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코딩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 김회권 기자·유지민 인턴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7.1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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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 배우기 몰입하는 아이들…디지털 시대 생존 수단 떠올라

스크린 가득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비행기가 하늘 위를 좌우로 날며 공을 떨어뜨렸다. 땅에 있던 괴물이 그 공을 받아내자 점수가 오른다.

“이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몬스터가 받은 공을 비행기로 다시 날려보내요!” “몬스터 체력을 설정해줘야 될 것 같아요.” “비행기 속도를 빠르게 해야 게임이 더 재미있어져요!” 자유로운 대답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정해진 답은 없다. 방과 후 코딩 수업을 듣는 수명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머릿속에 있는 상상을 언제든지 눈앞에서 실현해낼 수 있다. 스크래치 프로그램을 통해 생각한 대로 명령을 배열하고 게임을 실행하면 된다. 학교는 아이들의 공상을 게임으로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소프트웨어 선도학교로 지정된 서울 수명초등학교의 코딩 교육 현장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담당인 이문호 선생님(46)은 커다란 상자를 품에 안은 채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상자 안에는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사용할 교구 세트가 가득 담겨 있었다. “오늘은 재미있는 걸 많이 해볼 겁니다. 모든 학생이 다 실험해볼 수 있을 거예요.” 오후 2시30분을 넘기자 6학년 학생 18명이 코딩 수업을 들으려고 4층에 위치한 정보화교육실을 찾았다.

코딩 수업은 ‘스크래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스크래치는 미국 MIT가 어린아이들이나 입문자를 위해 만든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다. 주황·파랑·노랑·연두 같은 파스텔톤 색의 블록들을 배열하면 원하는 대로 명령을 만들 수 있다. 문제가 주어지면 이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직접 설정하고 조립하는 방식이다. 이문호 선생님은 수업 시작에 앞서 학생들에게 공이 떨어지는 비행기 게임을 보여주었다. 좀 더 흥미진진한 게임을 만들기 위해 두 가지 요소를 추가해보기로 했다. 하나는 변수를 만들어 게임의 구성 요소를 추가하는 것, 다른 하나는 비행기의 움직임을 바꾸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와의 짧은 만남에 꿈 변하다

게임에 필요한 변수는 ‘비행기의 속도’와 ‘공을 받은 개수’다. 선생님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은 변수를 만드는 데이터 탭을 찾아 입력했다.

마치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다뤄본 아이들 같지만 주한이는 올해 처음 소프트웨어를 만났다. 짧은 만남이지만 꿈도 정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요. 스크래치 공유 사이트에 가면 스토리텔링이 좋은 다양한 게임이 올라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만든 작품을 보면서 혼자 공부를 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수명초등학교가 특수한 경우일까. 이곳과 같은 소프트웨어 선도학교는 2016년에 900개, 2017년에는 1500개로 늘어난다.

“코딩을 왜 해야 돼?”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프로그래머가 될 것도 아닌데 굳이 알아야 하느냐는 의문도 들 법하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무색할 만큼 해외에서는 발 빠르게 교육 과정이 변화 중이다.

미국에서는 ‘아워오브코드(Hour of Code)’ 캠페인의 접속자가 1억명을 넘었다. ‘일주일에 1시간씩 코딩을 배우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프로젝트다. 프랑스는 2016년 9월부터 중학교에서 코딩 교육을 시작한다. 핀란드에서는 초등학생들까지도 지난해부터 필수 교과로 포함시켰다.

런던 다우닝 스트리트 총리 관저에 학생들을 초청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아이들의 코딩하는 과정을 구경하고 있다. ⓒ AP 연합

“코딩이 과거 수학 같은 역할 할 것”

민관(民官)이 합세해 가장 활발하게 코딩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곳은 영국이다. 2014년 2월4일 영국 런던에서는 ‘코드의 해’(Year of code) 선포식이 열렸다. 코딩 교육을 영국의 모든 초·중·고교의 필수 교과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하는 자리였다. 정부 주도로 영국의 5~16세 아이들은 2014년 9월부터 코딩을 일주일에 한 시간, 필수로 배운다. 선포식장에서 데이비드 로스 영국 교육장관은 산업혁명을 화두로 끄집어냈다. 그는 “당시 주변이 모두 농업경제였지만 우리들은 산업혁명이라는 혁신을 이뤄냈다”며 산업혁명의 동력을 교육혁명에서 찾았다. 농업경제를 살아가던 것과는 다른 역량이 필요했고, 정량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위한 교육을 찾았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수학이었다. “코딩이 과거의 수학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는 게 로스 장관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곳에서 로스 장관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중에는 김현철 고려대 교수(컴퓨터학과·한국컴퓨터교육학회 회장)도 있었다. 김 교수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산업경제에서 디지털경제로 넘어가면서 역량도 다르고 직업도 달라지고 경제의 범위도 달라진다. 코딩을 통해 새로운 경제를 보는 관점이 생기고 자신이 적극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다.”

