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남자’ 막말에 힐러리 신났다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5.07.2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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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1위 부상 ‘이변’

“힐러리에게는 신이 만든 최고의 기회다.” 온갖 막말 파동과 기이한 행동에도 미국 공화당 예비 대선 주자 1위로 올라서면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69). 현재 미국 정가에서 최고의 뉴스메이커인 그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뉴욕의 한 일간지 기자는 위와 같은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공화당 주자로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트럼프 파문으로 민주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부동산 개발·카지노 사업으로 부 축적

트럼프는 지난 6월16일, 자신의 부의 상징인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 빌딩에서 “나는 신이 만든 최고의 자리인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과거 대선 때 그가 보여줬던 돈키호테식 행동으로 인해, 이번 그의 대선 출마 선언 역시 대권 판세에서 작은 변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예상은 철저히 빗나가고 있다. 트럼프가 이렇게까지 대선판을 흔들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변수는 고사하고, 트럼프는 지금 공화당 내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는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7월10일 여론조사에서 15%의 지지율로 유력한 공화당 후보인 젭 부시를 제치고 당당히 1위에 등극한 이래, 17일 USA투데이 여론조사에서는 17% 지지율로 14%를 얻는 데 그친 젭 부시와의 간격을 더욱 벌리는 대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나머지 공화당 잠룡들은 트럼프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바람에 한 자릿수 지지율에 그쳐 존재감마저 잃고 있다.

‘막말’ 파문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최근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1위로 부상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7월11일(현지 시각)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 AP 연합

‘못 말리는 괴짜’라는 비난에서 출발한 트럼프는 ‘세계적인 부동산 재벌’이라는 평가에 이어 지금은 2016년 미국 대선의 중심 변수로 등장하며 미국 정가를 흔들고 있다. 최근 멕시코 등 히스패닉계 불법 이민자에 대한 인종차별적 비난 발언으로 화제에 오른 트럼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 역시 이민자 집안 출신이다. 독일과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의 조부모가 1885년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트럼프 집안을 이루게 된다. 트럼프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는 트럼프의 어머니 메리 애니를 만나 1936년 결혼했다. 이후 프레드 트럼프는 뉴욕에서 부동산 투자업으로 큰 재미를 봤고, 1946년 6월14일 도널드 트럼프는 이들 부부의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말썽을 부려온 트럼프는 13세 때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자, 부모는 그의 행동을 바로잡고자 뉴욕에 있는 ‘뉴욕 군사아카데미(NYMA)’로 보냈다. 부모의 예상은 적중했다. 사고뭉치이던 트럼프는 자신의 열정을 풋볼·야구 등 스포츠에 쏟아부었고, 야구부 주장을 맡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여기에서 나름의 절제를 배운 트럼프는 이후 뉴욕 포드햄 대학과 필라델피아 대학 와튼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한 후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부동산 개발업에 뛰어들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에 이른다.

트럼프는 이후 세 번이나 결혼했다. 여자관계가 복잡해 바람둥이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첫 번째 부인 이바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건실하게 자라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부동산 개발업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때 경기 침체 탓에 부동산 가격은 폭락하고, 트럼프는 수십억 달러의 빚을 지는 등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카지노 사업 등에 집중하면서 재기했고 세계적인 부동산 재벌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라는 인물이 미국 시민들에게 각인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소유한 호텔 등에서 각종 프로레슬링 대회를 개최하며 숨겨진 광기를 마음껏 발휘한 덕분이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가 결정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NBC 방송의 <연예인 견습생(Celebrity Apprentice)>이라는 TV 리얼리티 쇼였다. 연봉 수십만 달러에 이르는 트럼프 회사의 고위 경영직을 얻기 위해 여러 참가자가 경쟁을 벌이는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미국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트럼프로 인해 진퇴양난 빠진 공화당

최근 미국 대선판을 흔들고 있는 트럼프는 자신도 인정하고 있듯이 한마디로 가진 게 돈밖에 없다는 이른바 ‘쩐의 남자’다. 그는 대선 출마 선언에서도 “나는 정말 부자이고 그래서 더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며 “나는 돈이 많으니 내 돈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거침없이 발언했다. 선거 자금을 모으는 데 급급한 다른 후보와는 달리 자신의 돈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경제 전문지인 ‘포브스’가 애초 순자산으로 추정했던 41억 달러의 2배가 넘는 92억4000만 달러(약 10조3386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이번에 신고했다. 역대 미국 대선 후보 중 최고 액수다. ‘쩐의 전쟁’으로 불리는 미국 대선에서 이미 자신의 재산으로 총알을 다 확보했다는 얘기다.

트럼프를 최근 공화당 대선 후보 1위로 만든 것은 ‘쩐’이 아니라 ‘막말’로 표현되는 거침없는 발언이었다. 특히 그는 히스패닉계 불법 이민자를 겨냥해 “멕시코가 범죄자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며 “그들은 성폭행범이고, 마약이나 범죄를 미국으로 가져오고 있다”고 거센 인종차별적 비난을 퍼부었다. 막말에 다름없는 트럼프의 이러한 발언은 히스패닉계뿐만 아니라 미국 내 소수 이민자들의 분노를 격하게 표출시켰고, 그가 소유한 빌딩과 호텔 앞에서는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 공화당계 극보수층이 지지를 표시하는 등 트럼프가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오히려 인지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는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 초비상이 걸린 채 속앓이를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의 극단적 발언이 극보수 지지층의 표는 얻을지 모르나, 이는 반대로 소수 계층이나 이민자 계층 등 중도층 표마저 등을 돌리게 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막말과 극우 이미지로 대표되는 트럼프가 실제로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된다 하더라도 지지 계층의 한계로 민주당과의 본선 대결에서 승산이 없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 지지 기반인 백인 중산층과 강경 보수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트럼프를 무조건 배척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만에 하나 그가 공화당과 결별을 선언하고 단독으로 출마한다면 지지층이 분산되고 결국 공화당 표를 잠식하는 최악의 상황이 되고 말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정권 탈환을 노리는 공화당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악재를 내부에서 맞닥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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