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 잡기’의 약점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5.07.29 11: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박 의원님들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언론에 말씀하시는 걸 보면, 친박 표 그리고 김무성 직계 표, 그다음에 성완종 사건 등등 검찰에 약점이 잡힌 인사들 표, 이렇게 합하면 100여 명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표가 많이 저쪽으로 넘어가고 있다고들 하시니까 그분들 말씀이 사실인 측면이 있겠죠.”

이른바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으로 인한 당·청 갈등 국면에서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한창 사퇴를 종용받고 있을 당시, ‘원조 친박’으로 불렸던 이혜훈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 말입니다. 원내대표 해임을 결정할 친박·비박 간 표 대결이 벌어질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를 두고 한 발언이었습니다. 그의 말에서 특별히 귀를 사로잡은 것은 ‘약점’이란 단어입니다. 일부 비박근혜계 새누리당 의원이 친박근혜계로 줄을 바꿔 타는 현상의 배경을 ‘약점이 잡혔다’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정적이나 껄끄러운 누군가를 궁지로 몰아넣으려고 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이 이 약점 잡기입니다. 약점 잡기를 통해 권모술수 혹은 모략이 발동하고 더 나아가 공작(工作)이 이뤄집니다. 약점을 빌미로 회유나 압박이 가해지고 종내는 굴복시키는 사례가 역사 속에는 수없이 많습니다. 때로는 이런 행위가 대단한 지략인 것처럼 묘사되기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 바탕에 깔려 있는 비겁함 혹은 비열함이 감춰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근 국가정보원이 외국 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사들인 사실이 드러나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국익을 위해 ‘무명의 헌신’을 하겠다던 국정원이 좋지 않은 의혹의 꼬리표를 단 채 논란의 한가운데로 불려나오는 모습을 우리는 또 한 번 보고야 말았습니다.

국정원은 전례 없는 직원 공동성명까지 내고 대북 정보 활동용일 뿐 국내 사찰과는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국정원의 해명을 믿는 국민은 10명 중 3명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스마트폰 등을 통한 국내 해킹 시도가 있었다는 정황도 언론을 통해 잇달아 공개되면서 국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국정원이 만약 해킹·감청을 통해 몰래 누군가의 약점을 잡으려 했다면 이는 명백한 불법이며 직권 남용입니다. 그리고 해킹 집단이라는 오명을 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입니다.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 할 국정원이 국민적 신뢰를

 

잃고 불법을 저지르는 조직으로 매도되는 것은 국익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진상을 바르게 밝히고,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면 신속히 바로잡아야 합니다.

남의 약점 잡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오히려 방심하다 자신의 약점을 더 많이 노출할 수 있습니다. 남의 약점을 많이 쥐고 있는 사람이 강한 게 아니라 자신의 약점부터 돌아보고 바로잡는 사람이 강한 것입니다. 국정원은 할 일이 많습니다. 이런저런 논란의 도마에 오르는 일 자체가 엄청난 시간 낭비이자 직무유기입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그리고 총성 없는 전쟁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국제사회의 경쟁 속에서 국정원이 약점을 잡아야 할 대상은 분명히 따로 있습니다. 엉뚱한 일 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