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기업 비자금 수사에 야당 정치인들 ‘촉각’
  • 조해수·엄민우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7.22 13: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지검 특수2부 들여다봐…중흥건설도 정치권 유착설

“반부패 개혁을 확실하게 추진해 비리가 자생하는 구조를 과감하게 제거하겠다. 부패 척결은 예외나 성역 없이 이뤄질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다. 7월18일로 취임 한 달째를 맞은 황교안 국무총리는 ‘메르스 사태’가 잠잠해지자 마침내 사정 칼날을 꺼내들었다. 이에 발맞춰 정치권을 대상으로 하는 전 방위 수사가 시작됐다(32쪽 딸린 기사 참조).

사정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총리가 직접 나서 국정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지나치게 정치권을 옥죄면 야당의 반발은 물론 여당 내 계파 갈등까지 재점화될 수 있다.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정이다. 기업 비자금을 쫓다가 이 돈이 정계로 흘러들어간 게 포착될 경우 자연스럽게 정치권 사정으로 이어나간다는 것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미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들의 이름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그중에는 호남을 기반으로 한 기업들이 1순위에 올랐다. 대표적인 것이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 등 금호그룹 일가와 중견 건설사인 중흥건설이다.

ⓒ 시사저널 포토

대표적인 호남 기업인 금호그룹과 관련된 수사는 검·경 양대 사정기관 모두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선 검찰 수사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회장이 허위의 부동산 개발 사업 시공을 빙자해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수사 중이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검찰 내부 자료에 따르면, 검찰은 2014년 7월 자체 첩보와 같은 해 9월 대검 첩보를 통해 수사를 시작했으며, 박 회장을 ‘피의자’로 규정한 후 계좌 추적까지 진행했다. 검찰은 박 회장이 2008년 7월께 용인시 중동 부동산 개발 사업을 빙자해 금호산업 자금 150억원을 허위의 토지 매입 계약금 명목으로 S 건설에 지급한 후, 자금 세탁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횡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S 건설의 김 아무개 회장은 박 회장과 같은 호남 출신으로,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이 지난 2004년 금호그룹과 SK그룹으로부터 1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을 당시 박 회장과 함께 수사선상에 올랐던 인물이다. 또한 검찰은 2009년 12월께 박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등의 계좌에 보관 중인 30억원 상당을 금호종합금융 직원 계좌 등으로  분산해 자금 세탁을 거친 후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포착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맡고 있다. 특수2부는 이재현 CJ그룹 회장 비리 사건,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비리 사건, 강덕수 STX그룹 회장 비리 사건뿐만 아니라 최근의 포스코건설 비자금 사건 등 굵직한 대기업 수사를 진행한 곳이다. 이와 더불어 특수2부는 지난해 8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경제개혁연대가 박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소한 사건도 맡고 있다. 박 회장의 친동생인 박찬구 회장은 고소장에서 “2009년 12월 박삼구 회장이 재무구조가 악화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기업어음(CP) 4200억원어치를 계열사들로 하여금 사들이게 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지난 2009년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 후유증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을 당시 계열사를 동원해 ‘폭탄 돌리기’를 했다는 것이다.

경찰에서는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그룹은 2009년 6월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박삼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으로 쪼개졌다. 여기서도 ‘비자금’ 얘기가 새어나오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5월 말, 원자재 수입 과정에서 이 회사의 퇴직자가 설립한 무역상에 물량을 몰아준 후 거액의 뒷돈을 챙긴 혐의로 직원 6명을 배임수재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고소했다. 물량 몰아주기로 챙긴 돈은 2010년부터 지금까지 3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피소된 직원들이 박찬구 회장을 상대로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발생했다. 이들은 박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울산·여수 공장 운송 물량을 친인척이 운영하는 J 화물운송 중개업체에 몰아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J 기업은 박찬구 회장의 처남이 운영하는 회사로, 2005년 40억원에 그쳤던 연매출이 2008년에는 500억원을 넘어섰다. 물량 몰아주기로 발생한 이득의 상당부분이 리베이트 형식으로 다시 박찬구 회장에게 건네져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성완종 리스트의 호남 버전”

