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vs 엘리엇, 단 한 주도 아쉽다
  • 박혁진 기자·유지민 인턴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7.0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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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 확보 총력전…외국인·소액주주 향배 관심

7월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결의를 막아달라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어소시어츠 엘피(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이로써 삼성물산과 엘리엇 간 경영권 다툼은 7월17일 열릴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양측 간 표 대결로 승자가 가려지게 됐다. 삼성물산은 ‘오는 17일 오전 9시 서초구 aT센터에서 주주총회를 개최한다’고 2일 공시했다.

법원의 가처분신청 기각 결정에 따라 일단은 삼성물산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결정을 승리의 ‘보증수표’로 받아들이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재계의 분위기다. 특히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과 KCC의 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는 점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2대 주주이면서 KCC의 2대 주주이기도 하다. 삼성물산 측 손을 들어줄 경우 삼성물산과 KCC의 주식 가치가 떨어지게 돼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양측에는 남은 기간 동안 주총에 대비한 우호 지분 확보가 급선무다. 주총에서 합병안이 통과되려면 주총 참석 주식 수의 3분의 2, 총 주식 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주총 참석자를 전체 주주의 70%로 가정했을 때, 전체 주식 수의 47%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하며, 그 이상일 때는 더 많은 찬성표를 받아야 한다. 삼성물산으로서는 한 표가 아쉬운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시사저널 임준선

국민연금은 삼성 손 들어줄 듯

그렇다면 현재 삼성물산의 우호 지분은 얼마나 될까.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이 이번 주총에서 직접 동원할 수 있는 지분을 총 13.86%로 보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삼성SDI 7.18%, 삼성화재 4.65%, 삼성생명 0.42% 등 삼성그룹 계열사가 도합 12.2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3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삼성복지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이 각각 0.14%, 0.08%를 가지고 있다.

합병에 반대하고 있는 측의 지분은 총 9.9%다. 엘리엇이 7.1%를 가지고 있으며, 일성신약과 네덜란드연기금이 각각 2.1%, 0.3%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합병 반대의 의사를 밝힌 소액주주 지분이 0.4% 있다. 일성신약 측은 1 대 0.35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 비율이 적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현재까지 확보하고 있는 우호 지분 13.86%와 9.9%를 상수라고 놓고 본다면, 나머지는 변수인 셈이다. 즉 70%가 넘는 주주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알 수 없는 상황인 것. 이 중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는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주식 10.15%(의결권 행사 가능 지분)를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연금이 또 다른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KCC의 주주라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KCC는 지난 6월11일 삼성물산 자사주 899만주(지분율 5.79%)를 주당 7만5000원에 장외시장에서 매입했다. 삼성물산은 지난 5월26일 제일모직과의 합병 발표 당시 삼성물산 1주의 합병 기준 보통주 주가가 5만5767원이라고 발표했는데, KCC가 이보다 34.5%나 높은 가격에 지분을 사들인 것이다. 5.79%의 지분은 삼성물산 자사주였을 때는 의결권이 없지만, KCC가 사들이면서 의결권이 살아났다. 따라서 재계에서는 KCC 지분을 삼성물산 우호주로 분류해 총 19.65%를 합병에 찬성하는 최소한으로 판단했다.

이에 엘리엇은 6월11일 법원에 KCC 보유 지분 5.79%의 의결권 행사를 막아달라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이 엘리엇 측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 삼성물산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지만 반대의 경우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삼성물산이 자사주를 KCC에 매각하지 않았어도 국민연금의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KCC의 삼성물산 자사주 매입은 국민연금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측의 손을 들어줘 합병이 성사될 경우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은 삼성물산과 국민연금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국민연금은 KCC 주주들로부터도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은 KCC 지분 12.19%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합병이 성사되면 삼성물산 주식을 고가 매입한 KCC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즉 국민연금이 KCC 주주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손실을 입힌 것이 확인되면 배임, 불공정 거래 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처지가 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이번 선택은 최근 SK와 SK C&C의 합병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국민연금이 SK와 마찬가지로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대할 경우 투기자본의 손을 들어줬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국민연금은 주총을 이틀 정도 앞둔 상황에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열고 찬반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다.

입장이 분명한 삼성 계열사 및 특수관계인 지분(13.86%)과 엘리엇 측 지분(9.9%), 그리고 KCC 보유 지분(5.79%)과 국민연금 보유 지분(10.15%)을 제외하면 60.3% 정도의 지분이 남게 된다. 이 지분은 어느 쪽 손을 들어줄까. 남은 지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외국인 투자자 26.2%, 개인투자자 22.8%, 기관투자가 11.3% 등이다.

