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머니에 축구의 별들이 ‘혹’ 했다
  • 서호정│축구칼럼리스트 ()
  • 승인 2015.07.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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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축구 사랑에 돈 퍼붓는 중국 리그

유럽 무대에서 뛰던 축구계의 별들은 지난 10년간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중동에서 보냈다. 선수의 가치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는 유럽과 달리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중동은 이름값 높은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전성기 시절 받던 연봉을 선뜻 제시했다. 일명 오일머니의 위력이었다.

펩 과르디올라, 페르난도 이에로, 라울 곤잘레스 등이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로 향했고, 최근에는 바르셀로나의 주축 미드필더였던 사비가 카타르의 알 사드로 이적했다. 하지만 최근의 대세는 오일머니가 아닌 황사머니다. 개방을 통한 시장경제를 시행한 지 20년이 지나 세계 경제의 대세로 떠오른 중국이 축구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 국가대표 미드필더 쑨커는 장쑤 순티엔에서 톈진 테다로 이적하며 120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해 ‘중국 리그 100억원 시대’를 열었다.

중국 선수 이적료 100억원은 인플레 증거

2012년 상하이 선화는 잉글랜드의 첼시에서 뛰던 디디에 드로그바와 니콜라 아넬카를 동시에 영입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두 선수는 당시 30대였지만 여전히 강한 임팩트를 보여주고 있던 터였다. 상하이 선화는 드로그바에게 200억원, 아넬카에게 100억원이 넘는 연봉을 제시했다. 결국은 구단에서 그 연봉을 감당하지 못했고 두 선수는 1년도 되지 않아 팀을 떠났지만 이는 중국 축구의 규모가 새롭게 조명받는 계기가 됐다.

올여름, 중국으로 다시 한 번 특급 스타들이 몰려오고 있다. 가장 성공한 구단으로 평가받는 광저우 헝다는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미드필더 파울리뉴를 영입했다. 파울리뉴는 브라질 출신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광저우 헝다가 파울리뉴 영입을 위해 토트넘에 지급한 이적료는 200억원이 넘는다. 연봉도 토트넘 시절보다 더 높게 책정했다.

새 구단주 부임 이후 다시 돈을 풀고 있는 상하이 선화는 뉴캐슬·첼시·베식타스에서 활약한 세네갈 국가대표 공격수 뎀바 바를 영입했다. 뎀바 바의 이적료는 175억원 수준이다. 상하이 선화는 말리 국가대표 미드필더 모하메드 시소코도 함께 영입했다. 현 브라질 국가대표로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 AC 밀란 등을 거친 세계적인 공격수 호비뉴도 올여름 광저우 헝다 혹은 톈진 테다로 이적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선수만 몰리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명장들도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을 영입해 대성공을 맛본 광저우는 최근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 리피 감독 후임이었던 세계적인 수비수 출신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이 물러나고, 2002년 브라질을 이끌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던 스콜라리 감독이 부임했다. K리그 FC 서울의 감독으로서 아시아 무대에서 성과를 내 온 최용수 감독은 최근 장쑤 순티엔으로부터 연봉 20억원 제의를 받았는데 이는 현재 최 감독이 받는 연봉의 8배 수준이다.

해외 선수뿐만이 아니다. 중국 축구는 최근 또 하나의 대형 이적을 성사시켰다. 올해 초 열린 호주 아시안컵에서 중국 국가대표로 맹활약한 미드필더 쑨커가 장쑤 순티엔에서 톈진 테다로 이적하며 6600만 위안의 이적료를 기록했는데 한화로 120억원에 달했다. 같은 시기 셀틱에서 스완지 시티로 이적한 기성용의 이적료는 102억원이었고, 손흥민이 2013년 여름 함부르크에서 레버쿠젠으로 이적할 때의 이적료는 쑨커와 비슷한 120억원이었다. 이처럼 유럽에서 A클래스 선수로 인정받아야 가능한 이적료가 중국 슈퍼리그에서 발생한 것이다.

쑨커의 이적료는 지나치다 못해 인플레 수준으로 치솟은 중국 슈퍼리그의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되고 있다. 특급 외국인 선수를 경쟁적으로 영입하고 있지만 외국인 보유 한도가 있는 슈퍼리그는 결국 양질의 자국 선수를 확보해야 우승이 가능하다. 실제로 광저우 헝다는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주전 모두가 자국 국가대표급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국 선수들의 가치는 치솟았고, 경쟁적으로 영입에 달려들다 보니 거액의 이적료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과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타났던 상황과 흡사하다. 사우디 국가대표 골잡이 야세르 알 카타니는 2005년 알 힐랄로 이적하며 56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했다. 이후 알 카타니는 유럽 진출을 천명했지만 어떤 관심도 받지 못했을 정도로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했다. 쑨커의 경우도 내부 시장 경쟁으로 가치가 매겨진 셈이다.

중국 축구의 이상 열기는 국가적 관심과 지원에서 비롯된다. 열렬한 축구팬으로 알려진 시진핑 주석은 ‘축구 굴기’(?起·우뚝 서다)를 꾀하고 있다. 평소 “중국이 월드컵에서 승리하는 걸 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축구에 대한 애정이 강한 시 주석은 중국 전역에 2만개의 축구 특색학교를 만들어 인재를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축구 인구를 확대하고 일류 수준의 프로팀을 육성해 아시아 최고이자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대표팀을 만들겠다는 꿈이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는 스포츠 산업이 가진 잠재력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중국의 스포츠 산업 규모는 오는 2020년 300조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과 중국 정부는 그 중심에 세계적인 스포츠로 통하는 축구를 올린 것이다.

 

‘축구 굴기’와 시진핑, 중국 축구의 음과 양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성장하는 중국 기업들은 축구에 돈을 쏟아부으며 정치권의 비호를 받으려 한다. 광저우 헝다의 대성공은 다른 기업들에 큰 자극제가 됐다. 2010년 2부 리그에 있던 팀을 인수해 매년 1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한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은 광저우 헝다를 아시아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전국인민대표대회(양회)에서 상공위원으로 발탁되며 정치적으로도 도약했다. 현재 중국 슈퍼리그 각 구단의 모기업은 대부분 건설, 부동산 개발 등 정치권과 관계가 밀접한 분야의 회사다. 중국이 시장경제이긴 하지만 토지 등에 대해서는 당국의 불하를 받아야 하는 사회주의 체제여서 기업가들은 정치권에 아부할 수밖에 없다. 2014년 마윈 회장이 이끄는 알리바바가 광저우 헝다의 지분 50%를 인수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같은 상황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정치적 도움으로 꽃을 피운 축구판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도 결국은 정치적 상황 때문일 게 뻔해서다. 일례로 광저우 헝다 이전 중국 슈퍼리그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다롄 스더는 후견인이었던 보시라이 전 충칭 시 당서기가 부패 혐의로 실각하자 재정 지원이 사라져 결국 공중 분해되고 말았다. 현재 슈퍼리그의 자금 흐름은 중국 축구 스스로가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치솟고 있다. 이 거품이 언젠가 꺼지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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