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쏟아부어 일 벌여놓고 ‘나 몰라라’
  • 엄민우 기자·신중섭 인턴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7.0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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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장들의 혈세 낭비 공약 사업…국제대회 유치 후 억지 관중 모으기 반복

지방선거 당선자들이 혈세를 축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아 재보선 비용이 들어가게 하는 경우와 인기 영합 공약 사업으로 예산을 쏟아붓는 경우다. 후자의 경우 혈세를 쓸데없는 곳에 낭비한다는 점에서 지역 주민들의 피해가 크다. 특히 선심성 공약은 임기가 끝난 후에도 지방 재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후임 단체장이 시정을 펼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 시사저널이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의 ‘2014년 지방 채무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지방 채무는 총 27조9913억원에 달한다.

혈세 낭비의 ‘대표 선수’는 바로 무분별한 국제대회 유치다. 국제대회 유치가 실속 없는 사업이란 점은 널리 알려졌으나 지자체장들이 자신의 치적을 위해 막무가내로 국제대회 유치에 매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천아시안게임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2007년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총회에서 인천아시안게임 유치가 결정된 후 인사말을 하는 안상수 당시 인천시장. 혈세 수조 원이 들어간 아시안게임으로 인천시는 아직도 후유증을 앓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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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에 따르면, 인천시의 채무는 2014년 기준 3조2581억원으로 서울을 제외한 전체 광역시 중 1위다. 특히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37.5%로 시·군·구를 포함해 가장 높다. 그 전해인 2013년에도 인천은 예산 대비 채무 비율 1위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전년에 비해 전체적으로 지자체들의 채무와 채무 비율이 떨어지는 모양새였는데 인천은 광주와 더불어 상승했다.

인천이 ‘빚더미 지자체’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인천시민 및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뽑는 혈세 낭비 주범은 안상수 전 시장이 추진했던 아시안게임이다. 지난해 말 기준 인천시의 지방채 잔액 규모는 모두 3조3000억원인데 이 중 아시안게임과 관련한 지방채 잔액이 32%에 이르는 1조350억원이다. 이는 강원도나 전라남도의 지방채 전체 액수와 맞먹는다. 이 액수만 봐도 영양가 없는 국제대회가 지방 재정을 얼마나 악화시키는지 알 수 있다.

안 전 시장의 공약이었던 인천아시안게임에는 모두 2조5000억원의 혈세가 투입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혈세 낭비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점이다. 4700억원을 들여 지은 주경기장은 지금껏 아무런 국제 행사가 열리지 않은 채 놀고 있다. 그러면서도 운영비로 연간 33억원씩 잡아먹고 있다. 다른 경기장들까지 합치면 매년 수익을 제하고 108억원씩 관리비로 나간다. 당시 인천시는 문학경기장을 보수해 사용할 수 있었으나 4700억원을 들여 새로운 경기장을 짓는 등 혈세 낭비의 전형을 보여줬다.

그렇게 연 대회에서 관객마저도 억지 동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경기 지역 공공기관 관계자는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구입해야 할 할당 표가 나왔고 이를 개인 돈으로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경기하는 날이 평일이어서 현실적으로 갈 수 없는 날짜의 표까지 파는 것을 보며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럼에도 당시 이를 추진했던 안 전 시장은 지난 4·29 재보선 인천 서·강화 을 지역에서 당선됐으며 최근엔 새누리당 인천시당위원장을 맡았다. 여전히 빚더미에 허덕이는 인천시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7월3일 개막한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인천아시안게임을 반면교사 삼아 기존 경기장을 활용하는 등 예산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관객 동원에 자신이 없어 각 공공기관 및 지역구 의원들에게 대량으로 표를 팔며 읍소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 및 정치인들로부터 “이렇게 시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할 것이면 왜 대회를 여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광주 역시 인천과 더불어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상승세에 있으며 전체 채무액은 9000억원에 달한다.

전남 영암 F1 대회는 위약금까지 물어

전남은 F1 코리아그랑프리대회가 무산되면서 망신살을 샀다. 2006년 총 5조원의 경제 유발 효과가 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F1 대회는 아예 열리지도 못하고 주관사에 위약금을 물어줘야 할 판이다. 영암 경주장 건설비만 4285억원이 들어 전라남도는 지방채를 1980억원어치나 발행했다. 이 대회를 추진한 박준영 전 지사는 최근 신당 창당을 위해 여의도에 사무실을 냈다. 전남은 최근까지도 주관사 측과 위약금 액수를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용인시는 경전철 문제로 시끄럽다. 2013년 1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경전철을 개통한 용인시는 수요 예측을 잘못해 매년 수백억 원씩 혈세를 투입하고 있다. 게다가 이를 추진한 이정문 당시 시장은 경전철 사업과 관련해 하도급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에 거액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현재 ‘용인 경전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이 용인시를 상대로 주민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용인시의 지난해 말 기준 채무액은 3517억원이다.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의 공약으로 건설한 마창대교는 예상보다 통행량이 적어 최소운영수익보장(민간 자본이 투입된 사업의 수익이 예상보다 적을 경우 공공기관이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제도) 조항에 따라 30년 동안 총 1조3895억원을 민자 사업자에게 보전해줘야 할 판이다. 이 공약을 추진했던 김 전 지사는 임기를 채우지 않고 도지사직을 사퇴했는데 이로 인해 치러진 재·보궐 선거로 84억6700만원이 들어갔다. 혈세 낭비 공약과 임기 전 사퇴 탓에 이중으로 혈세가 들어갔다.

공약은 아니지만 지자체장들의 무리한 청사 건설 등도 지방 재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대표적인 것이 올해 2월 사망한 이대엽 전 성남시장의 호화 청사다. 그는 성남의 신청사를 짓는 데 3222억원을 들였다. 2014년 말 기준 성남시의 채무는 1181억원이다. 이재명 현 시장은 2010년 취임 초부터 이 청사를 매각할 계획을 세웠으나 올해 결국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매번 반복되는 보여주기 식 혈세 낭비 공약을 막기 위해선 지자체장에 대한 평가 풍토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형구 고려대 교수는 “조용히 채무를 줄이는 행정을 펼치는 지자체장보다 국제대회를 개최하는 이가 더 부각된다면 혈세 낭비 사업은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다. 대회 유치 사실 자체를 칭찬하기보단 얼마나 실속이 있는지에 대해 냉정하고 체계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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