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조4000억 해상헬기 부실 방사청도 알았다
  • 김지영·조해수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5.07.19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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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납품업체 AW사와 방사청 간 서신 단독 입수

걸프 전쟁이 낳은 스타는 CNN만이 아니다. 또 다른 영웅은 아파치 헬기다. 걸프 전쟁 이전에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헬기가 탱크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스 신화 속 아킬레우스의 황금갑옷 같았던 탱크는 아파치 헬기의 유도탄 한 방에 맥없이 쓰러졌다. 기껏해야 화물, 그것도 가벼운 물자수송이나 재해 구난, 정찰, 연락용으로 쓰이던 헬기는 걸프전을 통해 일약 전쟁의 핵심 무기로 도약했다. 이 헬기를 바다 위에서 쓰면 어떨까. 아파치 헬기가 사막에서 그랬던 것처럼 바다 위를 날아다니며 적군의 잠수함·함정을 탐지해 공격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든든하게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이게 바로 해상작전헬기다.

북으로는 바다 밑 어디에서 탄도미사일(SLBM)을 쏠지 모르고, 동·서·남으로는 미·러·중·일 등 해양 강대국에 포위된 대한민국에서 해상작전헬기는 안보의 최전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정부는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로 모두 20대의 해상작전헬기를 확보하기로 했다. 이 사업에 투입하기로 한 예산이 1조4000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정부가 우선 8대를 도입하기로 한 영국 아구스타웨스트랜드(AW)의 와일드캣이 작전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계약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시사저널은 해상작전헬기 사업과 관련해 방위사업청(방사청)과 영국 AW사가 주고받은 메일과 양사의 법적 질의서를 단독 입수해 분석했다. 양사는 2013년 6월부터 2015년 6월12일까지 메일을 주고받았다. 메일의 상당 부분은 수중에서 음파로 적군의 잠수함·함정을 탐지하는 디핑소나(Dipping Sonar·음향탐지기)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영국 AW사 측이 구매계약서에 명시한 속도의 절반에도 성능이 미치지 못해 방사청이 지속적으로 항의 표시를 전달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해상작전헬기의 핵심 장비인 레이더와 항속 시간 등이 우리 군 작전운용성능(ROC)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방사청이 계약 불이행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도 상당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공개 입찰을 통해 ‘공정하게’ 해상작전헬기로 선정했다는 영국 와일드캣은 총체적인 부실 상태였던 셈이다. 이를 두고 영국 AW사와 방사청이 치열한 책임 공방을 벌인 사실도 확인됐다.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한 영국의 AW사는 한국의 한 대형 로펌에 계약 위반으로 법률적인 책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법적 자문을 구한 사실도 확인됐다.

성능 미달 ‘디핑소나’ 속도 느려 작전 차질

와일드캣의 가장 큰 부실은 디핑소나에 있다. 앞서 밝혔듯 해상작전헬기는 바다 위의 ‘아파치 헬기’다. 적군의 잠수함·함정 감시는 물론, 이를 공격하는 대잠·대함 작전 등 해상 임무를 수행한다. 보통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전 함선은 속도가 느리고 탐색 능력이 제한된다. 때문에 폭넓게 적군의 함정이나 잠수정을 탐색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게 해상작전헬기에 부착된 디핑소나다.

디핑소나는 소나를 줄에 매달아 바닷속에 담가 음파로 적군 잠수함 등을 탐지한다. 음파로 웬만한 잠수함은 물론 돌고래 움직임까지 구분할 수 있어 ‘잠수함 사냥꾼’ 헬기의 감각 기관이라 불리는 해상작전헬기의 핵심 장치다.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디핑소나라면 수심 300m까지 내려가 적군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위치에서 잠수함만 족집게처럼 탐지한다. 적의 잠수함을 디핑소나를 통해 감지했다면, 소나를 올린 다음 어뢰를 발사해 적군의 함정을 격파한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입수한 방사청과 영국 AW사 간 메일을 보면 디핑소나 속도가 구매계약서에 명시된 속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AW사가 구매계약서에 명시한 속도 성능은 내려가는 데 5m/sec, 올라가는 데 6m/sec이다. 하지만 실제 실험 결과는 2.45m/sec~4.75m/sec 수준이었다. 이렇게 디핑소나의 속도가 떨어질 경우 헬기의 주요 성능 및 항속 시간 등에 큰 영향을 초래한다. 또한 해상 작전 속도는 두 배 정도 느려지게 된다.

