해 프로야구 경기 시구를 하고, 바둑을 매개로 한 한·중 민간 외교에도 앞장서는 등 오늘도 그는 변함없이 ‘자신만의 바둑’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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