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형’ 몸값 자꾸 떨어져 면목 없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7.07 20: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G전자, 구본준 시대 5년…주가 5만원대도 무너져

“우리 손으로 LG전자의 명예를 반드시 되찾자.” 구본준 부회장이 2010년 10월 LG전자의 수장에 취임하면서 한 말이다. 당시 LG전자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효자 사업이었던 휴대전화 부문은 2분기와 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09년 3조원에 육박하던 영업이익은 10분의 1 토막이 났다. 전임 남용 부회장이 피처폰 시장에 안주하며 스마트폰 시대 도래를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2010년 구본준 부회장 구원투수로 등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구본준 부회장을 ‘구원투수’로 내세웠다. 구 부회장은 1998년 LG반도체(현 SK하이닉스)를 통해 경영에 입문했다. 이듬해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로 옮긴 그는 과감한 투자로 회사를 3년 만에 LCD업계 1위에 올려놓았다. 그만큼 구 부회장은 공격적인 리더십의 소유자다. 일화도 있다. 구 부회장은 대표이사 취임 직후 100여 명의 직원과 회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 나온 소주 라벨이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과 달랐다. 구 부회장이 말을 타고 손을 앞으로 뻗으며 ‘진격’을 외치는 모습이었다. 직원들에게 ‘나를 믿고 따르라’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 LG전자 제공

구 부회장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둘째 동생이다. 위기에 빠진 LG전자를 구하려면 오너 일가가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기자가 만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재 LG전자가 겪고 있는 위기는 전임 남용 부회장의 판단 착오와 성과주의 탓”이라며 “패밀리(구 부회장)가 취임하면서 LG전자는 좀 더 공격적이고 큰 그림을 그리는 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구 부회장의 복귀를 ‘추석 선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려도 적지 않았다. LG필립스LCD 대표 시절 디스플레이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였다. 구 부회장이 공격적인 투자와 발 빠른 의사결정으로 LG필립스LCD는 반짝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회사는 적지 않은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 과잉 투자로 인해 2006년 한 해에만 8000억원 가까운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당시 기관투자가들은 “구 부회장이 대표이사가 되면 LG전자 주식을 모두 팔겠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3개월 후면 구 부회장이 LG전자 대표이사에 취임한 지 5년이 된다. 그동안 LG전자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매출이나 영업이익은 전성기 때의 위용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LG전자는 59조408억원의 연결 매출을 기록했다. 구 부회장 취임 첫해 2824억원에 그쳤던 영업이익은 2012년 1조원대를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1조8286억원을 기록했다. 3조원을 오르내리던 전성기 때만은 못하지만, 영업이익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구 부회장은 2013년 미래 먹거리로 자동차 부품 사업을 선정하고 VC사업부를 출범시켰다. VC사업부는 지난해 약 1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20년까지는 매출 4조원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취임 초부터 주문한 ‘독한 LG’가 조금씩 성과를 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휴대전화 부문인 MC사업본부는 2010년 1분기부터 7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한때 전 세계 피처폰 시장을 쥐고 흔들었던 LG전자가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렇고 그런’ 회사로 전락한 것이다. 구 부회장 취임 3년째인 2012년 4분기부터 MC사업부는 흑자로 전환됐다. 지난해 3분기에는 2010년 이후 최대 규모인 1674억원의 영업이익도 냈다. 지난해 LG전자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1320만대) 대비 18% 증가한 1560만대를 기록했다. 전략 스마트폰인 ‘G 시리즈’는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도 처음으로 6%대에 올라섰다.

 

2000억원대로 밀렸던 영업이익 점차 회복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09년까지만 해도 LG전자는 주요 계열사 가운데 주식 가치가 가장 높았다. 2009년 말 LG화학에 1위 자리를 내주더니, 2012년 중반에는 LG생활건강에 밀려 3위로 추락했다. 이로 인해 이들 회사와의 시가총액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7월2일 현재 LG그룹 계열사의 시가총액 1위는 18조6221억원(주당 28만1000원)을 기록한 LG화학이다. 뒤를 이어 LG생활건강이 12조2290억원(주당 78만3000원)으로 7조8714억원(주당 4만8050원)을 기록한 LG전자를 멀찌감치 앞서고 있다. 최근 1년간 LG생활건강의 주가는 119.30% 올랐다. LG화학은 4.75% 하락했는데 LG전자는 35.09%나 폭락했다. 6월 말 LG전자 주가는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5만원대마저 무너졌다.