 

방사청 해상항공기사업팀의 고위 관계자가 영국 AW사 사업 책임자 B씨에게 2015년 3월30일 보낸 ‘특별 현안에 대한 아구스타웨스트랜드 사의 공식입장요청’(Request for AW’s official position on “Special Issues”)’란 제목의 메일에는 “해상항공기사업팀은 해상항공기의 적기 납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두 가지 특별한 현안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중 하나로 디핑 소나를 꼽았다. 메일에는 “음파탐지기(디핑소나)를 감는 장치의 최대 속도 미충족”이라며 “합리적인 합의를 위해 우리는 2015년 3월24일 회의를 실시했으나 대부분의 현안에 합의를 이루지 못했음. 구두상으로 제시한 설명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AW사의 정확한 입장에 대해 확신이 없음”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면서 방사청은 “4월7일까지 이 사항에 대해 서면으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해줄 것을 요청함”이라며 “해상항공기사업팀과 다른 관련 팀들이 검토할 수 있도록 AW사가 임무 운용성과 기술적 측면에 끼치게 될 여하한 영향을 포함해 세부적이고 객관적인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청함. 그러한 검토 결과를 토대로 향후 사업의 실행 방침을 결정할 것임”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약 한 달 후인 2015년 4월23일 영국 AW사가 보내온 서신에는 디핑소나를 감는 속도에 대해 “AW사는 3페이지에 명시된 제품 사양서(스펙)에 따라 작동하는지 검토하고 있음”이라고 회신했다. 정부가 2013년 1월에 와일드캣을 선정했는데 이제 와서 제품 사양서에 명시된 스펙대로 작동하는지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에 대해 일주일 후인 4월30일  방사청은 ‘한국 AW-159 헬기 레이더와 음향탐지 체계에 대한 추가적인 질문들(Additional Queries Regarding AW-159(ROK) Radar and Sonar System)’이라는 제목으로 AW사 책임자 S씨를 포함해 4명에게 메일을 보냈다. 방사청은 “AW사의 한국 AW-159 헬기의 음향탐지기 감는 장치 속도에 대한 세부 기술 자료들은 부족했으며, 왜 계약적 사양서를 충족할 수 없는지에 대해 전체적인 설명이 부족한 자료였음”이라며 “만약 납기 지체 또는 기술적으로 입증이 불충분한 조항에 기인한 제품 사양서에 관한 어떠한 현안 사항들이 있다면 그러한 것에 대한 책임은 AW사에 있다”고 적시했다. 이와 동시에 해군 사업관리사무소(PMO)가 디핑소나 감는 속도, 장치, 체계, 가격, 속도 추산 근거 등에 대해 40개가 넘는 질문을 했고, 그에 대한 빠른 답변을 AW사 측에 요청했다.

 


소나 감는 속도는 작전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다. 디핑소나를 바다에 빨리 내리고 빨리 올릴수록 더 많은 적의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다. 군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통상 하루에 디핑소나를 6회 정도 바다에 담그는데 위아래로 감는 속도가 5~6m/sec라면, 통상 300m까지 담근다고 계산할 경우 소나로 1회 감지할 경우 1분이 소요돼야 한다”며 “하지만 실제 시험 결과가 2.45m/sec라면 2분 이상 소요되는 것인데 그만큼 탐지 횟수가 줄어들지 않겠느냐. 작전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이고, 그만큼 전력 공백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방사청은 특히 가장 크게 쟁점이 되는 디핑소나를 감는 속도에 대해 AW사를 계속 추궁했다. 디핑소나의 위로 감는 속도가 5m/sec라는 계산이 어떻게 도출됐으며, 위로 감는 최대 속도를 2.45m/sec로 권장한 특별한 사유가 있는지, 바다에 총 6회 정도 담그는 시간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등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답변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AW사는 2015년 5월7일 회신 메일을 통해 디핑소나의 결점을 인정하고 답변을 하기는커녕 “추가 정보가 더 이상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AW사는 “이제까지 보낸 문서들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것으로 믿는다”며 “이러한 질문 제기가 MOH 헬기를 납품하는 업무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한다. (중략) 우리가 제공한 내용을 바탕으로 당신(방사청)의 결정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되레 묻고 있다. 한마디로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계약을 하든지 말든지 하라는 식으로 한국에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해군 “와일드캣 소나, 계약 조건 충족 못해”