야당 측에서는 금호그룹 일가에 대한 전 방위적인 수사가 결국 정치인 수사로 귀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호그룹 ‘비자금’과 관련한 의혹은 오래전부터 제기된 사안이다. 박삼구 회장의 150억원 비자금 수사는 지난해 9월부터 본격화됐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그보다 더 오래전인 2008~09년이다. 박찬구 회장이 처남의 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의혹 또한 2011년 검찰이 이미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남부지검은 당시 수개월간 금호석유화학을 상대로 내사를 진행했고, 처남이 운영하는 J 기업에 거래대금을 부풀려 지급한 후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 등으로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박찬구 회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금호그룹에 대한 수사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살리기’ 분위기와 배치된다. 7월16일 가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새 지도부 회동에서 이번 광복절 특사 대상에 경제인을 포함시키자는 제안이 나왔고, 박 대통령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부터 경제인 범죄에 대한 사면권 행사를 제한하겠다고 공약해왔지만, 경제 살리기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업인 사면 카드를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독 금호그룹 일가에 대한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모양새다. 더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최근 금호고속을 재인수하며 2009년 이후 무너졌던 금호그룹 재건에 나서고 있다.

2011년 6월3일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남부지검에 출두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중흥건설 비자금 수사, 야당 정치인 실명 거론

이런 시점에서 그룹 총수에 대한 전 방위 수사는 자칫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호남이 지역구인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검찰이 성완종 전 회장의 경남기업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면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터졌다. 이번 금호그룹에 대한 수사는 성완종 리스트의 호남 버전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사는 비자금 수사에 집중되고 있는데 결국 호남 출신 중진 의원 전체를 겨냥한 것 아니겠느냐. 벌써부터 몇몇 의원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만약 야당 정치인을 겨냥한 표적 수사라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호남 지역 중견 건설사인 중흥건설에 대한 수사 역시 야당을 긴장시키고 있다. 중흥건설은 우미건설·호반건설 등과 함께 호남을 대표하는 건설사로 통한다. 회사 설립 32년째인 중흥건설은 지난해 10대 건설사들을 제치고 국내 주택 공급 물량 3위를 차지했다. 올해 자산 총액은 5조6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호남 지역사회 및 정치권에서는 중흥건설 수사와 관련해 정치인 P, J, N, S 등이 거론된다. 이 중엔 전직 지방자치단체장도 있고 현직 야당 의원도 있다. 무게감 있는 인물도 있어 야권에선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신당 움직임이 있는 상황에서 총선을 앞두고 호남 지역 민심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5월 수사를 일단락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역 인사들의 말에 따르면, 여전히 검찰은 정원주 사장이 빼돌린 자금 중 현장 전도금으로 썼다는 125억원의 용처를 추적 중이다. 때문에 수사가 어디로 튈지 속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역 정치권 인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순천 지역의 한 시민단체 대표는 “중흥건설은 용지 용도를 변경하고 층수를 높이는 방식의 허가를 받아 1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더 냈는데, 일개 공무원이 이를 주도했을 가능성은 없다. 전직 지자체장 및 지역 정치인들이 힘을 썼다는 이야기가 지역에선 계속 있어왔는데 향후 수사가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호남 지역 건설사들은 중흥건설 수사를 지켜보며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호남 지역 건설사 관계자는 “중흥건설 대표가 발이 넓은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 연관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지역 건설사들은 지금 중흥건설에 대한 수사가 남의 일이 아닌 것으로 보고 탄원서를 올리는 등 집단행동을 하겠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금호그룹 일가와 중흥건설 등 호남을 기반으로 한 기업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심상찮게 보고 있는 것이다. 호남 지역의 한 야당 관계자는 “어떤 지역이든 지역 건설사들이 전국적 규모로 크는 게 정치권 로비 없이 가능했겠는가. 검찰이 맘먹고 노리고 들어오면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