앞으로의 상황도 녹록하지 않다. 올 1분기 LG전자는 매출 13조9944억원, 영업이익 3052억원, 당기순이익 384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차이가 없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735억원, 541억원 감소했다. 2분기에도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2분기 LG전자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LG전자는 그동안 TV나 백색가전 부문에서 경쟁력을 보였다. 스마트폰 사업이 지지부진할 때도 TV를 담당하는 HE사업본부나 냉장고 및 세탁기를 담당하는 HA사업본부, 에어컨을 담당하는 AE사업본부는 좋은 흐름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들 사업부의 경쟁력마저 떨어지고 있다. AE사업부의 경우 지난해 3분기 처음으로 2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올 1분기에는 HE사업부도 6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해 LG전자 측은 “2분기 실적 전망이 당초 기대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며 “업종 특성상 실적은 환율이나 계절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다. 최근 대외 환경이 안정되고 있는 만큼 실적 또한 되살아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히 TV 부문은 현재 전 세계 업체들이 대부분 적자를 내고 있다. 휴대전화 역시 전략 스마트폰인 ‘G4’가 6월 초순부터 해외에 본격적으로 판매된 만큼 2분기 실적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앞서 말한 관계자는 “휴대전화의 경우 시장 기대치에는 못 미쳤지만 흑자폭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며 “(구본준 부회장 취임 이후) 장기적인 관점에서 R&D(연구·개발) 투자를 꾸준히 늘리고 있기 때문에 현재 성과로 지난 5년을 평가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요 증권사들은 LG전자의 목표 주가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고 있다. 환율 하락과 중국 가전회사의 추격으로 향후 시장 환경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증권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혜용 NH투자증권 연구원은 “TV 수요가 의미 있게 회복되기 전까지 수익성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며 “2분기에도 LG전자 TV 부문의 적자는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실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구본준 부회장의 리더십도 도마에 올랐다. 재계 관계자는 “처음 몇 년간은 전임 대표이사의 뒷수습을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평가가 이를 수 있었다”며 “이제는 취임한 지 5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LG전자의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다면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LG전자 MC사업본부장 조준호 사장(가운데)이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5)’가 열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3월3일(현지시간) 올해 사업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실적 우려 제기되면서 리더십 ‘흔들’

실제로 ‘가전 명가’로 불리는 LG전자의 4개 생활가전 브랜드 가치는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평가 전문 회사 브랜드스탁에 따르면 2008년까지만 해도 생활가전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양분하는 구조였다. TV나 냉장고는 삼성 브랜드인 ‘파브’와 ‘지펠’이, 세탁기와 에어컨은 LG 브랜드인 ‘트롬’과 ‘휘센’이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생활가전 주요 4개 부문의 브랜드 가치 평가지수 1위를 삼성이 싹쓸이했다. TV에서는 삼성 SUHD TV(전체 56위)가 LG TV(전체 117위)를 크게 앞섰다. 냉장고 역시 삼성 셰프 컬렉션(59위)이 LG 휘센(60위)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렸다. 특히 에어컨은 삼성과 200위 이상 차이를 보였다. 브랜드스탁 관계자는 “2008년까지만 해도 LG 휘센은 생활가전 부문에서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았다. 현재 생활가전 전체에서 1위는 삼성스마트에어컨으로 바뀐 상태”라며 “최근 몇 년간 LG 생활가전의 브랜드 가치 하락세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LG전자 측은 “지나친 비약이다”라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여러 기관에서 진행하는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LG전자 제품이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며 “특정 회사의 지표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