이에 대해 방사청이 2015년 5월14일 AW사에 한국 해군의 공식 입장을 통보하는데, 여기에는 소나를 감는 속도에 대한 우리 해군 측의 심각한 우려가 담겨 있다. “소나를 담그는 주기 시간 지연에 기인하는 대잠 임무 운용 효율 저하에 우려를 표명하며, 끌어올리는 속도가 계약상으로는 6m/sec인 데 반해 실제로 2.45m/sec로 더 낮아짐에 따라 헬기 기동성을 감소시킴. 소나를 담그기 전에 낮은 고도 상태의 제자리 비행 시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소나를 끌어올리는 속도가 감소함에 따라 야기되는 제자리 비행 시간이 증가되는 것에 대한 안전 측면도 우려됨. 소나를 끌어올리는 속도는 최소한 링스 헬기의 끌어올리는 속도와 동등 또는 그 이상이어야 하며, 동 장비를 채택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임.” 즉 우리 군 측은 AW사에 소나를 감는 속도와 관련해 헬기 운용의 효율성과 안전성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끝으로 해군은  “현재의 소나를 감는 속도는 계약적 조건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며 계약 조건 위반으로 계약 해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디핑소나에 대한 한국 정부와 영국 AW사 간의 공방은 6월8일에도 합의가 되지 않아, 한국 정부는 “AW사가 계약서에 명시한 대로 소나를 감는 속도 6m/sec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우선적으로 분석을 해봐야 한다”는 입장을 한 번 더 전했고, 6월15일 사업관리검토회의(PMR)에 소나 감는 속도에 대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마지막으로 전달했다.

 

체공 시간 짧아 작전 한번 제대로 못 나가

디핑소나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해상작전헬기의 또 다른 필수 항목인 레이더 성능도 3개 모드는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입수한 문서를 보면, 12개 성능 모드 중 9개 성능은 충족하나, 작은 표적 탐지 모드(STM·Small Target Mode), 탐색 구조 응답기(SART·Search and Rescue Transponder Mode), 난기류 모드(TURB·Turbulence Mode)를 포함한 3개 모드는 2016년 8월이 돼서야 충족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이에 따라 2015년 4월30일에는 메일을 통해 영국 AW사에 “이 3개의 추가적인 레이더 모드”에 대해 26개의 질문서를 보냈다.

이 세 개 모드는 방사청의 해상작전헬기 사업제안요청서(Request for Proposal)에 나온 필수 항목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방사청 사업제안요청서에는 “2.3.5. 필수-012. 해상 탐색 및 식별용 레이더 1조 장착. F1 크기 표적, F2 NM 이상 탐지, F3˚ 전 방위 탐색 기능 보유”라고 명시돼 있다. 군에 정통한 관계자는 “F는 레이더 암호”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F1은 작은 표적 탐지 모드(STM)로 적의 잠망경까지 탐지하는 레이더, F2는 5해리(약 9㎞)까지 탐지 가능한 탐색 구조 응답기(SART), F3는 360도 탐지가 가능한 난기류 모드(TURB)다. 그는 “해상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레이더가  F1, 즉 작은 표적 탐지 모드(STM)인데 이 레이더 기능이 없다면 F2와 F3도 만들 수 없다”며 “적함을 전혀 탐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필수 항목을 못 채운 건 레이더뿐만이 아니다. 헬기의 대잠수함 작전 가능 시간(체공 시간)도 방사청 사업요청서에 필수 항목으로 나온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사업요청서에는 ‘A-1 필수 항목’란에 “최대 체공 시간 C1 이상(15℃/1000ft. 디핑소나 장착 기준)”이라고 적혀 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C1은 2시간 40분을 뜻하는 암호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합수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와일드캣의 체공 시간은 38분에 불과하다. 작전 한번 나가기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AW사 측은 “최대 체공 시간과 무장 장착 능력 등 작전 요구 성능을 모두 충족했다”고 주장했다. 또 “레이더와 소나 등을 통해 정밀 타격 능력을 갖출 것”이라며 “와일드캣을 도입하면 대잠수함 작전 능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밝혔다.

1조4000억원의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대형 사업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답은 한 가지다. 바로 영국 AW사에 대해 실물 평가를 하지 않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입찰 경쟁사였던 미국 해군용 MH-60R은 실물기로 시뮬레이션 평가를 했지만, 영국 해군은 당시 와일드캣이 전력화되지 않아 자료로만 평가하고 작전 수행 능력을 충족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현재 한국 정부 입장은 진퇴양난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방사청과 7월27일부터 현지 공장에서 수락 검사를 2주간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군 핵심 관계자는 “검사할 부품 자체가 없는데 현지에 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현지 검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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