2018년부터 소프트웨어 교육은 우리나라 초·중등 학생들에게 필수 교과목이 된다. 수명초등학교의 수업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시기가 오고 있다. 예를 들어 중학생에게는 3년 동안 소프트웨어 교육이 34시간 배정된다. 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이 400시간인 것과 비교하면 한참 모자란다. “34시간은 이제 시작이다. 필수 교과로 들어간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김 교수는 현재 소프트웨어 교과과정을 만드는 작업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밑그림은 오는 9월에 나온다.

앞서 말한 “왜 모두가 배워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필수교과’가 된 이유로 답할 수 있다. “디지털 역량을 배운 아이들은 좋은 직장을 가질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이미 구글·애플 등은 꿈의 직장으로 평가받지 않는가. 결국 그런 교육을 못 받은 아이들은 계속 산업경제에 남게 된다. 없어지는 직업, 그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게 되는데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다.”

생각해보면 지금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초고속인터넷망과 디지털 기기, 애플리케이션을 만지며 자란다. 산업경제에 익숙한 부모와 달리 디지털경제 쪽에 가깝다. 부모 세대들이 생각하는 건 컴퓨터 활용, 즉 오피스나 엑셀을 다루는 것이지만 지금의 디지털 세상에서는 자기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 ‘메이커 정신’이 중요한 능력이다.

“아이가 만들어봐야 얼마나 대단하겠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자신들의 틀 안에서만 생각한 점을 반성해야 한다.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코딩 교육을 해온 송상수 소프트웨어연구소장은 아이들의 창조 능력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한번은 소프트웨어 커뮤니티에 좋은 프로그램이 올라왔기에 연락을 했더니 초등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 학생들이 창작자였다. 송 소장은 “그 학부모들을 만나서 이 친구들은 정보 영재인 것 같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며 웃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코딩을 갈망하는 수요는 적지 않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15~21일 정부와 민간이 함께 ‘소프트웨어야, 놀자!’라는 행사를 마련했다. 블록형 코딩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이 행사에 일주일간 참가한 학생이 6만8092명에 달했다.

백악관으로 초청한 학생들에게 코딩에 관해 교육받고 있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진지한 모습. ⓒ AP 연합

‘소프트웨어야, 놀자!’에 몰린 6만8092명의 의미

학부모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과외 시장도 열렸다. 장영희씨(33)는 코딩을 가르친 적이 있다. 장씨에게 문의한 부모들은 초등학생들이 배운다면 고등학교에서도 곧 필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르치고 싶어 했다. 주로 강남과 서초 지역 부모들이었다. ‘코딩’이 본격적으로 교육할 거리로 변신하고 있다는 신호다.

반면 교육 전문가들은 부모들이 생각하는 ‘평가’에서 코딩 교육만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명희 서울교육대학교 교수(컴퓨터교육학과)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다. 홍 교수는 “현행 교육체계에서는 코딩 교육이 입시정책 때문에 들어갈 틈이 없다. 특히 코딩 교육은 평가를 기초로 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과과정을 고민 중인 김현철 교수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입시 지옥인 한국에서 코딩 교육이 지속 가능하게 이루어지려면 수능에 넣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수능에 넣는 건 반대”라는 게 김 교수의 딜레마다.

다시 수명초등학교로 돌아가서 스크래치 수업이 끝나자 자신들이 만든 게임을 발표하는 시간이 왔다. 열두 살 경인이는 자기가 만든 ‘대두의 모험’을 플레이시켰다. 게임의 배경을 설명하는 프롤로그가 흐르고 웅장한 배경음악도 깔렸다. 다양한 키를 이용해 캐릭터의 움직임과 능력치를 세분화했다. 캐릭터를 움직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게임 전반을 묶어내며 주제의식을 담아냈다. 모든 사람이 코딩을 해야 할 필요는 없더라도 모든 사람이 코딩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경인이가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막연한 코딩 배우기에 대한 지침서 

코딩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초등학생 필수 과목으로 들어간다면서요”라고 묻는 학부모들도, “이쪽은 사람을 많이 뽑는다던데요”라고 기대하는 취업 준비생들도 코딩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모두들 막연하다. 막연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현장에서 직접 교육을 해온 송상수 소프트웨어교육연구소장에게 물었다.


코딩을 가르치고 싶은 학부모라면?

●“게임·스마트폰·인터넷 중독과는 다르다. 부정적인 인식을 버려달라.”

●“앞으로 중요해지니까 미리 준비시키겠다? 입시에 대한 생각으로 접근하지 마라.”

●“즐겁고 자연스럽게 흥미를 갖고 몰두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줘라.”

●“실생활 소재로 흥미 있어 할 만한 주제를 아이들에게 많이 제시해라.”

●“코드오알지·엔트리·스크래치 등 교육용 프로그램을 아이들과 같이 이용해보라.”
 

코딩을 배우려는 일반인이라면?

●“코딩 학습을 해놓으면 절대 손해 보지는 않는다.”

●“‘코딩 교육을 받아야 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를 생각해라.”

●“어떤 서비스, 어떤 앱, 어떤 로봇, 어떤 프로그램을 구상하는지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접근해라.”

●“질 높은 강의가 공짜인 곳이 많다. 공개된 곳을 찾아 학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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