삼성물산의 베스트 시나리오는 법원이 엘리엇 측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해 KCC가 의결권을 행사하고, 국민연금으로 하여금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게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총 29.8%의 지분을 확보한 상황에서 주총에 들어가게 된다. 전문가들은 11.3%의 기관투자가들은 삼성물산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삼성 측은 41.1%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이것은 삼성에 가장 좋은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주총에 3분의 2의 주주가 참석했을 때 삼성물산에 필요한 지분이 47%인데, 최상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6% 정도의 찬성 지분이 더 필요하다.

반면 삼성에 최악의 경우는 법원이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법원의 판단에 국민연금의 선택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쉽지 않다. 삼성그룹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에 돌발변수가 생기는 것이다.

폴 싱어 엘리엇 어소시어츠 엘피 대표 ⓒ AP 연합

외국인 투자자 선택도 주요 변수

어떤 경우든 합병은 외국인 투자자와 개인투자자의 손에 달려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일단 외국인 투자자들의 선택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며 “외국에서도 엘리엇을 투기자본 성격이 강한 것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대해 우호적이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런 분위기는 외국 언론에서도 엿볼 수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7월1일자 보도를 통해 “삼성물산의 소액주주들이 이익 보호를 위해 삼성가에 맞서야 한다”며 “그룹을 독점한 재벌가 중심 경영으로 인해 소수 주주의 권리가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 역시 지난 6월7일자 기사에서 “회사의 장기적 미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사안에 주주들이 목소리를 내고 결속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권리”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또 “한국 언론이 삼성에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피한다”며 “언론의 이런 관대함이 삼성가 같은 재벌들을 수용한다”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나 블룸버그 같은 미국 언론사들은 미국 금융자본과 얽혀 있다는 점에서 객관적 보도라고 볼 수 없지만, 외국계 투자자를 대변하고 있어 삼성 측으로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개인투자자의 경우 세몰이가 중요한 상황이다. 소액주주의 입장을 강조하는 엘리엇 측의 손을 들어줄지, 합병이 장기적으로 회사에 유리하다는 입장을 내세우는 삼성의 손을 들어줄지 예측할 수 없다. 0.1% 지분이 아쉬운 삼성물산은 최근 소액주주들에게 의결권 위임 서류를 우편으로 발송했다. 여기에는 위임장을 넣어 삼성물산에 돌려보낼 반송용 봉투도 담겼다. 삼성 측은 동봉된 서한을 통해 소액주주들에게 합병안에는 찬성표를, 현물 중간 배당이 가능하도록 정관을 변경하자는 엘리엇의 안에는 반대표를 행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엘리엇 측 한국 대리인 실체는? 

삼성물산과 엘리엇 어소시어츠 엘피 간 대결에서 관심을 모으는 또 하나의 지점은 엘리엇 측의 법률 및 홍보 전략이다.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 매입 이후 가처분신청과 여론전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주도하는 법률 및 홍보 담당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두 개의 가처분신청을 비롯해 법률 쪽 대응을 주도하는 곳은 법무법인 넥서스다. 넥서스는 2011년 1월 김앤장 출신 최영익 대표변호사가 설립한 법무법인으로 기업 인수·합병 등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사무실도 서초동이 아닌 여의도 증권가에 위치하고 있다. 넥서스는 박근혜 정부 첫 국무총리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김 전 소장이 넥서스의 고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영익 대표는 그의 사위이기도 하다. 2000년 헌재소장 퇴임 직후 법무법인 율촌의 상임고문으로 2010년 12월까지 일하다 넥서스 창업 직후 고문을 맡았다. 김 전 소장의 장남인 김현중 미국 변호사도 넥서스에서 일하고 있다. 최 대표는 2002년 삼성전자와 엘리엇 자회사 맨체스터시큐리티즈의 분쟁, 2004년 삼성물산과 영국 헤지펀드 헤르메스의 분쟁에서도 해외 금융사 쪽 자문을 맡은 바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 대표가 삼성물산에 대한 공격을 사실상 지휘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엘리엇의 홍보 담당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표 대결을 앞둔 상황에서 여론전을 통해 소액주주들을 설득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만큼 홍보 담당사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엘리엇의 홍보는 뉴스커뮤니케이션(뉴스컴)이라는 국내 홍보 대행사가 맡고 있다. 뉴스컴 역시 다국적 기업의 홍보를 주로 맡아왔다. 론스타가 지난 2006년 외환은행 매각 작업을 추진할 때 언론 홍보를 맡았고, 제일은행을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매각한 뉴브리지캐피털과는 오랜 기간 일해왔다. 현재는 형제간 소송을 벌이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2남 조현문 변호사의 홍보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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